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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삼성의 ‘10억 회유’ 뿌리치고 산재 인정까지…혜경씨 모녀의 ‘7전8기’

등록 :2019-06-22 09:37수정 :2019-06-24 16:58

[토요판] 요조의 요즘은
삼성 전 노동자 한혜경씨

17살이던 1995년 삼성전자 입사
엘시디 모듈공장에서 부품 연결
5년9개월간 일하다 뇌종양 진단

처음엔 “삼성인데 산재일 리가” 생각
2009년 첫 산재신청 했지만 기각
행정소송 냈지만 대법원까지 패소
지난해 다시 신청해 결국 인정 받아

“기업 잘못이다 인정해 기뻐
안마 배워 엄마 주물러 드릴 거예요
산에 가고 싶어요. 헬기 타고 갈까요”
삼성전자 엘시디(LCD)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 산업재해 인정을 받기 위해 10년째 싸워온 한혜경씨가 8번째 도전 끝에 산재 승인을 받았다. 어머니 김시녀씨가 강원도 춘천시 집에서 딸 혜경씨를 안아주고 있다. 김씨는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계속 실패한 누군가에게 우리가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춘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삼성전자 엘시디(LCD)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 산업재해 인정을 받기 위해 10년째 싸워온 한혜경씨가 8번째 도전 끝에 산재 승인을 받았다. 어머니 김시녀씨가 강원도 춘천시 집에서 딸 혜경씨를 안아주고 있다. 김씨는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계속 실패한 누군가에게 우리가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춘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얼마 전 저녁을 먹으며 틀었던 티브이 속에서는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요즘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는데 흰 유니폼과 마스크, 장갑으로 온몸을 무장해서 눈만 겨우 보이는 어떤 남자가 화면에 등장했다. 그는 흰쌀밥이 가득 들어 있는 사각틀 안에 빨간 소스를 붓고는 양손으로 열심히 밥과 소스를 버무리고 있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카메라 뒤쪽에서 들려왔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그는 삼각김밥에 들어가는 전주비빔밥용 밥을 만들고 있다고 대답했다. 목소리가 뒤이어 물었다. “그걸 일일이 손으로 버무려야 되는 거예요?” 그는 대답했다. “기계로 하면 밥알이 깨지거든요.”

짧게 지나치듯 본 것인데도 나는 그 뒤로 편의점에서 전주비빔밥 맛 삼각김밥만 보면 혹시 이것도 그 사람이 밥을 버무린 것일까, 그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버무렸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사람. 나는 삼각김밥을 보면서 그것을 만든 ‘사람’이라는 존재를 의식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 뒤에는 당연하게도 ‘사람’이 있다. 그걸 일일이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너무 바쁘게 살고 있고 간혹 한가한 순간에조차 자기 생각밖에 안 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소개하려고 하는 ‘사람’은 우리가 쓰는 전자제품을 분해하지 않는 이상은 볼 수 없는 어떤 부품을 만드는 일에 관여했다. 이 ‘사람’은 그 일을 하다가 뇌종양이라는 병을 얻었다. 그리고 수술의 후유증으로 시각·보행·언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이 ‘사람’은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와 국가에 책임을 물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는데 그 횟수는 7번이었고 그 사이 흐른 시간은 10년이 넘었다. 그러다 마침내 지난달 30일 이 ‘사람’의 뇌종양은 공식적으로 직업병, 즉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8번째 도전 만에 이루어진 일, 문자 그대로 7전8기였다.

이 ‘사람’의 이름은 ‘한혜경’(41)이다. ‘한혜경’이라는 이름을 말하기 위해서는 ‘김시녀’(62)라는 이름도 함께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혜경의 엄마인 김시녀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혜경의 분신이었다. 한혜경이 가고 싶은 곳에 발이 되어 가주었고, 장애 때문에 외치지 못한 한혜경의 목소리가 되어준 ‘사람’이었다.

눈물 안 나오는 혜경의 울음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교육받지 못한 장애인들을 위해 검정고시 교육과 평생교육을 제공하는 공간인 이곳에서는 ‘평등한 밥상’이라는 무상급식을 위한 후원마당 행사가 이루어져 낮부터 북적였다. 산재 인정 후 축하 인사를 나누느라 두 사람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날도 시녀는 미안한 얼굴로, 인터뷰에 앞서 지인들과 인사를 나눌 시간을 잠시 줄 수 있겠는지 물었다. 전날인 14일에도 두 사람은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혜경씨의 산재 인정을 축하하는 음악회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행사를 치렀다. 꽤 피곤할 텐데도 두 사람의 표정이 속일 수 없이 밝았다.

