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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어디서든 성별 없는 존재의 사랑에 관해 말할 수 있다면

등록 :2021-05-15 09:25수정 :2021-05-15 14:59

[토요판]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31. 사랑의 쓸모

사랑을 말할 땐 사랑만 말하자
자꾸 몸에 대해 말하지 말고
엄격한 조건·자격 따지지 말고

마음 담긴 꽃다발 받은 마흔살
내 사랑 ‘비정상’ 참 다행이다

어떤 사랑이든 공감하고 위로하는
모두에게 열린 사랑 말하는 사회면
나는, 내 삶은 좀더 자유로웠을까
2015년 10월4일 소풍으로 통도사에 놀러 갔을 때를 2017년에 그리다. 그림 박조건형
2015년 10월4일 소풍으로 통도사에 놀러 갔을 때를 2017년에 그리다. 그림 박조건형

사랑에 관해 말하려면, 사랑에 관해서만 말해야 한다. 사랑을 말하는 일이 사랑 말고 다른 것을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사랑에 관해 말해야 하는 인간의 책무가 사라진 건 아니다. 우리가 품었던 사랑의 말이 사라지거나 소멸된 것일 리 없다.

이방인도 아닌데 이방인처럼 이 사회 바깥에 살아야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이따금 사랑을 묻고 싶어진다. 성소수자의 사랑은 항상 너무 많이 깎여나가고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음란함으로 치환되어 보인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오늘은 사랑에 관해서만 말하려 한다. 나와 그들을 가르고 쓸모와 효용을 따져,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나누는 일 말고,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그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쯤 적어보려 한다. 어느새 쉰을 넘겼으니까 이제 조금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이 났다.

열한살의 떨림을 기억한다

내 사랑의 첫 기억은, ‘북소리’였다. 열한살 때였다. 나는 마음속 말도 제대로 꺼낼 줄 모르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타고난 것들이 다른 아이들과 달라 항상 도드라지니 나는 언제나 숨어 있어야 했는데, 한 아이 앞에서 내 작은 몸이 큰 소리를 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여러가지 사랑에 관한 자극들이 온 사방에서 흘러들어와, 내 사랑이 무언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무언가, 이른 나이에 사랑을 고민하는 일이 가능하겠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 없었다. 기껏해야 흙을 파헤치며 놀고 ‘컬러티브이’가 들어온 집에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 환호성을 지르며 구경하던 때였으니, 아무도 사랑 같은 것에 관해 말할 줄 몰랐다. 교복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시집 속에서나 얼굴 빨개지며 몰래 읽었을까, 사랑은 ‘애들은 몰라도 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나는 열한살의 내 온몸을 쾅쾅 울리던 그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상대가 같은 반 남자아이였으니 내가 남자아이였다면 이상하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열한살의 나는 그 북소리처럼 울리던 마음이 이상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그 아이의 얼굴 도장이 새겨져 단 한순간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이 무섭거나 두렵지도 않았다.

이게 도대체 뭐지, 싫지 않은 이 마음은 왜 이렇게 무겁지, 내내 불편했던 몸 때문에 오히려 나는 더 겁에 질렸다. 자연스럽게 흘러넘쳤던 내 사랑이 흘러간 곳에서 마주한 나의 남성 신체는 그래서 더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사랑이 성별과는 관계없는 자연스러운 마음의 생리란 사실이 해답이 되었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내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사랑과 나의 신체는 하나가 아니었고, 나는 그걸 한 몸 안에서 겪어야 했다.

남자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사랑은 사랑대로 키를 키웠는데, 남성의 몸 역시 다른 쪽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십대 시절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나와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의 싸움이었다. 사랑을 느끼는 북소리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남성의 생리 사이의 시끄러운 결투였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해의 욕망 또한 커져갔고, 그 싸움이 선명해질수록 나는 사랑 없는 몸이거나 몸 없는 사랑이어야 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몸이었다면 오히려 내 사랑은 쉬웠을까, 나는 가장 아름다운 것과 가장 끔찍한 것을 매 순간 한 몸 안에서 동시에 맞닥뜨려야 했다.

하루하루 피로함의 연속이었고, 쓰러진 몸은 항상 남성의 것이었으니 나는 단 한 번도 승리할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패배했다. 다른 사람에겐 하룻밤 열병처럼 지독히 앓는 것이 당연한 그 환절기는, 나에겐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전쟁터였다. 매번 지고 마는 전쟁터였다. 지는 줄 알면서 다시 또 북소리에 이끌려 나서야 하는, 지독하고 끈질긴 싸움이었다.

