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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나를 키운 것은 열여덟의 공포였다

등록 :2019-10-19 09:08

[토요판] 커버스토리
보호종료 20대, 4명 심층인터뷰

18살 나이에 세상의 중심에 선
보호종료 4명의 청춘 이야기
연극배우 박도령 ‘열여덟 어른’
시나리오 집필…12월 연극 무대

만 16살에 시설 중도퇴소 오정식
재건축 텅 빈 아파트에서 자고
택배 분류 등 일용직으로 하루살이

다시 찾은 어머니, 함께 살다
서먹해져 다시 떨어져 공장에서 일해
“대학 진학 꿈”…취업포털 매일 방문

대학원생 윤미라, 우울증 극복
노무사 돼 복지사 처우 개선하고 싶어
김준형, 발달장애 형 돌보며 취업준비
미국에는 ‘파자마 프로그램’이란 단체가 있다. 설립자 피투로가 봉사활동 중 보호소의 한 아이에게 파자마를 선물하자 “파자마가 무엇인가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포근한 감촉의 잠옷을 입은 아이가 책을 읽어주는 부모 곁에서 잠들어 ‘따뜻한 가정’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잠옷의 존재를 보호소 아이들은 몰랐다. 피투로는 보호소 아이들도 평범한 미국 아이들처럼 따뜻함을 누릴 수 있도록 새 잠옷과 책을 나눠주는 프로그램을 펼쳤다. 보호소 아이들의 정서적 결핍까지 살핀 질적 복지의 한 사례다. 가족 해체로 아동복지시설에서 크는 아동들은 만 18살이 되면 시설에서 나와 자립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4월부터 월 30만원의 자립수당을 지급하는 등 양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파자마 프로그램’ 같은 정서적·심리적 자립을 돕는 프로그램이 병행되지 않으면 정부의 경제적 지원도 반쪽짜리
미국에는 ‘파자마 프로그램’이란 단체가 있다. 설립자 피투로가 봉사활동 중 보호소의 한 아이에게 파자마를 선물하자 “파자마가 무엇인가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포근한 감촉의 잠옷을 입은 아이가 책을 읽어주는 부모 곁에서 잠들어 ‘따뜻한 가정’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잠옷의 존재를 보호소 아이들은 몰랐다. 피투로는 보호소 아이들도 평범한 미국 아이들처럼 따뜻함을 누릴 수 있도록 새 잠옷과 책을 나눠주는 프로그램을 펼쳤다. 보호소 아이들의 정서적 결핍까지 살핀 질적 복지의 한 사례다. 가족 해체로 아동복지시설에서 크는 아동들은 만 18살이 되면 시설에서 나와 자립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4월부터 월 30만원의 자립수당을 지급하는 등 양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파자마 프로그램’ 같은 정서적·심리적 자립을 돕는 프로그램이 병행되지 않으면 정부의 경제적 지원도 반쪽짜리

한 그루 나무 앞에 제사상이 차려졌다. 일찍 세상을 떠난 성진의 기일이다. 양육시설에서 함께 자란 민철, 윤호는 각자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이 세상이 자기를 또다시 버리기 전에 내가 버린다. 그랬구먼. 멍청한 놈,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윤호)

“열여덟 꽃다운 나이…. 우린 열여덟 공포의 나이잖아. 어른이 돼야 하는 나이니까.”(민철)

아름다운재단은 오는 12월28~29일 보호종료 아동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보육원 아동의 이야기를 담은 <열여덟 어른>이란 제목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시나리오는 9년 전 보호종료로 아동복지시설(이하 시설)을 나온 박도령(27)씨가 썼다. 가정 해체, 부모의 학대·방임 등으로 보호자가 없어 시설(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에서 자라는 아동들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만 18살이 되면 시설을 나와 자립해야 한다. 민법상의 성인(19살)이 되기 전 어른이 돼야 하는 것이다. 가정위탁에는 조손가정, 소년소녀가정도 포함된다.