―많이 바쁘시겠어요?

김시녀(이하 김) “네, 좀 바쁘네요.”

―기분 좋은 바쁨이겠지요?

“그럼요. 축하해주시는 분들이 어찌나 많은지….”

―14일 음악회는 어땠나요?

“엄청 많이 와주셨어요. 초창기에 저희가 많이 힘들었던 때 같이 연대해주셨던 분들도 많이 오시고…. 되게 좋았어요.”

―혜경씨는 기분이 어떠세요?

한혜경(이하 한) “말도 못하게 좋아요. 그냥 좋기만 하고요. 산재를 받을 수 있어서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좀 미안해요. 산재 신청한 노동자 중에서 된 사람도 있지만 안 된 사람들도 있잖아요.”

언어장애 탓에 그의 말은 느릿했지만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산재 인정 소식을 들었던 그 순간이 궁금했어요. 언제 어디서 그 소식을 들으셨나요?

“그날 전화가 계속 울리더라고요. 우리 반올림 지킴이 카톡방이 있거든요. 무슨 일이지 하고 보니까 ‘혜경씨 산재 축하해요.’ 이런 영상메시지가 와 있는 거예요. 끝까지 보지도 못한 채로 막 뛰어가서 얘한테 ‘혜경아 산재 인정됐나봐’ 하고 소리쳤죠. 혜경이가 ‘엄마 거짓말 아니지?’ 그러길래 ‘응’ 했더니 그때부터 막 큰 소리로 우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등을 두드려주면서 ‘그래 울어, 맘껏 소리 내서 울어’ 그랬어요. 혜경이는 수술 후유증으로 눈물이 안 나와요. 눈물도 없이 한참을 소리 내어 울더니 또 이번에는 막 웃어요. 가슴속에서 뭔가가 확 내려갔다는 거예요.”

―어떠셨어요, 혜경씨. 정말 깜짝 놀라셨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가 거기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렸는데, 그 사람들이 잘못된 건데, 그 사람들이 잘못된 거 맞는데, 내가, 아이고 진짜 속을 뒤집어서라도 내가 보여줄 수 있었어요. 그동안 너무너무 화가 났어요. 아니라고 그 사람들이 부정을 해! 그러면 안 되죠. 그게 너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씨는 서둘러 한씨의 등을 두드리며 “그래, 이제 산재 인정됐어 혜경아” 하고 안심시켰다. 지난 10년간 수없이 인터뷰를 하면서 혜경씨가 늘 했던 말은 “나 좀 믿어달라”였다고 한다.

혜경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5년 11월 지금은 삼성디스플레이로 불리는 삼성전자 엘시디(LCD)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만 17살의 나이였다. 5년9개월간 근무하면서 혜경씨는 생리가 멈추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에 시달렸다. 거기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아주 흔한 현상이었다. 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유난히 공장 주변에 많았다는 산부인과에 가서 호르몬 주사를 맞고 와서 다시 일하곤 했다. 주사를 맞으면 감쪽같이 증상은 호전됐기 때문이다.

3조3교대라는 금지된 강도 높은 근무 체계 속에서 식사 시간은 고작 40분이었다. 위아래가 붙어 있어 입고 벗는 데 오래 걸리는 방진복 때문에 그곳의 노동자들은 종종 화장실 변기에 앉아 오줌을 누면서 빵을 먹는 식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반복된 과로로 끊긴 생리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몸은 점점 부어올랐다. 결국 2001년 7월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한 혜경씨는 27살이던 2005년 뇌종양(악성) 진단을 받았다. 2005년 10월9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첫 수술을 받은 뒤 같은 해 눈 수술, 2008년 뇌 수술, 2009년 목 디스크 수술, 2019년 눈 수술이 이어졌다.

―뇌종양이 발병했을 때만 해도 산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요.

