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맛> 함소원 편. <티브이조선>은 ‘조작된 리얼리티 예능’이란 비판에 대해 “사적 영역을 100%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책임을 미뤘다. 방송 화면 갈무리
<아내의 맛> 함소원 편. <티브이조선>은 ‘조작된 리얼리티 예능’이란 비판에 대해 “사적 영역을 100%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책임을 미뤘다. 방송 화면 갈무리

“아름다운 사람은 떠난 자리도 아름답다.”

<티브이(TV)조선>의 <아내의 맛>이 시즌 종료되는 과정은 어쩐지 공중화장실에서 보던 표어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다. 방영되는 내내 피로하기 짝이 없던 프로그램은 떠난 자리도 피로할 일로 가득 차 있다. ‘연하의 중국 청년 부호와 결혼해 차원이 다른 부를 누리며 국적 차이, 나이 차이 등에서 오는 문화충돌을 경험하는’ 캐릭터로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몰고 다녔던 출연자 함소원이 사생활 조작 논란 끝에 하차했지만, 좀처럼 조작 논란이 해소되지 않자 <아내의 맛> 또한 시즌 종료를 선언했다. 그런데 참 흥미롭게도, 제작진과 출연자 양쪽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중이다. 2018년부터 3년을 동고동락한 사이라 그런지 행동 양식도 참 닮았다.

광고
<아내의 맛> 사태, 본질은 ‘조작 방송’

티브이조선 쪽은 지난 8일 밝힌 입장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출연자의 재산이나 기타 사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이기 때문에 제작진이 사실 여부를 100% 확인하기엔 여러 한계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그럼에도 함소원씨와 관련된 일부 에피소드에 과장된 연출이 있었음을 뒤늦게 파악하게 됐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의 가장 큰 덕목인 신뢰를 훼손한 점에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합니다.” 행간을 읽어보자면, 자신들은 ‘사실 여부를 100% 확인하기엔 여러 한계가 있’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영역에서는 함소원의 말을 믿었다가 낭패를 봤다는 의미이리라. 물론 그런 설명만으로는 “중국에 있다는 시어머니 막냇동생 전화 통화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 함소원 목소리와 닮았다” 같은 의혹을 다 해명할 수 없으니, 제작진은 아예 어느 부분에서 ‘과장된 연출’이 있었는지는 함구하는 전략을 택했다.

같은 날 함소원은 연예매체 <오센>(OSE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장된 연출에 나도 참여해서 촬영했기에 그 부분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시댁이나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세세하게 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아무리 촬영이라지만 다 밝힐 순 없다. 그 부분이 있었던 건 맞다. 과장된 연출이 있었지만 알고 촬영에 임했어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단독] 함소원 “과도한 연출 인정, 변명 NO…남편, 어머니도 놀라” (인터뷰). 2021년 4월8일. 오센. 장우영 기자) 반복해서 말한 대목을 살펴보면, 자신은 ‘(제작진의) 과장된 연출이 있었지만 알고도 참여해서 촬영에 임했던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제작진은 출연자에게 속았다고 말하고 출연자는 제작진의 과장된 연출을 따라간 거라고 말하니, 각자 자신들은 상대에게 소극적으로 끌려간 선의의 피해자라는 이야기다. 양쪽의 이야기가 이처럼 갈리면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취합하는 수밖에 없다. 제작진의 말처럼 함소원은 자기 사생활을 잔뜩 부풀렸고, 함소원의 말처럼 제작진은 적극적으로 과장된 연출을 했다고 보면 아마 진실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광고
광고

〈아내의 맛〉 조작 사태는 리얼리티 예능의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린 본질이 무엇인지를 폭로한다. 제작진이 공식 입장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아내의 맛>의 기획 의도는 ‘다양한 스타 부부를 통해 각양각색의 삶의 모습을 진솔하게 조명함으로써 시청자 여러분께 공감과 웃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함소원이 출연한 분량을 통해 제작진이 추구했던 것이 정말 ‘공감’이었을까? 이제 와서 모두 조작이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시가 식구들의 엄청난 재력이나, 툭하면 ‘대륙의 스케일’이라는 말과 함께 보인 예사롭지 않은 씀씀이, 거의 매회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시가와의 갈등이나 남편과의 다툼과 같은 에피소드들이 추구했던 방향은 공감이 아니라 눈요기와 가십에 가깝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초부유층의 라이프스타일을 전시함으로써 사람들을 홀리고, 그런 이들이 치고받고 서로를 헐뜯는 진흙탕 싸움을 하는 광경을 보여주는 것으로 가십거리를 던져주는 전략, 익숙하지 않나? 바다 건너 미국에서 유명인 리얼리티 티브이의 토대를 닦은 패리스 힐턴과 킴 카다시안이 일찌감치 정립한 ‘리얼리티’의 문법이다.