매년 시설에 맡겨지는 보호대상 아동은 4000여명, 보호종료 아동은 2500여명이다. 정부는 보호가 끝나는 아동에게 다양한 자립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경제적 지원은 자립정착금(500만원)과 디딤씨앗통장(매월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국가가 월 4만원까지 같은 금액을 적립), 주거 지원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이하 엘에이치) 소년소녀가장 전세주택, 영구임대주택, 공동생활가정매입임대주택, 자립지원시설, 서울시자립형그룹홈, 교육·취업 지원은 국가장학금, 시도별 대학입학금, 취업성공패키지가 있다. 정부가 올해 4월부터 시범적으로 월 30만원의 자립수당도 지급해 그나마 독립의 조건은 나아졌다.

지난 두어 해 이들의 어려움이 공론화돼 보호종료 아동의 자립지원 정책은 양적, 질적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아동마다 삶의 경로가 다양하고 체감하는 현실의 장벽이 달라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부모의 울타리 안에 있는 아동과 견줘 보호종료 아동은 자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단 한 번의 실패가 회복 불가능한 인생의 실패로 연결될 수 있다. 사회적 부모 구실을 해야 할 정부가 보호종료 아동 제도 수립으로 보듬을 사항들이 무엇인지 20대 보호종료자 4명을 만나 물어봤다.

“살면서 지금이 가장 재밌다”

박도령씨는 “살다 보니 어느 순간 거기(양육시설)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살 위 누나와 시설에서 자랐다. 지금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면 아버지가 올라 있긴 하다. 아버지의 얼굴도, 추억도 없다. 시설은 그에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통금(저녁 6시)은 친구와 교류를 어렵게 했다. 시설에선 형들의 구타가 일상이었다. 3~4명이 다닥다닥 붙어 자야 할 정도로 방은 좁았다. 용돈은 한달에 초등학생은 5천원, 중학생은 1만~2만원, 고등학생은 4만~5만원이었다. 박씨는 “틀 안에 갇혀 살다 보니 학교 가는 시간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연극 시나리오에 시설을 쇠사슬로 덮인 공간으로 표현했었다. 감옥 이미지가 컸다”고 말했다.

박씨는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자동차 수리를 전공했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과 동시에 공업사에 취직했다. 그는 시설을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만기퇴소 직전 시설에서 경제교육을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박씨는 자립정착금 300만원을 들고 나왔다. 월급 80만원은 버는 대로 썼다.

“자립보다는 탈출이라고 생각했다. 먹고 놀며 자립정착금을 한달 만에 다 썼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을 느낀 건 퇴소 후 1년이 지나서였다. 고삐 풀린 듯 마음대로 살았던 것 같다. 퇴소 전에 무엇을 할지 준비도 안 됐고, 돈을 어떻게 쓸지도 몰랐다. 내용을 몰라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도 많았다. 누군가 퇴소 후에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보건복지부의 ‘보호종결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2016년, 이하 ‘보호종결아동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자립정착금 사용시 주된 의논 상대는 ‘스스로 결정한다’는 답이 58.7%로 가장 높았다. 또 자율적 행동척도 조사 결과 ‘목표와 과제를 수립하고 실천하기’가 가낭 낮은 평균점수를 보였다.

박씨는 시설에서 나와 보호종료 아동의 자립을 도와주는 한 자립생활관(월세 3만원)에서 지냈다. 그는 당시 엘에이치 전세주택 지원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공업사 일도 싫증이 났다. 그는 정말 원하는 꿈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실업계 전공 분야라 당연히 그 일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공업사를 6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농자재 판매 업체, 특장차 도색 업체를 옮겨 다녔다. 이곳에서도 매일 반복되는 야근에 지쳐버렸다. 박씨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것이 연기였다.

조금 모은 돈으로 6개월 동안 연기학원을 다녔다. 23살 때였다. 연기학원장 소개로 극단에 들어가게 됐다. 지금은 시급 1만원짜리 행사장 시설 보조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행복하다.

“처음 연극을 할 때 3~4년만 버티자고 다짐했다. 어떤 일을 이렇게 오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살면서 지금이 가장 재밌다. 지금은 연극을 계속하는 게 삶의 목표다.”