“못 했어요. 수술할 때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할 때였는데요. 의사가 도대체 젊은 사람이 무슨 일을 했길래 뇌종양에 걸렸냐고 하더라고요. 삼성 엘시디에서 일했었다고 그랬죠. 그거랑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라고 그 의사가 너무 당연하게 말씀했어요. 근데 저는 ‘아닐 거예요. 전자파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리고 삼성이잖아요’ 이렇게 말했어요. 대기업이잖아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언제 산재라는 자각을 하게 된 건가요.

“수술 마치고 재활병원에서 몇 년 동안 치료를 받던 중에 병원 복지과 선생님이 우연히 혜경이 사정을 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반올림을 소개해주셨죠. 근데 그때까지도 반올림을 의심했지 삼성을 의심하진 않았어요.”

한혜경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러닝머신을 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재활병원 세 곳을 돌아다니며 근육운동, 수영치료도 한다. 근육이 더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어머니 김시녀씨가 강원도 춘천시 집에서 한씨의 운동을 돕고 있다. 춘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혜경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러닝머신을 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재활병원 세 곳을 돌아다니며 근육운동, 수영치료도 한다. 근육이 더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어머니 김시녀씨가 강원도 춘천시 집에서 한씨의 운동을 돕고 있다. 춘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삼성 아닌 우리를 욕하던 사람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씨와 그 동료들이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결성됐다. 삼성전자에 산재 책임을 묻는 반올림의 싸움은 11년간 이어지다 지난해 11월1일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가 삼성전자와 반올림에 중재안을 전달하고 11월23일 양쪽이 협약식을 맺으며 마무리됐다.

혜경씨는 2009년 3월 산재 신청을 냈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산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이후 싸움은 근로복지공단 심사(2010년)로, 재심사 청구(2011년)로, 뒤이어 행정소송으로까지 이어졌지만 2013년 1심, 2014년 2심, 2015년 3심 모두 두 사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까지 나타난 사정들만으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현대 의학으로 뇌종양의 발병 원인을 밝힐 수 없으니 산재가 아니라는 얘기란다. 그 과정을 듣는 것만으로 나는 무릎에 힘이 빠졌다.

―믿음이라는 것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던가요. 언젠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요.

“처음에 반올림을 만나면서 산재를 신청할 때만 해도 믿음이 있었죠.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잖아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그 기업의 슬로건을 믿었어요. 근데 착각이었어요. 나중에는 사람들이 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를 욕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뭐라고 욕을 했나요?

“왜 삼성을 망하게 하려고 하냐고요. 삼성이 망하면 우리나라가 망하는데. 너네가 들어가서 일해놓고 왜 삼성이 잘못이라고 하냐고. 나중에는 어떤 믿음도 없었어요. 오히려 내가 싸우면서도 계속 나를 의심했죠. 과연 이게 끝은 있을까. 정말 산재가 인정이 될까. 행정소송 할 때는 정말, 사람한테 이가 갈린다고 할까, 그랬어요.”

두 사람은 재판 때마다 춘천에서 서울로 서너 시간 걸려 참석했다. 하지만 법원은 혜경씨 쪽 주장은 듣지도 않고 몇 분 만에 공판을 끝내버렸다. “반올림의 변호사가 아무리 준비를 해가도 한 번도 변론할 기회를 주지 않았어요. 휙 들어가는 판사 뒤통수에 대고 억울함을 소리칠 수밖에 없었죠. 갈 때마다 정말 얼마나 울었는지. 속이 터져서 우는 거예요.”(김시녀)

그래도 도무지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는 두 사람에게 삼성에선 2014년께 회유가 들어오기도 했다. 금액은 자그마치 10억원. 이걸 줄 테니까 반올림과 연락을 끊어라, 그 어떤 사회단체하고도 연락하지 마라. 그것이 조건이었다고 했다.

“솔직히 흔들렸어요. 혜경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애들 아빠하고 이혼을 하고 식당을 하며 아이 둘(혜경이와 남동생)을 키웠어요. 혜경이가 수술을 받은 이후로는 식당도 그만둔 상태였죠.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혜경이에게 솔직히 고백했어요. 그 돈 받고 싶다고. 그런데 혜경이가 죽어도 안 된다는 거예요. 엄마가 이렇게 힘든데 대체 왜 안 되냐고 절규했죠. 근데 혜경이도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엄마는 나 같은 사람이 또 나와도 좋겠냐’고.”

