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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삼성 비판 보고서 내자 “경찰이 집까지 찾아왔다”

등록 :2019-06-26 17:55수정 :2019-06-26 21:34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 ④ 유착
인도 시민단체 작성 ‘삼성 사찰 일지 ’ 입수
‘삼성 비판 보고서’ 쓴 활동가 9개월 사찰
부모 집까지 찾아가 학자금 빚 등 캐물어
인도 칸치푸람 군경찰청(Kanchipuram district police) 전경 사진. 칸치푸람 군경찰청 누리집
인도 칸치푸람 군경찰청(Kanchipuram district police) 전경 사진. 칸치푸람 군경찰청 누리집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는 이제 한국만의 기업이 아니다. 초국적 기업 삼성전자는 세계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특히 삼성전자의 주요 생산기지로 떠오른 아시아 지역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현실은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한겨레>가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3개국 9개 도시를 찾았다. 2만여㎞, 지구 반 바퀴 거리를 누비며 129명의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설문 조사했다. 국제 노동단체들이 삼성전자의 노동 조건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한 적은 있지만, 언론사 가운데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시도다. 10명의 노동자를 심층 인터뷰했고, 20여명의 국제 경영·노동 전문가를 만났다. 70일에 걸친 글로벌 삼성 추적기는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외면하려 했던 불편한 진실을 들춘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당장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판단한다. 5차례로 나눠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다.

인도 시민단체가 삼성 관련 보고서를 쓴 뒤 9개월 동안 삼성과 경찰에 사찰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보고서는 삼성전자 첸나이 공장의 무노조 전략과 불법적인 노동 착취에 대한 내용으로, 삼성이 회사에 불리한 내용을 입막음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국내에서 숱하게 문제가 된 경찰과의 유착관계, 그리고 사생활 침해라는 후진적 행태를 나라 밖에서도 고스란히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 9개월간 공권력 사칭하며 감시했다”

<한겨레>는 인도의 엔지오 ㄱ단체가 삼성·경찰의 접촉을 기록한 9개월 치(2016년 8월~2017년 5월) 일지를 입수했다. 일지에는 경찰이 ㄱ단체 활동가 부모의 집을 방문하거나 노동자로 위장하고 ㄱ단체를 만났던 사실이 모두 적혀 있다. 삼성 직원이 경찰을 대동하고 ㄱ단체를 직접 찾아가 압박했다는 내용도 있다. 삼성의 이런 행태는 ㄱ단체 사무총장이 직접 삼성 인도법인 상무에게 항의한 뒤에야 일단락됐다.

ㄱ단체는 다른 시민단체에 이런 상황을 알리기 위해 2017년 5월 ‘ㄱ단체에 대한 삼성전자의 괴롭힘과 위협 일지’를 작성했다. 요약문에서 ㄱ단체는 “지난 9개월간 우리 단체는 노동자나 공권력을 사칭한 이들의 은밀한 감시와 방해를 받았다. 한 여성 활동가는 스토킹까지 당했다”며 “최근 이런 괴롭힘과 협박이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삼성전자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적었다.

ㄱ단체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삼성과 관련된 문제에 한해서는 우리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게 신상보호에 좋겠다고 판단했다”며 익명 보도를 요청했다.

인도의 엔지오 단체가 삼성·경찰의 접촉을 기록한 일지 중 일부
인도의 엔지오 단체가 삼성·경찰의 접촉을 기록한 일지 중 일부

경찰 대동한 삼성 직원 “면밀히 감시할 것”

일지를 보면 경찰의 접촉은 2016년 8월13일 시작됐다. ㄱ단체가 보고서를 온라인에 공개했다가 보완을 위해 삭제한 뒤다. 이날 ㄱ단체의 한 활동가는 개인 휴대전화로 “플렉스트로닉스(전자부품 제조업체)에 다니는데 고민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날 직접 만나자 이 ‘노동자’는 경찰 신분증을 내밀었다. 칸치푸람군 경찰청 큐(Q)브랜치(반정부단체 관련 사건을 수사·감시하는 부서) 소속 바산티 경위(Sub-inspector)라고 적혀 있었다. 칸치푸람군은 삼성 첸나이 공장이 있는 곳이다.

