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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우울과 웃음으로 칵테일을 만들어볼까?

등록 :2021-06-12 08:45수정 :2021-06-12 09:56

[토요판] 밀레니얼 읽기
(12) 우울과 고독을 말하는 법

인스타, 카톡 없이 견디기 어려워
새벽녘 다종다양한 우울 밀려오면
‘우울증의 바이블’ 펴보며 탐색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시대
우울도 유머를 빌려 말해보자
코미디로 승화… 활력 올지니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가끔은 밤의 소음을 견디기가 어렵다. 그중에서 가장 요란한 소리는 속에서 난다. 모든 사람들과의 연결이 끊긴 시간, 무엇과도 닿아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 새벽 두시 반, 내 속에서는 외로움이 날뛰는 소리가 난다. 아직 하루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시간에, 낮 동안 다 돌아가지 않은 모터는 소란스럽게 요동치며 적막을 깬다. 견딜 수 없는 우울이 밀려온다. 우울의 종류는 다종다양하다. 알 수 없는 사이에 만들어진 어두운 그림자가 나를 덮는다. 무력하다.

고백하건대 나는 고독하다. 그리고 우울하다. 고독과 우울에는 뚜렷한 매뉴얼도 없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훑어내면 끝나는지도 알 수 없다. 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관계가 필요하다. 인스타그램과 전화, 카카오톡 없이는 견디기 어렵다.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관계 중독’이다. 가수이자 시인인 레너드 코언은 말했다. “완벽한 것은 없다. 어디에든 틈은 있기 마련. 빛은 그곳으로 들어온다”고. 하지만 내게 틈이 있고, 네게도 틈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큰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각자 어느 정도의 빛을 받겠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틈이 있고 그 틈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프던 사람들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심리학자 앤드루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 개정판이 출간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지인들의 ‘인스타 간증’이 이어졌다. “힘들 때 이 책이 정말 도움이 됐다”는 추천도 빠지지 않았다. 접해보긴 했지만 완독은 미처 하지 못했다며, 함께 읽을 사람을 구하기도 했다. 이 책은 우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사전처럼 두툼한 역작이다. 지은이는 우아한 문장으로 우울증의 사회적 의미와 인간적 깊이를 탐색하고 나선다.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절망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정말 그런가? 우울은 고통스럽다. 오늘날 20대 우울증은 특히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 4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발표를 보면, 2014년 6만명을 조금 넘겼던 우울증 환자는, 2020년엔 17만명 가까이 치솟았다. 지난해 전체 우울증 환자 중 20대 환자의 비율도 16.8%로 가장 많았다. 50대와 60대 우울증 환자가 각각 14만여명, 16만여명으로 여전히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보다 더 많은 수의 환자가 20대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읽을 수도 있다. 다르게 보면, 우울증에 갑자기 많은 사람이 걸렸다기보다는 아프던 사람들이 비로소 ‘아프다’고 말하기 시작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코로나 우울’과 취업난 등을 고려할 수도 있지만, 사회 분위기 자체가 많이 바뀐 것도 실감한다. “나 요즘 약 먹는다”고 하면 “안 먹는 사람이 어딨냐”는 천연덕스러운 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서점에는 우울에 관한 책이 즐비하다. 우울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다룬 교양서 <우울할 땐 뇌과학>(앨릭스 코브)은 베스트셀러 100 상위권에 오랫동안 올라 있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이주현)처럼 우울증 또는 조울증을 겪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은 책도 적지 않다.

우울과 절망에 대해 말할 때 ‘유머’를 빌리기도 한다. <엘런 쇼>로 알려진 미국의 코미디언 엘런 디제너러스는 스탠드업 코미디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무대 위에 마이크 하나만 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말로만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미국, 유럽 등지에선 인기가 높다. 엘런은 동성 연인을 교통사고로 잃은 이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썼다. <하나님과 전화통화>라는 제목의 이 스탠드업 코미디는 그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20년 한 해 동안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탠드업 코미디 쇼 중 가장 탁월했던 장면들을 뽑아 만든 <스탠드업 베스트 2020>을 보면, 흑인 여성 코미디언 미즈 팻(<지옥에서 온 코미디>)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언젠가 백인 남성과 만나 벌인 엄청나게 야한 성적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그때 자신의 나이가 불과 11살이었다고 밝힌다. 백인 남성이 어린 흑인 여자아이에게 저질렀던 성폭력을 폭로하는 것이다. 동등한 위치에서 한 일종의 ‘데이트 이야기’로 받아들이던 관객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미즈 팻은 “백인들 엿 먹으라고 해”라는 대사로 다시금 통쾌하게 한 방 먹인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우울하고 절망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승화시킨 것이다.

넷플릭스 &lt;지옥에서 온 코미디&gt; 한 장면. 코미디언 미즈 팻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넷플릭스 <지옥에서 온 코미디> 한 장면. 코미디언 미즈 팻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우울증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활력이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삶은 슬플 때조차 생기에 차 있다.”

<한낮의 우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나 역시, 생기를 얻기 위해 유머와 바짝 붙어 우울을 밀어내는 중이다. 지난 주말에는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직접 나섰다. 거리두기를 한 가운데 적은 수의 관객이 모인 자그마한 공연이었다. 재작년부터 몇몇 친구들과 ‘동북아국제구술문화연구회’(동북구연)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어 각자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코미디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우리는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관객들이 웃어주면 코미디가 되는 거고, 안 웃으면 그냥 구술 문화가 되는 거야.” 고백하자면 우리에겐 약간씩의 불행이 있었다. 그래서 유머의 언어를 빌렸다. 코미디의 문법에 각자의 사연을 넣고 잘 흔들어 맛있는 칵테일로 만들어 팔았다.

우울 반대는 행복 아니라 활력

준비하는 과정은 즐겁고 괴로웠다. 결핍과 상처를 재료로 삼았다. 우리는 마음속의 이야기를 뱉어냈다가 다시 씹어 삼키고, 소화하고, 그것을 다시 이야기로 벼려내는 일을 되새김질하듯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질긴 이야기는 연해졌고, 어떤 사연에서는 독이 빠졌다. 바람난 남편이 집을 떠난 후, 자식의 성을 바꿔야 했던 친할머니 얘기를 하면서 “왜요, 근본 없는 새끼 처음 보세요?”라고 농을 던지자 관객들이 웃고 울었다.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에도 외모 지적을 당했던 순간을 폭로하자 관객들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만든 무대는 왠지 모를 생기가 넘쳤다. 마스크 너머로 전해지는 웃음과, 초여름밤의 공기가 섞여 만들어진 흐름이었다. 어쩌면 유머로 우울을 밀어내는 것, 그것이 우울과 고독을 견디는 가장 탁월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천다민 뉴닉 에디터

▶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을 밀레니얼 세대라고 한다. 정보기술(IT)에 능하고 개성이 강하며 부당한 일에 적극 목소리를 내고 앞날에 대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갖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 ‘나 때는 말이야’라고 툭하면 가르치려는 ‘라테 세대’는 모르는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를 소개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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