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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이승엽·김태균 기록 넘은 ‘괴물’…강백호는 강백호다

등록 :2021-04-24 11:17수정 :2021-04-24 11:36

[토요판] 이충걸의 인터+뷰
야구선수 강백호

데뷔 뒤 세 시즌 벌써 홈런 65개
“‘한방 맞으면 큰일’ 느낄 만한
홈런을 칠 수 있다는 게 내 장점”

강인함과 승부욕 넘치는 ‘강철 멘탈’
인생을 이해하려 단어 찾는 소년 모습
“내색 안 해서 그러시는 거 같아요”
강백호가 지난 7일 오후 프로야구 수원 케이티(KT) 위즈 홈구장인 위즈파크 브이아이피(VIP)실에서 한 손에 야구공을 쥔 자세로 개구쟁이 소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팀이 만든 찬스를 살릴 때 짜릿함을 느낀다고 했다.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니까요.”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강백호가 지난 7일 오후 프로야구 수원 케이티(KT) 위즈 홈구장인 위즈파크 브이아이피(VIP)실에서 한 손에 야구공을 쥔 자세로 개구쟁이 소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팀이 만든 찬스를 살릴 때 짜릿함을 느낀다고 했다.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니까요.”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햇빛이 이쑤시개처럼 따끔따끔한 7일, 프로야구 케이티(KT) 위즈 홈구장인 위즈파크 브이아이피(VIP)실. 검은색 뉴발란스 티셔츠와 빨간 반바지 차림의 강백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들어와 아무렇지도 않게 소파에 앉았다. 아니, 소파를 가볍게 걸쳤다. 서 있을 땐 몰랐는데 삼나무 같은 양감은 나를 <걸리버 여행기> 릴리퍼트 소인국 사람으로 만들었다. 새카만 마스크 위로 감정이 실리지 않은 눈이 반짝거릴 때 어제 잘라서 옆으로 넘긴 갈색 머리가 조숙해 보였다.

“오늘 컨디션은 괜찮아요. 잠 많이 자고 와서.”

강백호는 만화 주인공처럼 약간 부푼 볼과 고저 없이 건조한 톤으로 말했다. 그리고 라텍스로 씌운 듯한 무표정. 어차피 말쑥한 몸에 고분고분한 남학생 이미지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야구장에서는 되게 파이팅 있는 선수지만, 밖에 나오면 그렇게 활동적이지 않아요. 그래도 나름 되게 친절한 편이니까, 편하게 다가와주시면 저도 편하게 다가갈 수 있어요.”

그 유명한 승부욕 때문에 강백호가 파이터 같은 줄 알았는데 어린 토르는 우리가 아는 이미지와 조금 달랐다. 어떤 면으론 내성적으로 보였다. 그가 감정을 다 써버릴 거라는 생각은 강백호에 대한 첫번째 오해였다.

엑스칼리버를 든 ‘연쇄사인마’

인터뷰 전날, 케이티 위즈는 엘지(LG)에 패했다. 필시 강백호의 4타수 무안타도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열받죠. 제가 못 쳐서 진 거기도 하고, 제가 좀 더 해결해주고 막혔던 구멍을 뚫어줘야 되는데 그걸 못해서 짜증이 많이 났는데, 저희가 시즌 144경기, 장기 레이스거든요. 그 속에서 항상 배우기 때문에 그렇게 타격을 많이 받진 않아요. 제 성격이 하루하루에 연연하지 않고 그 다음날을 보는 편이라, 오늘은 오늘, 내일은 내일. 어제는 상대 투수가 워낙 잘 던졌고, 제 입장에서는 조급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은 어제처럼 맥없이 끝나지 않게 좀 더 차분하게 경기를 이겨나가야 될 거 같아요.”