바산티 경위는 ㄱ단체의 자금 출처를 캐묻고 활동가들의 부모 집 주소 등 개인정보를 수집해 갔다. 조사 이유에 대해 바산티 경위는 “‘ㄱ단체가 플렉스트로닉스 직원 250명에게 전화해 여성노동자위원회 가입을 권유했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이에 상사가 ㄱ단체를 조사해보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ㄱ단체는 플렉스트로닉스에 그런 전화를 돌린 적이 없었다. ㄱ단체 관계자는 “이때까지는 삼성과 연관이 있다는 걸 몰랐다. 단지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만 받았다”고 설명했다.

바산티 경위의 의도는 두달 뒤 분명해졌다. 10월20일 그는 삼성 직원 틸라이나야감과 함께 ㄱ단체를 다시 방문했다. 틸라이나야감은 “경찰서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타밀나두주 경찰청 형사부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뒤 ㄱ단체의 활동보고서 등을 가져갔다. 그가 실제로는 전직 경찰이며 현직 삼성 경비업체 직원이라는 사실은 6개월 뒤에야 밝혀졌다.

그동안 틸라이나야감은 현직 경찰로 위장한 채 ㄱ단체 정보를 수집해 갔다. ㄱ단체 관계자는 “경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달라는 자료는 거의 다 줬다”고 말했다. 10월22일에는 “일부 시민단체를 더 면밀히 감시하라는 정부 지시가 있었다”며 ㄱ단체의 자금 내역을 조사했다.

보고서가 발간된 2017년 3월 이후엔 더 집요해졌다. 3월21일부터 4월22일까지 8차례에 걸쳐, 직접 또는 바산티 경위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다. “(삼성 내)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노동자들에게 팸플릿을 나눠준 적 있느냐”는 추궁이 이어졌다. 신분이 들통난 뒤에는 “회사(삼성)에 ㄱ단체에 대한 보고서를 내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협조를 요구했다. 2017년 5월에는 삼성 인사팀도 가세했다. 5월2일 틸라이나야감과 파르티반(삼성 인사팀 직원)은 20분 간격으로 한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요구했다.

가족 추적한 경찰 “빚 없느냐”

일지에는 경찰이 ㄱ단체 활동가의 고향을 찾아가 뒷조사를 한 정황도 담겨 있다. 삼성 공장에서 200㎞ 넘게 떨어진 지역이어서 삼성과 경찰의 유착이 지역 차원을 넘어 광범위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르마푸리군 경찰청 큐브랜치 소속 경찰 2명은 2016년 9월까지 한 활동가의 부모가 사는 자택에 최소 2번 방문하고, 1번 전화했다. 이들은 이런 조사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바산티 경위 등과 공유했다. 보고서에는 활동가가 학자금 대출을 다 갚지 못했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경찰이 부모에게서 받아 간 활동가의 얼굴 사진도 포함됐다. 조사하면서 경찰은 해당 활동가가 마오주의자나 스리랑카 단체와 연관이 있는지 등을 캐물었다고 한다.

활동가들의 지인을 통한 뒷조사도 이뤄졌다. 4월18일 한 활동가는 자신의 예전 지도교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이 교수는 “틸라이나야감이 너에 관해 물어보더라. 그 친구가 삼성 직원인데 ㄱ단체를 철저히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ㄱ단체는 이때 틸라이나야감이 삼성 직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ㄱ단체 관계자는 “우리는 틸라이나야감이 자신의 경찰 후배들을 동원해 뒷조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가족과 지인을 동원한 압박에 일부 활동가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접촉 않겠다”면서도…공식 사과는 없었다

ㄱ단체 사무총장은 2017년 4월24일 마누 카푸르 삼성전자 인도법인 상무에게 직접 연락해 항의했다. 틸라이나야감의 소속 부서와 직무를 확인해달라고도 요청했다. 이에 카푸르 상무는 5월2일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직원들에게 다시는 ㄱ단체와 접촉하지 말라고 했다. 이전의 행태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사흘 뒤 같은 내용의 전자우편을 ㄱ단체에 보냈다. 이 전자우편에는 틸라이나야감 등 직원들이 참조 수신자로 지정돼 있었다. 그러나 카푸르 상무는 틸라이나야감의 소속을 밝혀달라는 ㄱ단체 쪽 요청에는 답하지 않았다. 공식 사과도 없었다.

<한겨레>도 삼성 쪽에 해명을 요청했지만 공식 답변을 받지 못했다. 다만 실무진은 ㄱ단체를 조사한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당시 시민단체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는 한 삼성 첸나이 관계자는 “ㄱ단체의 활동가 규모, 자금 출처 등을 파악했었다”고 말했다.

구르가온/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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