광고

방송화면 갈무리
방송화면 갈무리

‘진짜’ 대신 ‘진짜 센 자극’ 추구
비판에는 ‘시청자가 원한다’ 핑계
‘책임 통감 시즌 종료’ 무색하게
같은 제작진의 예능 잇따라

시청자 속이는 불량 예능 ‘진행형’

광고

결국 리얼리티 예능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실제 상황인 것처럼 보이는 드라마’에 가깝다. 드라마나 콩트에서 고부갈등, 부부싸움이나 재벌 3세 캐릭터를 보는 일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실제 상황’이라는 설정을 선사해 몰입감을 높이는 것이 리얼리티 예능의 핵심이다. 그나마 이 장르의 위험성과 한계를 어느 정도 인지한 사람들은 자극의 강도를 높이는 대신 출연자들 사이의 관계 형성에 집중하거나, 귀촌·캠핑 등의 대안적인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새로움을 추구하기도 한다. 〈아내의 맛〉 제작진은 다르다. 지난 3년간, 제작진은 함소원의 ‘실제 부부 생활’이라고 포장된 갈등과 ‘실제 재산’이라 포장된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것으로 자극을 한껏 올려 시청률을 추수해왔다. 서혜진 책임프로듀서가 만든 또 다른 티브이조선 리얼리티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의 캐치프레이즈가 ‘리얼타임 드라마’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게 ‘리얼’이 아니라, 실제로 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듯한 ‘리얼타임 드라마’라는 걸 딱히 숨길 생각이 없는 것이다.

물론 시청자들도 안다. 리얼리티 예능을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보는 사람들 또한 이미 장르 특성상 어느 정도 연출이 들어갔을 것을 짐작하고 있다. 그렇기에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회의를 극복할 만큼 더 과격한 갈등과 더 과격한 부를 전시한다. 애가 열이 39도가 넘는 고열 상태인데 그걸 민간요법으로 자연치유하자고 싸운다고? 집을 한바퀴 둘러보고 난 다음에 그 자리에서 일시불로 집을 산다고? 다들 제정신이야? 눈앞에 너무 큰 자극이 던져지면, 그 스트레스를 처리하느라 냉정하게 의심하고 사실관계를 따지려는 이성은 잠시 뒤로 물러나게 되어 있다. 마치 과격한 서사 전개로 시청자를 질리게 만들어, 완성도를 따지는 일을 잠시 미뤄두게 만드는 막장드라마처럼 말이다. 심지어 이쪽은 ‘실제 사생활’을 표방하고 있으니 자극의 정도가 막장드라마에 비할 바 아니다. 서혜진 프로듀서는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시청자는 다 옳다. 그분들이 진리다. 시청률 2~3% 찍고 ‘난 우아한 프로를 만들었어’ 자부하는 사람이 제일 이해가 안 된다. ‘당신이 못 만들어서 그런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미스트롯 서혜진 PD “시청자가 다 옳다, 이 치열한 지옥이 즐겁다”. 2021년 3월20일.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 사람들이 불티나게 찾으면 다 옳은 것이라는 논리 구조라면, 세상에 마약상만큼 올곧은 사람도 없겠다.

제작진은 “방송 프로그램의 가장 큰 덕목인 신뢰를 훼손한 점에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며 시즌 종료를 선언했지만, 폐지도 아니고 ‘시즌 종료’가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제작진이 자숙의 기간을 가질 것도 아니고, 어차피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회전문 돌듯 돌아오는데 그게 어디를 봐서 ‘책임을 통감’한다는 것인가?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시리즈를 흥행시키고 스핀오프로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학당〉까지 안착시킨 서혜진 프로듀서 사단에게 티브이조선이 책임을 물을 리가 없다. 〈미스트롯2〉 결승 진출자들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예능 〈내 딸 하자〉가 방영 중이고, 제목에서부터 그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리얼리티 예능 〈연애의 맛〉 시즌4 또한 6월부터 방영될 예정이다. 해로운 물건을 만들어 유통했던 책임이 있는 사람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수상쩍은 물건을 유통 중이다. 왜 떠난 자리도 피곤한가 했는데, 피곤한 사람이 아직 안 떠나고 있다.

▶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 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명 한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