야구는 주관적일 수 없고, 선수는 종종 객관적 수치로 표시된다. 데뷔 세 시즌 동안 강백호가 친 홈런 65개는 선배 거포들의 루키 시절 기록을 넘었다.(이승엽 54개, 김태균 58개, 김재현 47개) 데뷔 이후 통산타율이 0.320에 이르고, 장타율(0.522)과 출루율(0.396)도 최고 수준이다. 올 시즌 15경기에서 아직 홈런은 하나뿐이지만, 4할 가까운 타율(0.397·2위)로 괴물 본능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영웅적인 모범을 따라 꿈의 타이틀이 강백호를 수식하기 시작했다.

그 이름 석자에 보내는 세태의 흥미,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뿜어내는 본능적인 스릴. 특권 같은 재능과 아예 홀리고 마는 파괴력. 2018년 3월24일, 프로야구 첫 타석 풀 카운트. 스무살 강백호는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그리고 몸통 회전과 타이밍이 합작한 스윙. 배트가 제힘을 못 이겨 등 뒤로 완전히 젖혀질 때 공은 담장 뒤로 뻗는 발사체가 되었다. 동시에 강백호는 공보다 빠른 발사체가 되었다.

“당시 상황에는 그게 그만큼 충격적이라고 느끼지 못했어요. 경기할 때는 생각이 그만큼 없어요. 의식을 안 해서. 지나고 보니 확실히 임팩트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전시된 새 제품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찾아낸 듯이 강백호를 연호했다. 일종의 핵발견이랄까. 야구처럼 연민으로 가득한 스포츠는 없다. 종종 사랑과 구분이 안 된다. 관중이 선수를 포옹할 땐 전장에 떠밀린 형제가 구조당하는 것 같다. 이때 ‘강타자’라는 낱말은 시대정신으로서의 노스탤지어를 뿜는다. 그날 강백호의 타구에는 확실히 무력적인 데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강백호는 환호작약하지 않았다. 거죽이 부처처럼 차분해서 날뛰는 그 마음이 보이지 않은 걸까.

“사실 홈런을 친 순간엔 즐겁고 시원시원한데 매 순간 즐겁고 짜증 나는 것들을 다 표현하다 보면 다음 경기에도 다다음 경기에도 지장이 있으니까요. 야구가 저 혼자만 하는 종목이면 세리머니도 하고 그랬겠지만, 상대 팀도 있고, 저희 팀도 있다 보니까 완전 클러치 상황이 아닌 이상은 되게 자제하는 거 같아요.”

프로야구 수원 케이티(KT) 위즈 홈구장인 위즈파크에서 만난 강백호 선수가 시합이 없는 날에는 무얼 하냐는 질문에 “친구들도 만나고 온라인 게임도 하며 논다”고 대답하며 웃고 있다.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프로야구 수원 케이티(KT) 위즈 홈구장인 위즈파크에서 만난 강백호 선수가 시합이 없는 날에는 무얼 하냐는 질문에 “친구들도 만나고 온라인 게임도 하며 논다”고 대답하며 웃고 있다.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무엇을 더 이상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아이 종족은 늘 있다. 아이들은 늘 앞선 벗들보다 더 강하고, 더 빠르다. 그리고 선배들을 패퇴시킨다. 어떤 때 강백호는 방망이를 든 기인 같았다. 자기가 가리킨 쪽으로 볼을 보내던 베이브 루스처럼.

2019년 11월16일, 한일전으로 치러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슈퍼라운드 4차전은 잊을 수 없다. 경기 내내 끌려가던 7회초. 주자 1, 2루에 2아웃 풀 카운트 상황에서 강백호가 때린 추격의 2타점은 일본 도쿄돔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경기는 8 대 10 패배였으나 강백호의 4타수 2안타 3타점은 결정적 순간 존재감을 드러내는 스타 탄생의 수열에 불을 붙였다.

프로야구는 다른 디엔에이(DNA)를 가진다. 모든 스포츠가 열망하는 종목이고, 도시에서 열리며, 신출귀몰한 캐릭터가 있고, 어떤 이는 비도덕적이다. 냉소도 깊다. 따라서 유달리 눈에 띄는 선수는 환상 속에 오래 거닐 수 없다. 퍼부어지는 기대를 총족하지 못하면 핵폐기물처럼 처리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백호의 무시무시한 담력과 에네르기를 이야기했다. 강철 멘탈이 상표가 될 만큼.

