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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여성

Not Found, 가장 가까이 있어도 셀 수 없는 ‘0촌 살인’

등록 :2021-09-06 15:37수정 :2021-09-08 02:36

국내 범죄통계에서 빠진 ‘배우자 살해’
범죄자-피해자 관계 범주에 ‘배우자’ 없어
젠더폭력 가장 극단적 형태 파악 안돼
“친밀 관계의 폭력 통계 체계화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 이혼소송 중인 아내를 살해한 40대 남성 ㄱ씨가 지난 5일 구속됐다. ㄱ씨는 소지품을 챙기러 집에 들른 아내를 장검(일본도)로 살해했다. 이 자리에는 장인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 지난달 5일 오전 1시37분쯤 경기도 파주시 한 아파트에서 40대 남성 ㄴ씨가 흉기로 아내를 살해한 뒤 본인도 목숨을 끊었다.

지난 8월 한 달 동안 국내 통신사에 보도된 ‘아내 살해’ 사건은 10건(중복 제외)이었다. 2건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8건은 법원 판결문을 통해 알려졌다. 발생시점은 각각이지만, ‘0촌’의 남성에 의해 목숨을 잃는 여성의 수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해 규모는 어떨까. 알 수 없다. 해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발간하는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7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죽임을 당했고 이 가운데 45명의 가해자가 남편(전 남편 포함)이었다. 이 수치 또한 언론보도 사례만 취합한 것이어서 실제는 클 수밖에 없다. 살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친 사건 등도 빠졌다.

‘아내 살인’은 가정폭력의 주요 대상이 가장 극단적인 피해자로 내몰리는 유형에 속한다. 하지만 실태를 알지 못해 문제 의식의 제고나 정책적 대응도 꾀해지기 어렵다.

실제 ‘아내 살인’은 수사기관이 생산하는 범죄통계에서부터 자취를 감춘다. 경찰·검찰이 내는 통계 중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 범주에 ‘배우자’가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범죄통계인 ‘경찰 범죄통계’와 ‘대검찰청 범죄분석’은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15종으로 분류해 담고 있다. △국가 △공무원 △고용자 △피고용자 △직장동료 △친구 △애인 △동거친족 △기타친족 △거래상대방 △이웃 △지인 △타인 △기타 △미상이다. 살인·강도·강간 등 주요 범죄가 어떤 관계에서 주로 발생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분류한 것이다.

그 분류에 ‘배우자’는 없다. 배우자 살인은 ‘동거친족’ 범주에 들어가지만, 이 분류 안에는 부모 또는 자녀를 살해하는 존속·비속살해 등도 모두 포함되기에 배우자 살해 현황과 규모를 정확하게 발라내 파악하기 어렵다. 실제 2019년 발생한 1050건 살인범죄 가운데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친족(27.1%)이 가장 많았다. 배우자·자녀·부모·형제 등에 의한 살인이 모두 묶인 탓으로 풀이된다.

젠더폭력의 실태 파악은 당연히 불가능해진다. 가정폭력은 일반적으로 가족구성원 내에서 발생한 폭력을 말하지만 2017~18년 발생한 가정폭력 범죄 중 ‘가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인 사건이 74.8%(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달한다. 성별 권력 불균형이 폭력 원인이 되는 젠더폭력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거친족이라는 넓은 범위로 묶인 현행 범죄통계에서는 이런 젠더폭력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은 죄명을 기준으로 분석이 이뤄진다. 예컨대 가정폭력 사건이라도 살인이 발생하면 일반 살인사건, 폭행이 있으면 일반 폭행사건으로 묶인다. 통계만으로는 배우자 살인 발생 현황은 물론,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임시조치 현황 등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사례가 배우자 살해인데, 현행 범죄통계가 이를 놓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성훈 경찰대 교수도 “범죄통계는 관련 대책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다. 이 통계가 세밀하지 못하면 대응책 마련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검찰청은 ‘범죄분석’과 별도로 다달이 ‘가정폭력 사범 접수·처리 현황’을 발표하긴 하나 △전체 접수건수△구공판·구약식·불기소 등 처분 건수만 분류된다. 가정폭력의 주된 가해·피해자는 누구이고, 어떤 종류의 폭력이 주로 발생하며, 이에 따라 수사기관 조처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이 통계를 통해 파악할 수가 없다.

배우자 범주가 빠진 범죄통계의 한계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다. 2019년 5월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여성폭력 범죄통계 개선’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윤덕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현재 명예연구위원)은 발표문을 통해 “현재 피의자통계원표의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가정폭력을 집계해 낼 수 있는 항목은 동거친족 정도이며 가정폭력의 주 대상인 배우자가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자리에서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우리나라 살인 통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범죄 분류가 매우 제한적”이라며 미국 버지니아주 범죄통계와 비교하기도 했다. 버지니아주 범죄통계는 ‘살인 범죄자·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친밀한 관계 △전·현 배우자 △사실혼 배우자 △남자친구·여자친구 △동성애 관계를 비롯해 모두 24종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보다 9종 많다. 이 교수는 “IPH(Intimate partner homicide·친밀한 관계에서의 살인)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이며, 남성 IPH 범죄자들은 성적 질투와 소유욕 때문에, IPH를 저지른 여성들은 학대 관계를 끝내기 위해 살인에 의지하는 등 안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반응하는 경향성을 보였다”는 연구결과도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IPV·intimate partner violence)에 대한 체계적 통계 작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통계는 국제사회 젠더 관련 현황을 비교할 때 주요 지표로 활용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이 통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비교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일단 친족 카테고리에서 배우자 등을 분리해야 해야 한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취지에 따라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통계를 별도로 내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8년 제정돼 2019년 12월 시행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여성폭력 발생 현황 등에 관한 통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여성가족부 장관이 이를 정기적으로 수집·산출·공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관련기사: 젠더 데이터, 빈칸을 채우자 hani.co.kr/arti/SERIES/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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