박씨는 보호종료 아동의 사후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기퇴소 전 자립교육을 한다지만 18살 아이들이 현실을 직시하기 어려운 나이다 보니 흘려듣기 십상이다. 시설에서 평소 수동적으로 생활한 탓에 막상 문을 열고 세상에 혼자 서면 아무것도 할 줄 몰라 막막하다고 한다. 박씨는 “보호종료 연령을 늦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만기퇴소 후 어떻게 생활하는지 추적·관리하는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7년부터 각 시설에 자립지원 전담요원을 배치해 자립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인력 부족과 연락 두절 등으로 멘토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립생활관 돈보스코의 김수현 사무국장은 “보호종료 아동은 경험의 부재가 크다. 부모처럼 아동이 필요할 때 필요한 정보를 주고,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바로잡아주는, 믿고 기댈 수 있는 상시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시설에서 쫓겨난 만 16살

박도령씨 연극 시나리오는 개인 경험에 극적 요소를 가미한 작품이다. 때론 현실이 더 극적일 때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시설에서 중도퇴소한 오정식(27)씨 사례를 보면 18살 만기퇴소한 보호종료 아동들은 제도의 수혜자일지도 모른다. 시설에서 중도퇴소한 아동들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자립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의식주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다. 경북 구미에서 만난 오씨는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가슴속 이야기를 꺼냈다.

오씨가 처음 시설에 간 나이는 6살 때다. “그날 빨간색 티코, 아버지, 일시보호소 이 세 가지만 딱 기억난다. 그렇게 맡겨진 날 일시보호소에 갇혀 종일 울었다.” 1년 뒤 오씨는 안양의 한 시설에 입소했다. 배식을 남기면 혼자 전부 먹어야 했다. 억지로 먹고 토하기도 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형들 마사지를 했다. 한번은 마사지하다 잠이 들어 쇠파이프로 맞았다. 사회복지사들도 체벌했다. 항상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하루는 구타를 당하다 오른쪽 광대뼈가 내려앉아 인공뼈 이식 수술을 받았다.

오씨는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학교 등 시설 밖으로 나가는 시간만 기다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친구가 담임교사에게 물었다. “정식이는 왜 노란 봉투(급식비 알림장) 안 줘요?” 담임이 말했다. “고아원에 살아서 그래.” 그때부터 왕따를 당했다. 어긋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친구가 놀리면 방어적으로 심하게 때렸다. 시설도 학교도 마음 둘 곳이 없었다. 탈선이 계속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 집에서 하루 자고 이튿날 시설에 들어왔다. 사회복지사가 나가라고 했다. 무릎 꿇고 죄송하다고 빌었다. 소용없었다. 그날 시설에서 쫓겨났다. 만 16살 때였다. 오씨는 “행실이 잘못됐지만 그렇게 내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가출’로 중도퇴소 사유가 처리돼 있었다”고 말했다.

전날 잤던 친구 집을 찾았다. 친구 부모가 안됐다며 같이 지내자고 했다. 며칠 지나 불편함을 느낀 오씨는 친구 집을 나왔다. 건너편에 재개발에 들어간 텅 빈 향림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빈집에서 잤다. 10월 쌀쌀한 한기가 깨진 창문 사이로 퍼졌다. 그 후로도 놀이터 원통형 미끄럼틀, 건물 계단 등에서 밤을 지새웠다. 배고플 때는 길바닥에 떨어진 삼각김밥을 주워 먹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나가는 학생 돈을 뺏거나, 자판기를 털려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공중화장실에서 씻으며 연명하듯 노숙자처럼 살았다.

17살, 시설에서 알고 지낸 한 형이 경기도 안산 자취방에서 같이 지내자고 연락이 왔다. 형도 벌이가 좋지 않아 쌀과 계란, 간장, 쿨피스가 끼니의 전부였다. 먹고살 길이 필요했다. 인력사무소 소개로 이천 물류센터에서 택배 상하차 일을 했다. 길가에서 주운 신분증으로 나이를 속이고 일을 했다. 저녁 8시부터 이튿날 새벽 또는 아침까지 택배를 분류하면 일당 5만~8만원을 받았다. 하루살이 삶으로는 돈을 모으기 힘들었다. 보증금이 다 깎이자 전셋집에서 쫓겨나 일용직 일로 찜질방 생활을 이어갔다.

19년 만에 어머니를 찾다

아르바이트 자리가 나도 미성년자인데다 부모 동의서도 없어 정상적으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지인 소개로 수원의 한 패션몰 정장 매장에서 1년쯤 일했다. 찜질방과 월세방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 유명 놀이공원에 일자리가 생겼다. 타 지역 거주 시 기숙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1년6개월 계약직이었다. 계약 기간이 끝나자 퇴직금 300만원을 들고 다시 길거리로 나왔다. 어느덧 22살이었다.