“남들과 비슷하다 생각하는데 내색을 안 해서 그렇게 보시는 거 같아요. 저도 긴장하고 떤 적도 많은데 지나고 나면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하기 마련이라서 그 상황에 좀 더 침착하게 하다 보면 덜 후회하지 않을까. 그때부터 조금씩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쉽진 않은 것 같아요.”

강백호가 가끔 질문을 되물으며 고개를 갸웃할 때 부드러운 갈색 머리는 일련의 섬네일 이미지를 그렸다. 엑스칼리버처럼 배트를 든 강백호에겐 데카당스한 일면도 보였는데 언어는 달랐다. 운동선수라면 으레 그럴 것 같은 직진성도 없고 매우 신중해서 차라리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 같았다. 황금 올리브 치킨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길 해야 했을까? 육중한 존재감을 두른 지나친 항균성 때문에 벽에 내 머리를 찧고 싶었다.

케이티(KT) 위즈 강백호 선수가 팔에 보이는 문신을 설명하고 있다. 부모님 이름과 결혼기념일을 동맥이 뛰는 손목에 새긴 것이라고 했다.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케이티(KT) 위즈 강백호 선수가 팔에 보이는 문신을 설명하고 있다. 부모님 이름과 결혼기념일을 동맥이 뛰는 손목에 새긴 것이라고 했다.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30홈런, 100타점, 그리고 메이저리그

“제가 표현을 잘 못하고 낯도 좀 가리지만, 인터뷰는 항상 조심스러운 자리잖아요. 이렇게 방어적으로 얘기하는 게 고등학교 때 인터뷰 한번 잘못했다가 욕을 되게 먹어서 습관적으로…. 항상 조심스러운 거 같아요. 이 자리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어떤 선수는 컴퓨터칩처럼 몸속에 야구 경기력을 집어 넣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강백호는 그럴 필요가 없다. 타고난 허리 힘과 손목 힘에 짐승 같은 기세, 비현실적인 야구 센스를 장착했기 때문에.

“저는 중심 이동이 남들보다 좀 더 좋은 거 같아요. 제가 레그킥(한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내리면서 타격하는 자세)을 하기 때문에 오른쪽 다리를 드는데, 타격 시 상체가 아니라 하체 먼저 나가게 하고 뒷다리의 중심을 앞다리에 주면서 스윙을 하면, 방망이 힘을 공에 전달하는 중심 이동이 증폭되기 때문에 공이 더 멀리 나가는 거 같아요. 과학적인 거죠. 작용 반작용의 느낌?”

야구는 모두가 여생까지 사랑하는 스포츠겠지만 나에겐 공이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종목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강백호 같은 미래의 타자에겐 공이 바퀴처럼 크게 보이는지.

“실밥도 안 보이고 수박처럼 보이지도 않지만 공은 확실히 잘 보이는 거 같아요. 투수가 던진 공이 0.5초 안에 들어오는데 타석에서는 날아오는 타이밍도 잘 보이고 좀 더 느려 보이는 거 같아요. 딱 맞았을 때 홈런이라고 직감이 오는 거 같아요. 공이 방망이 안쪽에 먹히거나 끝에 맞으면 손이 되게 아픈데, 제대로 맞으면 되게 시원시원하고 손에 느낌도 없고, 그만큼 짜릿한 것도 없는 거 같아요.”

강한 어깨를 가진 강백호 선수는 고교 시절 투수뿐 아니라 포수로도 활약했다. 프로에선 타격 재능을 살리기 위해 주로 1루수를 맡지만, 팀 형편이 어려울 때 포수 마스크를 쓴 적도 있다. 케이티 위즈 제공
강한 어깨를 가진 강백호 선수는 고교 시절 투수뿐 아니라 포수로도 활약했다. 프로에선 타격 재능을 살리기 위해 주로 1루수를 맡지만, 팀 형편이 어려울 때 포수 마스크를 쓴 적도 있다. 케이티 위즈 제공

강백호의 별명은 사악한 비단 같은 부드러움이 있다. ‘연쇄사인마’. 그러나 이쯤에서 속으로 별명을 바꿔주었다. ‘같아요 요정’.

