잠 못 드는 엄마를 위한 수면 ‘꿀팁’을 요청하자 서 교수는 “수면 문제는 참고 버티는 게 답이 아니다. 약물이나 인지행동치료 등 과학적으로 검증된 치료가 있으니 꼭 수면 전문가를 찾길 바란다”며 “엄마가 ‘통잠’ 잘 수 있도록 가족들의 지지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잠 못 드는 엄마를 위한 수면 ‘꿀팁’을 요청하자 서 교수는 “수면 문제는 참고 버티는 게 답이 아니다. 약물이나 인지행동치료 등 과학적으로 검증된 치료가 있으니 꼭 수면 전문가를 찾길 바란다”며 “엄마가 ‘통잠’ 잘 수 있도록 가족들의 지지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노력하면 달아난다. 애쓰지 않아야 이룰 수 있다. ‘잠’의 속성이다. 누구나 알 법한 이 명제를 살짝 뒤집어보면 다소 생경한 질문이 탄생한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건, 너무 애쓰고 있어서가 아닐까.

서수연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가 지난해 11월 펴낸 <엄마의 잠 걱정을 잠재우는 책>(아몬드)은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건네는 책이다. 서 교수는 미국에서 스탠포드 의대 수면클리닉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수면 관련 논문만 100편 넘게 발표한 ‘국내 1호 수면심리학자’다. 그는 ‘아이를 잘 재우는 법’만 말하지 않는다. 앞서 ‘엄마 자신을 잘 재우는 법’을 설명한다. 서 교수는 “엄마의 잠을 갈아넣는 걸 당연시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 도전장을 던지고 싶었다”며 “이제 여성의 수면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야 할 때”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일상임상심리연구소에서 서 교수를 만났다.

여성 불면증, 남성의 1.5배… 여성의 긴장도, 그만큼 높다

“수면이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 사람의 ‘능력’ 입니다. 학계에서는 통상적으로 여성의 불면증 유병률이 남성의 1.5배라고 봅니다. 그만큼 여성이 남성보다 휴식을 취하기 어렵고,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수면에 있어서 성별 격차(gender sleep gap)’는 대략 여성의 초경 시기인 11살 무렵부터 나타난다. “소아 불면증 유병률은 남아가 더 높다. 그러나 11살쯤 시작되는 초경과 함께 여성의 불면증 유병률은 남성을 역전한다. (…)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 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엄마의 잠걱정을 잠재우는 책’ 발췌) 성호르몬의 분비와 함께 수면의 성차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여성의 불면증이 생물학적 현상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논의로 흐르게 한다. 서 교수는 이런 논의 구조가 위험하다고 진단한다. “수면에는 생물, 사회, 심리 세 가지 요소가 종합해 작동합니다. 하나의 요인만 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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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출산은 여성의 수면 체계를 뒤흔드는 사건이다. “아기가 돌을 맞을 때까지 부모는 730시간, 30일의 수면을 희생”한다. ‘육아=엄마의 일’로 인식하는 한국 사회에서 잠을 희생하는 건 주로 엄마다. 서 교수는 “3살 미만 아이를 둔 부모 555명을 조사했더니 엄마 홀로 아이를 재우는 비율은 32.9%로 아빠 홀로 재우는 비율(5.4%)보다 6배 가까이 높았다”며 “아이를 재우는 일과 관련해 엄마의 ‘확실한 희생’이 있다”고 했다.

단순히 물리적인 수면 시간만 희생하는 것은 아니다. 임신·출산은 그 자체로 “친한 친구의 죽음, 이직이나 파산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토머스 홈스와 리처드 라히의 ‘인생 변화 단위’ 지표)이기에 불면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아기라는 연약한 생명체가 전적으로 내게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은 ‘과다각성’을 불러일으켜 수면의 양과 질을 모두 떨어뜨리기도 한다.

“육아는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인 행위에요. 저만해도 머릿 속에 여러 개의 서랍을 만들어요. 아이에게 뭐가 필요한지, 교체해야 하는 생필품은 없는지, 빨리 해치워야 할 집안일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해요. 마치 ‘관리자’처럼요. 잠들기 위해서는 잡념을 멈춰야 하는데, 생각할 거리가 끝없이 생겨나는 거죠.” ‘엄마는 잠을 희생하더라도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사회), 출산 그 자체가 몰고오는 내면의 변화(심리)가 종합적으로 작용해 여성의 밤을 더 길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잠만 잘 자도 우울증 30% 줄어… 정책적 ‘수면교육’ 필요