퇴직금으로 보증금 200만원에 월 30만원짜리 방을 얻어 1년간 살았다. 처음 내 집이라는 느낌에 행복했다. 벌이가 신통치 않아 다시 방을 빼야 했다. 23살 여름, 오씨는 친구와 제주도로 떠났다. 표만 겨우 구해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거쳐 호텔 식음료 담당자로 일하고 있을 때 오씨는 어머니 연락처를 알게 됐다. 휴대전화 신호가 가는 동안 첫마디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저 오정식입니다’라고 말했다. “어, 그래.” 어머니는 구미에 있으니 오라고 했다.

오씨는 모처럼 어머니 품에서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홀로 버려진 뒤 너무 고된 삶을 살았다. 오씨는 대학을 가고 싶다고 했고, 어머니도 도와주겠다고 했다. 대학 가기 전에 나가서 일하라는 말을 듣고 오씨는 구미의 한 반도체 장비 제조 공장에서 기숙사에 머물며 일하고 있다. 어머니와는 연락이 뜸하다. 오씨는 대학 갈 날을 꿈꾸며 취업사이트를 시간 날 때마다 찾는다.

오씨는 “꿈이 뭐냐”는 질문에 “집”이라고 짧게 답했다. 시설에서 쫓겨나 머물 곳이 없어진 순간부터 오씨 삶은 모두 틀어졌다. 무엇을 결정할 때 기준은 항상 기숙사였다. 몸 하나 누일 곳에 본인 삶을 끼워 맞춰 왔다. 그는 30대 초반에는 자신만의 일을 찾고 싶다고 했다. 다만 결혼도, 아이도 삶의 계획표에는 없다. 돈이 없어 자기와 같은 삶이 반복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봐야죠. 이제는 힘들어도 그게 힘든 건지 느끼질 못해요.”

김준형씨가 지난 8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군자 할머니를 추억하는 원두 블렌딩으로 커피를 내려 시음을 권유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제공
김준형씨가 지난 8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군자 할머니를 추억하는 원두 블렌딩으로 커피를 내려 시음을 권유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제공

갑자기 찾아온 마음의 병

보건복지부는 ‘보호종결아동 실태조사’(2016년) 결론 부분에서 보호종료 아동의 건강 및 심리·정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정책 제언을 했다. ‘불안·우울’ 항목을 조사한 결과, 아동복지시설 응답자들은 보호종결 후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 및 우울 정도가 높았고, 가정위탁의 불안 및 우울은 진학 또는 취업 준비 중인 응답자보다 재학 중인 자가 더 높았다. 이는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한 불안이 원인으로 꼽혔다. 행복감과 삶의 질을 측정한 결과도 보호종료 아동이 우리나라 아동 평균보다 매우 낮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가정위탁의 한 형태인 조손가정에서 자란 대구의 한 대학 대학원생 윤미라(가명·23)씨는 항상 밝게 살아와 우울증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윤씨는 태어나자마자 포항에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무렵 어머니가 심장 이상으로 세상을 떠났고, 화물차 운전을 하던 아버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연락이 끊겼다. 아버지가 보내준 돈으로 생활하던 윤씨와 할머니는 생활고에 외삼촌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 눈칫밥을 많이 먹었다. 윤씨가 안쓰러웠는지 할머니는 힘들어도 나가 살자고 했다. 12살 때 윤씨의 이모가 단칸방을 얻어줬다. 화장실은 집 밖에 있고, 주방과 샤워 공간은 분리되지 않고 나란히 붙어 있었다. 겨울에는 양동이에 데운 물로 오들오들 떨며 샤워했다. 보호대상 아동으로 지원을 받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로 기억한다. 한달 생활비는 기초생활수급비 30만원, 조폐공사 후원금 20만원이 전부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엘에이치 전세주택 지원으로 17평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주방과 화장실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윤씨에게 할머니는 부모 이상의 존재다. 요즘 할머니를 볼 때마다 속상하다. 할머니는 지난해 말 치매 진단을 받았다. 1년에 한 번 인지능력 검사를 받고 매일 약을 드신다. 할머니는 올해 여든세살이다. 할머니의 기억 수명은 많은 날이 안 남았을지 모른다. 할머니는 지금도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윤씨에게 “사람들과 잘 지내라”고 당부한다.