모든 것이 들끓었다. 팬들이 유니폼 등판에 선수 이름을 새기는 마킹은 프로야구 인기의 기준일 텐데 팬층 두둑한 엘지나 롯데와 달리 신생 팀은 스타 선수가 팀을 짊어질 것이다. 왕좌의 이대형이 은퇴한 뒤 강백호는 삽시간에 케이티 위즈 내 유니폼 판매 71%를 점유했다. 팬덤은 외로운 집착에서 슈퍼히어로 다중 우주로 가고 있었다.

“압박이나 부담감은 많이 없어요. 예전에는 관중 앞에서 막 흥분되고, 찬스 되면 내가 해결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제 타석에 집중해요. 나 하나 죽어도 되겠지, 이번엔 놓쳐도 되겠지, 그게 아니라 팀의 중심 타선이 돼 책임감을 갖다 보니까 좀 더 집중하는 거 같아요. 매 타석 매 회 투수도 바뀌고 뭘 던질지 모르지만, 팀원들이 제 앞에 좋은 찬스를 만들고 제가 그 찬스를 살릴 때 짜릿함을 많이 느껴요.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니까요.”

비범한 타자는 모종의 기술과 지식, 경험으로 새로운 법칙을 만든다. 강백호는 타격 자체가 세부 묘사와 함께 보도되는 선수라서 타격 폼이 두개라는 것으로도 이슈가 되었다. 3월 시범 경기에서 오른쪽 다리를 땅에 찍었다 들고 기아 멩덴에게 투런 포를 날렸을 때도.

“한국에 워낙 좋은 투수, 변칙 투구 하는 투수도 많아서 거기에 대처한 거예요. 제가 감명받았던 게, 기아 타이거즈 최형우 선배님이 원래 레그킥을 하는데 왜 어떤 때는 투스텝으로 치실까 그랬는데 다른 타격 폼을 갖는 게 슬럼프를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하셨어요. 맞는 말 같아서 확고함을 갖고 연습에 임했어요.”

고교 시절 강백호 선수는 ‘헤라클레스’로 불렸다. 서울고 2학년 시절 이미 나무 배트로 비거리 120m 가까운 홈런을 날리고, 수비 때는 마운드에서 시속 148㎞ 공을 뿌리는 초고교급 선수였다. 케이티 위즈 제공
고교 시절 강백호 선수는 ‘헤라클레스’로 불렸다. 서울고 2학년 시절 이미 나무 배트로 비거리 120m 가까운 홈런을 날리고, 수비 때는 마운드에서 시속 148㎞ 공을 뿌리는 초고교급 선수였다. 케이티 위즈 제공

우리는 파열하는 별들을 너무 자주 목격했다. 중력이 증가할수록 크기는 줄어들 것이다. 강백호에겐 몇개의 축적 모형이 있었다. 허들은 단지 작은 문턱. 강백호는 속도를 올리거나 줄이면서 방향을 잡는다. 2019년 6월, 사직구장 롯데전에서 오른 손바닥이 찢겼을 때처럼.

“제가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도 아니고, 누가 다치라고 해서 다친 것도 아닌데 너무 아쉬웠어요. 그 시즌에 제가 워낙 잘하고 있어서. 다치고 나서도 잘하긴 했지만.(부상 당일까지 강백호는 타율 4위(0.339), 안타 2위(103개), 득점 공동 3위(54득점)를 기록 중이었다)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제가 부주의했다고 생각하는 게 좀 더 마음이 편해서….”

강백호는 다듬어진 평정심으로 손바닥을 펼쳐 흉터를 보여주었다. “여기서 이 정도면 몇 센티죠?” 그때 손에 피가 흐르는데도 그게 아픈 얼굴인지 사람들은 잘 몰랐다.

“지금은 상처가 없는데요, 당시에는 시즌 끝날 때까지 되게 아팠어요. 전 그냥 남한테 얘기 안 하고 참고 했어요.”