시녀씨는 그때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반올림에 바로 연락해 삼성의 회유를 받아들이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그렇지만 혜경씨가 완강하게 거부해서 그 뜻에 따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반올림에서는 이해해줬다. 그리고 혜경씨의 결정에 고마움과 존경스러움을 표했다. “그때 나도 완전히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그래, 누군가에게 우리가 겪은 일 또 겪게 하지 말자. 한번 끝까지 가보자. 오기가 생긴 거예요.”(김시녀)

삼성전자 임시주주총회가 열린 2016년 10월27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한혜경씨가 삼성 직업병 피해자 지원단체인 반올림 회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해 직업병 문제 해결 등을 촉구하고 있다. 한씨 옆은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삼성전자 임시주주총회가 열린 2016년 10월27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한혜경씨가 삼성 직업병 피해자 지원단체인 반올림 회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해 직업병 문제 해결 등을 촉구하고 있다. 한씨 옆은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산재는 내 권리를 인정받는 것”

―속에서 곪아가는 절망감 때문에 얼마나 힘드셨을지, 짐작도 되지 않네요.

“그랬죠. 이게 정말 기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그때 혜경이랑 나랑은 막다른 생각까지 했었어요. 대법원까지 가서도 패소하면 더 이상 길은 없다고. 이거 안 되면 엄마랑 너랑 그냥 죽자 이런 말까지….”

막막함에 할 말을 잃은 내가 아무 말 못하고 있는 사이 인터뷰하고 있던 회의실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노들장애인야학 행사장에서 파는 음식들이 담긴 접시를 든 누군가가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라고 말하며 들어왔다.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노무사 이종란씨였다. 김시녀씨가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를 붙잡아 옆에 앉혔다.

“이분의 이름도 기억해주세요. 이분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렇게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없었을 거예요.”

이종란(이하 이) “아니에요.(웃음) 혜경이는 우리가 2008년에 만나서 11년째 함께해오고 있는데요. 제가 대리인으로서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뇌종양이 산재라고 인정받은 사례가 그동안 없었어요. 혜경이가 최초로 2009년에 그런 주장을 했었고, 그 뒤로 뇌종양 사례가 서서히 산재로 인정이 되었거든요. 이후의 사례들은 인정이 되는데 처음에 신청한 혜경이 안 됐다는 게, 자기가 앞길을 뚫어놓고 본인만 안 되는 것 같아서 너무 속이 상했어요. 혜경은 재판부 운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절 정권의 영향이었겠죠. 항변할 기회도 없었고요.”

혜경씨는 대법원까지 가서도 패소했다. 그 사이 계속되는 수술에 재활비까지 감당하느라 아파트는 처분했고, 전세를 월세로 바꾸기도 했다. 망연자실해 있던 혜경씨와 시녀씨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준 것은 반올림의 임자운 변호사였다고 했다. 지난해 5월이었다.

“대법원에서 산재가 불승인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존의 판결이고 근로복지공단이 새롭게 행정처분을 내리는 것은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가능하다, 즉 과거에는 똑같은 조건에서 산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똑같은 조건에서 산재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 법리적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죠. 이게 실제 사례로는 없었지만 그래도 도전해보기로 했죠.”

산재 판단의 기준 이전에, 대법원에서 패소했어도 새 행정처분을 공단이 내리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사실을 설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금속노조 법률원 박다혜 변호사가 법률검토의견서를 공들여 썼다. 재신청이 가능해지자 반올림의 조승규 노무사가 옛날 서류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있었던 뇌종양 관련 문헌, 뇌종양 관련 유해요인을 다 뒤져서 재의견서를 꼼꼼하게 작성했다.

“이게 마지막 기회였어요. 행정소송을 한 번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행정소송은 할 수 없었거든요.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었어요. 지난해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재신청을 했는데, 올해 3월에 열린 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3 대 3으로 가부 동수가 나왔어요. 그래서 4월 재심의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정말 그때는 피를 말리는 기분이었겠어요.