불면증이 해로운 건 단순히 피곤해서가 아니다. 수면 부족이 우울증 같은 정신 장애를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어서다. 다른 치료 없이 불면증 치료만 받아도 우울 증상이 30%가 경감되고 자살 위험도 줄어든다는 연구(‘우울증 환자를 위한 불면증 개선 인지행동치료’, 맨버, 2011)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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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꾸 깨면 부모도 잠을 못 자요. 정도가 심해지면 부모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낍니다. 아이가 나를 ‘위협’한다는 비이성적인 생각이 자꾸 침습해 오는 거예요. 수면 위로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적지 않은 엄마들이 ‘아이가 악마처럼 느껴진다’거나 ‘베개로 아이를 죽이는 상상을 할 때도 있다’고 토로합니다. 사실 극심한 수면 부족을 겪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자기보호기제가 작동하는 거거든요. 오히려 이런 이야기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억누르는 ‘모성 신화’가 더 문제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 교수는 여성의 불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때라고 본다. 출발은 ‘수면 교육’이다. 적게는 일상을 몽롱하게 만들고 극단적으로는 정서 조절 기능을 마비시켜 생명까지 앗아가는 불면증이 출산을 기점으로 생기는 경우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실제 2015년 인구보건복지협회 조사를 보면, 기혼여성 3명 가운데 1명(33.7%)이 산후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불면이 우울증으로, 우울증이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는 연쇄작용을 끊으려면 국가 차원의 정책적 수면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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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교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슬립 스쿨(sleep school)’을 예로 들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출산하면 1주일 동안 슬립 스쿨에서 수면 교육을 받아요. 국가가 체계적으로 부모에게 수면 교육을 시키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산후조리원 문화가 있으니, 여성가족부가 수면 교육을 제공하면 어떨까요?” 실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면 교육을 받은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를 대상으로 아이가 2살이 된 시점에 우울증 발병률을 조사했더니, 수면 교육을 받은 집단의 발병률(15%)이 교육을 받지 않은 집단의 발병률(26%)보다 73%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30 여성 자살 문제, ‘불면증’부터 다시 보라

서 교수는 “불면이라는 증상을 ‘다리’ 삼아 내담자의 내면으로 건너간다”고 했다. 불면이 타인의 내밀한 마음을 읽어내는 입구이자 열쇠가 된다는 의미다. “경찰이나 소방관처럼 수직적인 조직에서 일하는 분들은 마음을 내보이기 어려워하세요. 그래도 ‘잠을 못 잔다’는 표현은 ‘우울하다’라는 표현보다 훨씬 편하게 합니다. 불면이라는 증상이 심리 치료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20대 여성의 자살률 급증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여성의 불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서 교수는 조언한다.

“미국 보건복지부(HHS) 산하 약물남용 및 정신건강 서비스국(SAMHSA)이 꼽는 자살의 10대 징조 중 하나가 바로 ‘불면’이에요. 수면은 정서를 조절하고 충동성을 제어하게 하는데, 잠이 부족하면 이런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요. ‘무망감(더는 희망이 없다는 느낌)’에 충동성이 더해지며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죠. 실제로 5시간 이하 불충분한 수면이 자살 사고와 시도를 높인다는 연구도 있는데, 여성의 경우 이 비율이 급격하게 높아집니다.”

국외에서는 이미 ‘잠’을 여성의 정신 건강을 파악하기 위한 주요 지표로 활용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 여성 건강 연구’(SWAN·Study of Women’s health across the nation)다. 미국은 지난 1994년부터 생애전환기 여성(중년)이 겪는 신체적·정신적·사회적 변화를 조사해 왔으며,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여성 수면에 대한 방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서 교수는 “과거 성모병원에서 자살 시도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변화’였다”며 “변화를 일궈낼 수 있는 힘은 ‘문제 해결력’에서 나오고, 그 강력한 무기가 ‘잠’”이라고 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60대 여성 불면증 유병률 남성의 1.5배에 달해

2차 성징 이후 여성의 불면증 유병률이 남성을 압도한다는 학계의 연구 결과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4일 <한겨레>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을 통해 확보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수면장애 진료현황을 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수면장애로 진료받은 인원은 모두 97만4417명이었다. 이 가운데 여성은 55만6459명으로 남성(41만7958명)보다 33.1% 많다.

△0∼10살 △10∼19살 구간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여성 불면증 진료인원이 남성보다 많았다. 20∼40대에서 성별 간 진료인원 차이가 크지 않지만 50∼60대는 그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지난해(1∼11월) 불면증 환자 중 △20∼29살 구간 여성 3만339명·남성 2만8772명 △30∼39살 구간 여성 4만9703명·남성 4만9423명 △40∼49살 구간 여성 7만9207명·남성 6만4392명 △50∼59살 여성 11만8973명·남성 7만6710명 △60∼69살 구간 여성 13만4942명·남성 8만9341명 △70∼79살 구간 여성 9만4851명·남성 7만3977명 △80살 이상 여성 5만8323명·남성 4만1109명이다. 50~69살 여성 불면증 환자 수는 25만3915명으로 남성 환자 수(16만6051명)보다 1.52배 많았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갱년기로 인한 호르몬 변화도 (불면증)에 영향을 미치나, 직관적으로 떠올려봐도 여성 노인의 사회적 입지가 남성에 비해 확연히 좁다”며 “이런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불면증 진료인원은 매년 증가 추세다. 여성의 경우 △2016년 45만3664명 △2017년 45만3664 △2018년 46만7552명 △2019년 53만2282명 △2020년 55만4993명이다. 남성 불면증 환자도 인원 자체는 여성보다 적으나, 증가세는 가파르다. 남성 불면증 환자는 △2016년 30만9167명 △2017년 32만527명 △2018년 35만2122명 △2019년 40만2496명 △2020년 42만5462명이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