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낮 12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한 시민이 “이명박은 사과하라”고 목청껏 외쳤다. 그의 외침은 이 전 대통령 집 안에서 흘러나온 찬송가 소리와 극적인 대조를 이뤘다. 찬송가는 ‘이명박 장로’를 위한 기도와 함께 담장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 전 대통령 집에서 나온 한 소망교회 교인은 기자들에게 “이 장로는 씩씩해 보였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후 측근들과의 만남에서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횡령과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7년 형이 확정된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구치소에 재수감됐다. 지난 2월25일 서울고법의 구속 집행정지로 풀려난 뒤 251일 만이다. 그는 공개적인 입장 표명 없이 짙은 선팅으로 가려진 승용차를 타고 구치소로 향했다. 소송을 담당한 강훈 변호사를 통해 “수형 생활을 잘하고 오겠다. 나는 구속할 수 있어도 진실을 가둘 수는 없다는 믿음으로 이겨내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이날 자택 앞은 취재진 50여명과 이 전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는 유튜버와 시위대, 지지자들로 뒤섞여 소란스러웠다. 50대로 보이는 한 유튜버는 아침 7시부터 ‘이 전 대통령 대국민 사과 촉구’ 시위를 벌였다. 그는 “대국민 사과 없이 널찍한 독방 없다. 대국민 사과 하라. ‘법치주의가 죽었다’는 이 전 대통령 망언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0대 초반의 한 유튜버는 ‘축 이명박 구속’이 적힌 리본을 자택 건너편 나무에 설치하려다 경찰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반면 10여명의 이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명박 때가 잘살았다”는 구호를 반복했다. 경찰은 2개 중대 150여명을 자택 주변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앞서 이날 오후 1시에 이 전 대통령을 만난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정치적인 얘기는 없었다. (측근들에게) 건강 등의 안부만 물었다”며 “(이 전 대통령이 측근들에게)‘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라가 많이 걱정된다’는 말씀도 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장 의원을 비롯해 권성동·조해진 국민의힘 의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측근들이 이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오후 1시46분께 자택을 떠난 이 전 대통령은 10여분 만인 2시께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했다. 그는 재판에 참여한 검사가 신원 확인과 형집행 고지 등의 절차를 마치고 10여분이 지난 뒤 검찰 차량을 타고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했다. 이 전 대통령은 13.07㎡(3.95평)의 독거실에 수감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의 독거실(10.08㎡)보다 조금 넓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일반 수용자 3~6명이 쓰는 방을 개조했고, 방 안에는 텔레비전과 싱크대가 마련돼 있고 화장실이 딸려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형이 확정된 기결수는 보통 구치소에서 지내다가 교도소로 이감된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인데다 고령인 이 전 대통령은 교도소 이감 없이 구치소에서 형을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구속 기간 1년을 제하면 이 전 대통령은 16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그가 2036년에 만기 출소하면 95살이다. 물론 도중에 풀려날 수도 있다. 건강 상태가 악화되면 형집행정지가 이뤄질 수 있고, 형기의 3분의 1을 채우면 가석방도 가능하다. 아무런 제한 없이 풀려날 수 있는 방법은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유일하다.
전광준 배지현 기자 l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