강백호는 워낙 34인치, 무게 870그램 배트를 쓰다가 부상 이후 길이를 0.3인치 늘리고 무게는 10그램 줄인 34.3인치, 860그램 배트를 제작했다. 손에 쥘 때 틈을 만들어 상처에 닿는 면적을 줄이려고.

강백호는 발군의 스타성으로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와 매번 같이 거론된다. 스타일은 서로를 반대 위치에 둔다. 이정후가 샤프하고 외교적인 스타일이라면 강백호는 다른 선수들을 압박하는 장악력으로 무장했다.

“정후 형은 좋은 선구안을 갖고 있고, 저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침착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저랑 플레이 스타일이 아예 반대여서, 그런 것들이 좀 부럽기도 해요.”

이번 시즌 목표는 지난해보다 지표를 올려 30홈런과 100타점.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거 중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트렌트 그리셤(이상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코디 벨린저(LA 다저스), 조시 도널드슨(미네소타 트윈스)을 꼽는 강백호가 어디에 정박할지는 모두가 다 안다. 야구 천리안들은 한국 타자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국내 리그보다 평균 시속 7~8㎞ 빠른 구속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빠른 볼에 강한 강백호라면 생존 가능성이 높다고. 강백호는 너무나 강백호답게 말했다.

“만약 간다 해도 포스팅 기간이 4년 정도 남았고, 또 군대를 가야 되기 때문에,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거 같아요. 정확한 시기를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가보고 싶어요. 지금 저는 1루수니까 메이저리그 가면 1루를 보고 싶기도 하고, 외야수도 보고 싶고.”

시간이 갈수록 진지하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기분인지 알았다. 운동선수가 경험과 사색을 조합해 몸에 걸치려면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나는 이처럼 기이한 등장인물이 언어를 무기로 갖춘다면 희대의 소년 철학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강백호 선수가 지난 4월7일 수원 케이티 위즈파크에서 열린 엘지(LG) 트윈스와의 경기에 앞서 동료들과 타구를 잡는 훈련을 하고 있다. 강백호는 팀에서 1루수와 외야수를 번갈아가며 수비하고 있다.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강백호 선수가 지난 4월7일 수원 케이티 위즈파크에서 열린 엘지(LG) 트윈스와의 경기에 앞서 동료들과 타구를 잡는 훈련을 하고 있다. 강백호는 팀에서 1루수와 외야수를 번갈아가며 수비하고 있다.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중심 옮겨서 휘두를 때 에너지 폭발
몸속으로 달음질치는 피 보이는 듯
올해의 목표는 30홈런·100타점이죠
메이저리그요? 물론 기회 된다면!

좋아하는 노래처럼 ‘고잉 하이어’

“저의 장점은 와일드한 면이에요. 기세를 저희 쪽으로 넘어오게 할 홈런 한 방이 있다는 것. 투수가 이거 잘못 던지면 큰일 나겠는데, 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도요. 저는 뭐든지 적극적이고 공격성이 있는데 이제 상대도 그걸 알아서 역으로 이용한단 말이에요. 유인해서 스윙을 하게. 저도 그걸 다시 역으로 이용하긴 해요.”

촬영을 위해 강백호는 마스크를 벗었다. 작고 귀여운 코와 입이 드러나는 순간 진중한 얼굴이 순식간에 10대로 바뀌었다. 직각으로 앉아 있으니 몸속으로 달음질치는 피가 그대로 보였다. 인생을 이해하고 싶어 단어를 찾는 성장기 소년이.

강백호는 롤 모델도 경쟁자도 없다고 말하지만 실은 이승엽을 가장 존경하고 있었다.

“저도 그렇게 멋진 은퇴식 하고 싶어요. 마지막 타석 치고 응원가가 들리는데 그냥 되게 소름 돋았어요. 진짜 제가 봤던 영화, 드라마, 만화, 모든 장르 다 떠나 제일 감동적이고 제일 멋있고 제일 아름답고 제일 짜릿했던 경기였어요. 그리고 가장 슬픈 경기였어요.”