“최후진술 하러 대리인으로 들어가는데, 제가 웬만해서는 안 울거든요. 대리인이 울면 좀 민망하잖아요. 그런데 혜경이 얘기하는데 막 북받쳐서 나중에는 목소리가 거의…. 아 또 눈물 나네. 진짜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종란 노무사는 눈물을 닦으며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산재 인정이라고 하는 게 보험을 적용받는 거거든요. 치료비라든지 치료받는 기간 생계 보전으로 주는 휴업급여라든지, 근데 산재는 사실 그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이것은 내 개인적인 질병이 아니라 회사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질병이라는 것, 내가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걸 인정받는 것이에요.”

지난 4월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재심의에서 △6년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가지 유해요인에 노출되었다는 점 △2002년 이전의 사업장에 대한 조사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 △근무 당시의 안전관리 기준 및 인식이 현재에 비해 낙후돼 안전조치가 미흡했을 것이라는 점 △최근의 뇌종양 판례와 유사 질병 사례들을 고려할 때 뇌종양이라는 병과 업무와의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점을 들어 혜경씨의 산재 신청을 받아들였다.

―혜경씨에게 산재 인정은 어떤 의미예요?

“내가 거기서 일하다 병들어서 퇴사했어요. 그러면 그거 거기의 잘못이죠. 그거예요.”

―기업이 잘못한 것이다.

“맞아요. 그리고 안전교육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어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년 추모와 반올림 1천일 맞이 삼성 포위행동 행사’가 열리던 지난해 7월4일, 한혜경씨와 어머니 김시녀씨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와 손을 잡고 삼성 본관을 둘러싸고 있다. 반올림은 2015년 10월7일부터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1023일간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년 추모와 반올림 1천일 맞이 삼성 포위행동 행사’가 열리던 지난해 7월4일, 한혜경씨와 어머니 김시녀씨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와 손을 잡고 삼성 본관을 둘러싸고 있다. 반올림은 2015년 10월7일부터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1023일간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방진복은 부품 위한 것이었어요”

혜경씨는 엘시디 모듈공정에서 일했다고 했다. 전자기기 주요 부품인 ‘인쇄회로기판(PCB) 패널’이라고 하는 곳에 필요 부품을 납땜해 연결하는 표면실장공정(SMT)에서 근무하면서 혜경씨는 솔더크림(납), 플럭스, IPA(이소프로필알코올), 아세톤 등의 유해 화학물질을 다뤘다.

“혜경이는 그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 걸 다 기억하고 있어요. 기숙사에 와서 씻어도 가시지 않는 납 냄새부터 시작해서 방진복까지. 그거 보기엔 굉장히 화려하잖아요. 근데 그건 그냥 부품들을 보호하려고 입는 거지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만든 옷이 아니에요. 장갑도 그냥 일반 비닐장갑이고 마스크도 부직포 마스크였어요. 그렇지만 개인의 진술이나 증언은 그냥 무시됐어요. 법원은 삼성 쪽이 보관했던 잘못된 자료들, 작업 환경에서 납 노출 수치가 미미하거나 검출되지 않았다고 하는 그런 엉터리 증거들만 신뢰했죠.”

“그래도 점점 달라지고 있어요. 처음 산재 신청할 때만 해도 전자파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직업병 유해요인 중 전자파가 꼭 들어가요. 그리고 처음엔 오로지 납 하나만 유해요인으로 따졌는데 지금은 주장할 유해요인이 많아졌어요. 극저주파 전자기장, 유기용제, 아, 야간 노동을 수반하는 교대 업무도 발암요인 2등급이에요.”

2017년 8월29일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삼성 엘시디 공장에서 일했던 이아무개씨의 다발성 경화증이 업무상 재해라고 인정하면서, 산재 인정 기준을 크게 넓히기도 했다. “첨단산업에서의 유해성에 대해서 아직 현대 과학과 의학이 다 밝혀내지 못하고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릴 텐데, 그 사정을 노동자 쪽에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죠. 대법원 판결이 법률에 준하는 효력이 있대요. 그래서 옛날처럼 측정 수치 모자라면 딱딱 잘라내는 게 아니라 폭넓게 인과를 추정해서 인정해주는 걸로 법원의 태도가 바뀌었어요. 피해자들의 싸움이 쌓이고 쌓이면서 이런 판결이 만들어진 거예요.”(이종란)

―지금의 삼성은 업무 환경이 많이 개선됐나요?

