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제2회 서울 드랙 퍼레이드’가 열렸다.
5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제2회 서울 드랙 퍼레이드’가 열렸다.

5일 오후 5시 서울 용산구 해방촌. 형형색색의 가발을 쓰고 뮤지컬 배우를 연상케 하는 진한 화장을 한 300여명이 줄지어 걷는다. “퀴어퍼레이드 아냐?” 도로를 활보하는 이들을 본 시민들이 조용히 수군거린다. 이들은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남성스러움’이라는 말도, ‘여성스러움’이라는 말도 이곳에선 무의미하다. 흔히 ‘여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치마나 하이힐, ‘남성의 전유물’로 일컬어지는 검은 양복이나 넥타이 등 성별에 따른 구분이 이곳에선 무의미했다. 이들은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열린 ‘제2회 서울 드랙퍼레이드’ 참가자들이다. 퍼레이드에 참가한 이들은 이날 30여분 동안 해방촌에서 이태원 일대까지 활보했다. 지난 3일부터 시작된 행사의 마지막 날이었다.

5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열린 ‘제2회 서울 드랙 퍼레이드’ 참가자들.
5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열린 ‘제2회 서울 드랙 퍼레이드’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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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열린 ‘제2회 서울 드랙 퍼레이드’ 참가자들.
5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열린 ‘제2회 서울 드랙 퍼레이드’ 참가자들.

‘드래그’ 혹은 ‘드랙’(drag)이란 ‘드래그 퀸(drag queen·‘여장’을 의미하는 ‘드래그’와 남성 동성애자가 스스로를 칭할 때 쓰는 표현인 ‘퀸’이 합쳐진 말)’으로 대표되는 성소수자 문화의 일종이다. 성별이나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의상과 메이크업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킹키부츠>와 <헤드윅> 같은 유명 뮤지컬에 ‘드래그퀸’이 등장하면서 드랙 문화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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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퍼레이드의 맨 앞에서 ‘서울 드렉퍼레이드’라고 적힌 팻말을 든 이는 서울 드랙퍼레이드 조직위원장 히지양(활동명·29)이었다. 2014년부터 드랙 문화를 시작한 히지양은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드랙 퍼레이드를 열었다. 히지양은 “드랙이란 성소수자든 아니든 누구나 사회적인 억압,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역할을 떠나서 자기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단”이라며 “드랙 퍼레이드는 ‘남자는 이래야 돼’ ‘여자는 이래야 돼’와 같은 고정관념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의상, 메이크업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자기 발견이자 고정관념에 맞서 싸우는 인권운동”이라고 밝혔다. 성소수자 문화 전체를 다루는 퀴어문화 축제와는 달리 드랙 문화를 중심으로 다루는 것이 큰 차이라고 히지양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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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히지양은 다음달 1일로 예정된 ‘퀴어 퍼레이드’와는 “성소수자가 공개적으로 나서 그들의 인권 증진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주최 쪽은 1회 때 하루에 불과했던 행사 기간을 3일로 늘려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더욱 환기시켰다. 3일 드랙 문화 사진전을 시작으로, 4일에는 <이태원 괴담> <울트라 블루> 등 퀴어 영화 상영회와 감독과의 대화를 열었다. 히지양은 “드랙이 클럽에서만 볼 수 있는 유흥 문화로서의 특징뿐만 아니라 전시회, 영상회 등을 통해 드랙이 갖고 있는 예술성도 전달하기 위해 이번에는 행사를 3일 동안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위에 나가 피켓 흔드는 것만이 인권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다른 사람한테 용기와 영감을 주는 것도 인권 운동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드랙을 보통 클럽에서 밤에만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낮에 거리를 당당하게 활보하면서 성소수자 문화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드랙 퍼레이드의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퍼레이드 전 마련된 부스에서는 성소수자 에이즈 예방센터 홍보 ‘I shap’을 홍보하는 부스와 성소수자에게 용기를 주는 편지를 쓰는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었다.

5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제2회 서울 드랙 퍼레이드’가 열렸다. 퍼레이드 전 마련된 부스에는 성소수자 에이즈 예방센터 ‘I shap’을 소개하는 부스가 차려졌다.
5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제2회 서울 드랙 퍼레이드’가 열렸다. 퍼레이드 전 마련된 부스에는 성소수자 에이즈 예방센터 ‘I shap’을 소개하는 부스가 차려졌다.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축제’인만큼 주최 쪽은 청소년에게도 참가의 문을 열어놨다. 드랙쇼 등 드랙퀸들이 펼치는 공연은 주로 밤에 클럽에서 열리기 때문에 클럽 출입이 제한된 청소년들의 경우 드랙 문화를 쉽게 접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서울 드랙퍼레이드는 지난해 ‘술 없는 드랙쇼’를 개최한 데 이어 올해 3일간 열리는 모든 행사(마지막 날 애프터파티 제외)에 청소년 입장이 가능하도록 했다.

퍼레이드에는 드랙 복장을 하지 않고 참가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극단에서 활동 중인 박현서(27)씨는 “2016년 클럽에 갔다가 드랙 문화를 처음 접했는데 그때는 단순히 게이들의 여장 문화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성역할과 같은 편견에 구애받지 않는 매력적인 문화라는 것을 알게 돼 관심을 갖게 됐다”며 참가 이유를 밝혔다. 이날 퍼레이드 전 드랙 공연을 펼친 스킴(활동명)도 “성별을 타파하고 자유롭게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드랙 문화의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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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열린 ‘제2회 서울 드랙 퍼레이드’ 참가자들.
5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열린 ‘제2회 서울 드랙 퍼레이드’ 참가자들.

한편 여성이나 트렌스젠더를 조롱하는 것이라는 논란에 대해서 히지양은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등 드랙 문화를 향유하는 일부 사람들에 대해 그런 논란이 제기됐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드랙의 본질은 게이가 여성을 흉내내는 게 아니다. 나는 여성을 흉내내고 싶어서 드랙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남성스러움’ ‘여성스러움’ 같은 기존에 고착화된 성역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서 드랙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가 앞으로 대중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 드랙퍼레이드 조직위는 “앞으로도 매년 드랙퍼레이드를 열 계획”이라며 “공간도 이태원에 한정하지 않고 더 넓혀가 드랙 문화에 대해 유흥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인권 운동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글·사진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