소년 부처의 입에서 슬픔이란 낱말이 나오니 역시 생경했다. 페이소스가 다른 사람 같았으니까.

성공의 변덕스러움에도 크게 관심 없는 강백호는 고교 시절 침체기 때 들었던 에일리의 노래 가사 중 ‘고잉 하이어’가 삶의 모토라고 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모든 걸 내 뜻에 날 맡길 거야…. 스릴러와 코믹 영화를 좋아하고, 코로나 끝나면 친구들과 외국 여행 가고 싶고, 고등학교 동창 셋을 만날 때가 제일 행복한 강백호에겐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강백호는 부모님 이름과 결혼기념일을 동맥이 뛰는 손목에 문신으로 새겼다. 결국 야구는 홈에서 출발해서 홈으로 돌아오는 경기였다!

“만약 제 아들이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면 아버지가 저한테 해주셨던 그대로는 안 할 것 같아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둘 다 힘들고요. 아이 뒤에서 봐주는 역할은 해도 너무 얽매이게 하고 싶진 않아요.”

케이티(KT) 위즈 강백호 선수가 지난 4월7일 수원 케이티 위즈파크에서 열린 엘지(LG) 트윈스와의 경기에 앞서 동료 선수의 타격 연습을 지켜보면서 날아간 공을 바라보고 있다. 강 선수는 이날 7회말에 역전 적시타를 날렸다.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케이티(KT) 위즈 강백호 선수가 지난 4월7일 수원 케이티 위즈파크에서 열린 엘지(LG) 트윈스와의 경기에 앞서 동료 선수의 타격 연습을 지켜보면서 날아간 공을 바라보고 있다. 강 선수는 이날 7회말에 역전 적시타를 날렸다. 수원/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인터뷰가 끝났다. 오후 3시 반. 강백호는 “오늘 되게 재밌었던 거 같아요. 제가 약간 무뚝뚝해 보일 수 있는데 되게 경청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인터뷰하고 사람들 만나면서 나이에 비해 좀 더 성숙해지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헤어지기 전, 허심탄회하게 악수를 했다. 손이 생각보다 작아서 깜짝 놀랐다. 비행선 같은 괴력의 장타자가 저 손에 숨어 있었다고? 손을 놓자 강백호는 온순한 매너를 가진 야수로 다시 돌아갔다.

커다란 구름 조각들이 하늘에 박혀 있었다. 태양은 직사로 그라운드에 내리꽂혔다. 나는 1루 관중석에 앉아 불량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베이스라인을 따라 걷는 강백호를 바라보았다. 강백호는 칙칙폭폭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동료들과 볼을 주고받거나, 볼을 캐치하지 못해 “아악!” 성대 긁는 소리를 내거나, 스윙 한 방으로 공기의 두께를 찢었다. 언젠가 본 적 있는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무엇일까, 한 야구 선수가 유실된 추억을 되찾아주는 것 같은 이런 감각은. 그때 알았다. 현실에서 야구 하는 강백호와 <슬램덩크>에서 농구 하는 강백호가 무엇이 닮았는지. 둘 다 심드렁한 듯 국경을 헤아리다가 발을 디딘 뒤에는 엄청난 자기 확신으로 미지의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다. 숫자보다 더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순수 위에서.

(그날 엘지전에서 강백호는 4타수 3안타 1타점 1볼넷으로 전날의 패배를 설욕했다. 7회말 동점, 2사 주자 1, 3루. 역시 클러치 상황에서 강백호가 친 우중간 안타는 3루 주자를 홈으로 들어오게 만든 결승타였다. 강백호는 강백호. 입 밖으로 낸 약속은 꼭 지켰다.)

녹취 홍혜림

▶ 이충걸 작가. <행복이 가득한 집> <보그> 에디터를 거쳐 2001년부터 2018년까지 <지큐 코리아> 편집장을 맡았다. 첫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 인터뷰집 <해를 등지고 놀다>와 18년 동안 써온 ‘에디터스 레터’를 모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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