“일단 혜경이가 했던 그 업무는 기흥공장에서는 없어졌어요. 공정 자동화도 옛날보다 많이 됐어요. 그렇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졌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워요. 자동화 기계 정비 업무를 하는 엔지니어들, 하청업체 노동자들, 주로 남성 노동자들의 문제가 또 있어요. 예전에 20~30대 여성 사망 제보가 많았다고 한다면 2010년대 중반 이후의 죽음은 다 협력업체 남성 노동자들이에요.”

또한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이 노무사는 말했다. “예컨대 베트남 현지 공장에서 삼성 갤럭시 휴대전화를 만드는 공장에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거든요. 국제적 분업구조에선 여전히 전자산업에 많은 여성들이 일하고 있고, 그들이 얼마나 열악하게 일하고 있는지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2017년 스웨덴에 본부를 둔 국제환경보건단체 ‘아이펜’(IPEN)의 보고서가 그의 말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보고서에는 여성 노동자들의 유산 사례가 많고, 급여가 줄 것을 우려해 충분한 휴식도 취하지 못하는데다, 근무 중 현기증을 느끼거나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는 증언들이 기록돼 있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이번 성과에 그냥 간단하게 “축하합니다”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도 과연 이게 이렇게 축하받을 일인가 싶어요. 물론 이게 혜경이 속에 있는 응어리를 풀어줘서 좋기는 하지만요. 저는 누군가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계속 실패하더라도, 우리가 싸웠던 시간들을 보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혜경이와 저도 반올림과 계속 함께 싸울 거예요.”

그리고 사람이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산재 하나만 생각하면서 사셨잖아요. 요 며칠은 ‘우리 이제 앞으로 뭐 하며 살까’ 이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시간을 보내시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봤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시녀씨가 정말 근사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실은 요새 그런 얘기 많이 해요. 그리고 서로 괜히 마주 보고 실실 웃기도 하고.”

―혜경씨 이제 뭐 하고 싶으세요?

“배워야죠. 배워야죠.”

―뭘 배우고 싶으세요?

“안마하는 거 배우고 싶어요.”

―왜 배우고 싶으세요?

“안마 배워서요. 엄마도 주물러주고, 언니(이종란)도 주물러주고 돈 벌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야죠.”

―그거랑 또 해보고 싶은 거 없으세요?

“산에 가고 싶어요. 제가 올라갈 수 있는 산을요. 비장애인이 올라가는 산이 가고 싶긴 한데 못 가니까. 못 가요. 그치만 산이 가고 싶어요. 헬리콥터 타고 갈까요!”

―PCB, SMT, 저는 다 처음 들어보는 말들이에요. 혜경씨가 공장에서 어떤 일을 했던 건지 어쩐지 잘 상상이 되지 않네요.

내가 말하자 혜경씨는 자신이 했던 일을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동화를 읽어주듯이.

“기계가 네 개 있어요. 대부분 네 개예요. 맨 앞에 스크린 프린터라고 그 기계를 베어 피시비라고 초록색 기판으로 (…) 납이 얹혀지면 고속 칩 마운터 (…) 거기서 이형 칩 마운터로 가요 (…) 제가 확인을 하고 나면 리플로기에 넣어줘요(…)”

묵묵히 혜경씨의 설명을 듣던 이종란 노무사는 “설명 진짜 잘한다”고 감탄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뜻 모를 외국어처럼 어지럽고 먼 말이었다. 그러나 어제까지도 일한 사람처럼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혜경씨의 다정함만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혜경씨가 그렇게 꼼꼼하게 검사한 부품들은 어떤 가전제품으로 떠나게 되나요.”

그가 대답했다. “휴대폰 안에 들어가요. 노트북 안에 들어가요. 티브이 안에도 들어가요.”

나는 이 원고를 노트북으로 쓰고 있다. 이 노트북 안에도 혜경씨가 말한 ‘피시비 기판’이 들어 있다. 이 기계를 수년간 써오면서 이 안을 차지하는 어떤 부속을 스쳤을 ‘사람’의 손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처음이다.

모두에게 있다. 우리 모두가 지금 들고 있는 핸드폰 안에, 지금 보고 있는 티브이 안에, 지금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 안에도, 어떤 ‘사람’의 보이지 않는 증거가 있을 것이다.

녹취 원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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