윤씨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앞에서 속 얘기를 잘 꺼내놓지 않았다. 할머니 걱정할까 봐 윤씨는 늘 캔디처럼 밝아야 했다.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 때는 학점 관리에 동아리 활동, 주말 아르바이트까지 쉴 틈 없이 보냈다. 대학교 3학년 때 지친 느낌을 받았지만 지쳐서는 안 됐다. 대학원에 진학한 뒤 아침에 눈 뜨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가라앉았다. 대학원 동료들의 권유로 용기 내어 병원을 찾았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삶이 너무 힘들었는데 힘들지 않은 척 살았다. 이제 그걸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하다. 윤씨는 “그동안 내 삶이 불쌍해 보였다. 지금은 그랬던 현실을 인정한다.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대견했다. 과거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보호대상 아동은 주변에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윤씨도 어릴 때부터 항상 혼자 고민하고 결정했다. 마음을 표현할 곳이 없다 보니 응어리를 어디에다 풀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윤씨는 이불을 덮어쓰고 한참을 펑펑 울었다. “학교 다닐 때 사춘기도 없었다. 사춘기라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생각했다.”

윤씨 꿈은 사회복지사다. 그는 사회복지사의 처우 개선을 돕고 싶다. 현재 노무사 자격증 시험도 준비하고 있다. 윤씨는 언젠가 취업해 첫 월급을 타면 할머니 선물을 사주고 싶다. 기부도 할 계획이다. “좋은 가정을 꼭 이루고 싶다. 내가 그동안 못 받은 것 이상으로 남편과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싶다.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과 다시 나누고 싶다.”

“충격적 기억은 머리에 안 남아”

올해 보호종료 5년차인 김준형(25)씨는 어릴 때부터 자립에 필요한 교육을 시설에서 받았다. 요리와 빨래, 청소도 직접 하도록 했다. 금융교육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배웠다. 고등학교 졸업 후 2년제 대학 조리과에 진학했다. 시설에서 라면을 못 먹게 해 먹고 싶은 요리를 마음껏 해 먹고 싶었다.

김씨는 대학 입학 때 자립의 무게감을 느꼈다. 장학금과 기초생활수급비 서류를 제출하느라 2주 정도를 지방과 서울의 여러 행정기관을 오갔다. 자립정착금과 후원금 1000여만원은 예금을 들었다. 그런데 당시 김씨가 든 감정은 원망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게 내 인생인가 싶었다. 얼마 뒤 또래들이 하지 못한 행정처리 경험을 했다는 쪽으로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꿨다.”

20살 대학 졸업과 동시에 보호종료가 됐다. 독일식 레스토랑 주방과 칵테일바에서 일하고, 대기업 식음료 전문가 양성과정을 거쳤다. 언젠가 식음료 부문 창업을 목표로 재무 등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 취업을 준비 중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2주기를 맞아 ‘김군자 할머니 기금’ 장학생인 김씨는 지난 8월 김군자 할머니를 추억하는 원두를 블렌딩해 팔아 수익금을 대학생 교육비 지원에 쓰는 아름다운재단 프로젝트에 나서기도 했다.

김씨는 5살에 일시보호소 앞에서 형과 손을 잡고 있었다. 시설 원장은 가정폭력 탓에 김씨 형제가 찾아온 것이라고 나중에 설명했다. 김씨는 “너무 충격적인 기억은 머릿속에 저장되지 않는다. 예전 기억은 아예 안 난다”고 말했다. 김씨의 형은 중3 때 찾아온 발달장애와 간질 증상으로 현재 병원에서 돌봄서비스를 받으며 지낸다.

그는 시설의 고압적 환경 탓에 말 한마디 못했던 소심했던 10대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은 너무 좋은 환경에서 희망을 꿈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데에는 주위의 과분한 도움이 컸다. 이 때문에 요즘도 틈만 나면 보호종료 아동들을 찾아가 자립에 필요한 내용을 알려주는 멘토링 활동을 하고 있다. 김씨는 “내가 바로 서야 남을 도울 수 있다. 취업으로 사회 경험을 쌓아 마지막 목표인 식음료 부문 창업에 도전하고 싶다. 빨리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 내가 받은 것을 자립아동들에게 돌려주는 선순환 효과를 일으키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 구미 서울/글·사진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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