서로의 모습을 인형으로, 서로 그리고 만들었다. 김비 제공
서로의 모습을 인형으로, 서로 그리고 만들었다. 김비 제공

불가능한 사랑에 모든 걸 걸곤 했지

꽃다운 나이, 스무살이 되었다. 사랑 앞에 선 스무살 나는 갑옷을 두른 채였다. 가면을 쓰고서라도 살아남고 싶었던 나는 사랑을 비관하며 제일 형편없는 의미를 움켜쥐었다. 나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고, 헤매게 하지 않으며, 최소한 쓰러진 나를 마주할 필요 없이 아예 나 자신을 지워버린 채 사랑 앞에 섰다. 누구도 마주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혼자만 아는 그 따위 사랑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어차피 피폐해 버린 이 사회의 사랑을 가리키며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저들에게도 추하고 더러운 것이 사랑이니, 나 자신 역시 그래도 되는 일이라고. 비굴하고 무책임한 것이 원래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랑의 본모습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사랑 없는 모든 사람이 궁지에 몰리는 건 아니겠지만, 존재의 흉터가 되고 만 내 사랑은 그렇게 내 삶을 나락으로 떠밀었다. 사랑을 지우고 나니, 아무것도 좋아할 수 없었다. 내 안에 어떤 소리도 들으려 하지 않는, 텅 빈 내가 되었다.

이따금 그때 내가 사랑을 아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나는 달라졌을까 생각한다. 어차피 혼자서는 알 수 없는 게 사랑이니 나에게 사랑을 알게 해줄 수 있는 누군가 나타났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싸우지 않아도 된다고, 사랑이란 사랑하는 일이지 싸우는 일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누구에게도, 가족에게까지도 사랑받지 못한 삶이라 그랬는지 어쩜 그렇게 지독히도 사랑을 그리워했는지. 가능하지 않은 사랑에 모든 걸 걸곤 했는지.

‘남자’라는 가면을 쓴 채 다시 또 북소리를 따라 누군가에게 이끌리게 되면서, 여러 해 마음속으로만 그를 그리워하는 나를 알게 되면서, 나는 자주 허망하게 웃었다. 도대체 나에게 뭘 어쩌라는 말인 거지, 아 참 삶이란 거 쓸모없네. 나는 아마도 깊은 우울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그리워할 수 없고 누구의 그리움도 되지 못하는 이십대의 나는 내가 받아 든 남루한 삶의 쓸모를 헤아리고 있었다. 요즘엔 사랑 때문에 삶의 의미까지 되짚어보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하필 나는 그렇게 허약한 사람이었다. 내 사랑은 자유롭지 못한 존재와 묶여 있으니 매 순간 위협일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 어디서든 성별 없는 존재의 사랑에 관해 말하고, 누구의 사랑이든 공감하고 위로하는 마음들을 마주할 수 있는 사회라면 어땠을까, 나는 상상 속에서나마 30년 전의 나를 물끄러미 응시한다. 모두에게 열린 사랑을 말하고, 사랑의 너른 품을 끊임없이 증명하는 사회였다면 나는 좀 더 자유로웠을까, 최소한 내 사랑을 누군가에게 토로할 기회라도 있었을까? 모든 생이 그러하듯 지나고 나서야 나는 서툴던 내 사랑의 풍경을 되짚어본다.

‘몸’에만 사랑을 말하던 그들

비로소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몸으로 수술을 받은 건, 서른한살. 수술을 받았으니, 이제 사랑도 할 수 있겠단 생각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나는 조금 더 비관적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흘러넘쳤던 내 사랑은 단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 없으면서 수술로 만들어진 몸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란 도대체 얼마나 진심인 걸까, 나는 내가 원하던 사랑으로부터 더 멀찌감치 물러났던 것 같다.

이미 나이 서른을 훌쩍 넘겼고 혼자서 삶을 꾸려갈 수 있게 되면서, 이제야 사랑은 다른 사람들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되었다. 비로소 평등한 존재로 (최소한 겉모습만으로라도) 사랑 앞에 서고 나니, 조금 어깨가 펴졌다. 다른 사람들처럼 동등한 사랑을 누린다는 건 이런 기분인 모양이구나, 나는 이제야 내 사랑을 말할 수 있었고, 내 사랑의 진심을 말할 수 있었다. 이 사회가 자기들끼리만 주고받던 사랑이란 말의 소통에 (최소한 겉모습만으로라도)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에 관한 똑같은 이야기를 쳇바퀴 돌듯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며 탐닉하는 이 사회의 풍경을 보면서, 나는 훨씬 더 ‘머어얼리’ 사랑으로부터 물러날 수 있었다. 뭐, 하면 하는 거고 말면 마는 거고, 내가 아니라 수술한 내 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더 ‘머어어어얼리’ 물러났다.

그중에 한 사람, 혹시나 내가 믿고 있던 사랑에 진심인가 싶은 한 사람을 만났을 때, 까마득히 잊고 있던 북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는 걸 듣게 되었을 때, 나는 열한살의 나로 돌아가 문득 얼굴이 붉어지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꿈이 ‘아들과 목욕탕에 가는 것’이라고 했을 때, 나는 손가락을 들어 내 머릿속에 떠오른 북소리를 마음껏 비웃어주었다. 배를 두드리고 허리를 여러 번 접어 깔깔대면서, 이 나이 먹도록 다시 또 속고 만 어리석은 나를 향해 배 속에서 끌어올린 야유를 퍼부어주었다. 거기 여전히 부끄러운 얼굴로 숨어 있던 내 사랑을 향해, 욕지거리를 퍼부어주었다.

그때 그 사람은 아들과 목욕탕에 가고 싶다던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까, ‘몸’에만 사랑을 말하던 그들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몸을 쫓아다닐까? 아들을 꿈꾸던 그 사랑도, ‘몸’을 쫓아다니던 그 사랑도 비난할 마음은 없다. 인간의 사랑이 원래 그런 거라면 더 큰 꿈을 꾸었던 내 어리석음을 탓해야 할 뿐 그들의 사랑에는 죄가 없는지도 모른다. 다들 그렇게 살고, 다들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라고, 비로소 ‘보통’의 내가 된 나는 보통의 사랑에 만족해야 하는 건지도. ‘사랑, 참 쓸모없네.’ 나는 다시 또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다.

햇살 좋은 날 발코니에 나란히 앉아 찍은 최근 사진. 김비 제공
햇살 좋은 날 발코니에 나란히 앉아 찍은 최근 사진. 김비 제공

왜 그토록 많은 조건과 자격 들이미나

꽃이 참 쓸모없단 걸 아는데, 꽃을 받고 싶던 때가 있었다. 남자고등학교를 다닐 때, 같은 반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꽃 한 송이를 선물해달라고 졸랐던 적이 있고, 그래서 꽃 한 송이를 받았다. 튤립이었다고 나는 기억하는데, 채 피지도 않은 꽃송이를 제대로 버티지도 못해 허리를 구부린 그 한 송이 꽃을 들고서 나는 조금 설렜던 것도 같다. 아닌가, 받고 보니 어떤 마음도 없는 꽃이란 게 얼마나 아무 의미 없는지 알게 되어 내내 짜증스러워했던가?

사랑의 마음이 담긴 꽃을 내게 준 사람은, 지금 내 곁에 함께 사는 이 사람이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마흔이 넘어서였다. 어느새 만난 지 10년이 넘어가는 요즘에는 받지 못했지만, 재작년까지만 해도 신랑은 불쑥 꽃다발을 들고 현관에 나타났다.

뭐 근사하게 사랑의 말을 되뇌거나 고맙다는 낯간지러운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오히려 ‘오다 주웠다’에 가까운 투박한 꽃다발 증정식이지만, 그 꽃다발을 품에 안으며 나는 많은 걸 떠올린다. 호들갑을 떨며 환호하고, 우리 신랑 최고라고 엄지를 들어 올리면서, 나는 사랑 없던 지난 시간을 생각한다. 내 사랑은 분명히 내 안에 있었지만 거기 바깥에 나를 위한 사랑이 없어, 궁지에 몰리고 자학하고 자해하던 때. 삶의 쓸모까지 남루해져 고개만 떨군 채 발끝만 보고 버텨야 하던 때.

결혼을 안 한다, 출산율이 떨어진다, 젊은 사람들을 닦달하듯 몰아치는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데, 나는 우리 사회에 그럴 자격이 있나 돌아보게 된다. 자연스러운 게 사랑이고, 서로를 위하고 지키는 게 사랑이라면서, 왜 항상 사랑 앞에 그토록 많은 조건과 자격을 들이밀어왔는지. 사랑을 말하지 않고 사랑을 말했다고 믿으면서, ‘정상적인 사랑’이란 말에 온 사회가 목을 매면서, 사랑 없는 삶을 안정된 미래라고 강요하고 있는지.

내 사랑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꽤나 지독했지만, 나는 실오라기 같던 내 사랑을 놓지 않은 나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영리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내 사랑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이번 생, 고마운 사랑이었다.

▶ 김비. 소설가. 에세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등이 있으며, 배구선수 ‘김연경’처럼 모두에게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0년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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