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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방역사 1명당 가축 91만마리…무너지는 살처분 ‘최후의 방어선’

등록 :2019-02-23 04:59수정 :2019-02-23 21:15

[살처분 트라우마 리포트] ④ 모두가 불행한 살처분, 대안은
살처분 방점 찍다보니 처우 개선 뒷전…2인 1조 못 지키고 잦은 사고
‘예방’이란 이름으로 기계적 살처분…고통의 악순환 이젠 끊어야
방역사가 줄로 소를 잡은 다음에 채혈을 하기위해 보정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제공
방역사가 줄로 소를 잡은 다음에 채혈을 하기위해 보정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제공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AI)는 국가재난형 가축 전염병이다. 정부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병에 걸린 가축과 함께 주변의 멀쩡한 가축도 살처분한다. 2000년대 들어 살처분된 가축은 모두 9806만마리. 매년 544만마리 넘게 죽임을 당했다. 죽어야 하는 가축 건너편엔 죽여야 하는 사람이 있다. ‘살처분 노동자’들이다. 초기에 공무원을 동원했던 정부는 이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외주화한다. ‘대량 학살’의 경험은 살처분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기지만, 국가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해왔다. <한겨레>는 살처분에 5차례 이상 참여했던 노동자 38명(공무원 17명, 일용직 16명, 방역업체 소속 5명)을 만나 1명당 최소 2시간 이상 인터뷰했다. 살처분 노동자의 트라우마를 깊이 들여다보고 살처분 산업의 외주화, 구멍 난 국가방역 시스템, 그리고 대안을 4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젖소는 한우보다 1.5배 크다. 몸무게가 1톤이 넘는다. 바닥에서 엉덩이까지가 사람 키만 하다. “2016년 9월8일 오후 1시30분. 경남 남해군 한 농가. 사장 이름은 박○○.” 전직 방역사 허정(30)은 또렷한 말투로 수컷 젖소에 들이받히던 ‘그날’을 떠올렸다. 소 브루셀라 검사를 하기 위해 농가를 찾은 날이었다. 축사에 들어서자 기둥에 목이 묶인 젖소가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낯선 사람의 손길을 외면하는 몸짓이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흔들리는 젖소 꼬리를 겨우 잡아 주삿바늘을 꽂고 피를 뽑았다. 곧 젖소를 풀어주려는 순간, 젖소는 온 힘을 다해 제 목에 감긴 줄을 끊었다. 젖소 머리에 세차례 들이받힌 허정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뿔이 있었으면 즉사했을지도 모른다.

방역사는 2인1조 근무가 원칙이다. 그날 허정은 홀로 근무했다. 부러진 갈비뼈들이 폐를 찔렀고 오른쪽 측두골이 함몰됐다. 1살이던 딸은 무너져 내린 아빠의 얼굴을 못 알아보고 엄마 품을 파고들며 울었다. 지역 병원에서는 수술이 안 된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병원까지 찾아갔다. 오른쪽 귀 뒤쪽, 겨드랑이 아래…. 몸 곳곳에 수술 흔적이 남았다. 사고 2~3개월 만에 정신과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수면제 없이 잠을 자지 못한다. “오른쪽 귀는 지금도 잘 들리지 않아요. 티브이(TV)를 보다가도 소가 나오면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혼자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고 긴장이 되고 그래요. 불을 끄면 계속 그날 생각이 납니다.”

2018년 10월30일, 허정은 방역사를 그만뒀다. 입사 4년, 사고 2년 만의 일이다. 방역사는 대학에서 축산학과를 다닌 허정이 생애 처음으로 가진 직업이었다. 허정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다른 직업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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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방역 상시·필수인력이라지만…현실은 ‘푸대접’

그들은 살처분 앞에 버티고 선 최후의 방어선이다. 방역사는 가축 전염병이 창궐하기 전 이를 예방하는 작업을 한다. 국가 방역의 상시·필수 인력이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에이아이·AI) 등 주요 가축 전염병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시료 채취와 농장 예찰이 주된 업무다. 소는 도축장에 가기 전에 반드시 브루셀라와 결핵 검사를 해야 판매가 가능한데, 이 검사 역시 방역사들이 한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을 막는 백신 같은 역할이다. 전국 가축 농가의 정보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작업도 한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가축과 차량의 이동을 통제하는 초동 대응도 이들의 몫이다. 이때 방역사들은 농가 근처에 텐트를 치거나 차량에서 잠을 자며 길게는 1~2주일 정도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살처분 현장을 지킨다.

방역사가 혼자서 자세가 보정되어 있는 소의 꼬리를 잡아 한 손으로 주사기를 들고 채혈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제공
방역사가 혼자서 자세가 보정되어 있는 소의 꼬리를 잡아 한 손으로 주사기를 들고 채혈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제공
살처분이라는 명분의 동물 대량학살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일용직 노동자들과 공무원들이 더 늘어나는 걸 막기 위해선, 가축 전염병 예방 시스템을 더 촘촘히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 구실을 할 방역사는 전국에 겨우 333명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가축 사육 현황을 보면, 2017년 현재 전국에서 말과 소, 돼지와 닭, 오리를 키우는 축산 농가는 모두 12만153곳이고, 동물 수는 3억287만7117마리에 이른다. 방역사 1명당 농가 360곳, 동물 91만마리 상당을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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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방어선은 무너지고 있다. 허정처럼 혼자 농장에 가서 소와 씨름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방역본부)의 복무규정을 보면, 공무직 직원은 2인1조 방식의 출장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노조가 공개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노동자 안전 및 건강 실태조사 최종보고서’(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방역사 333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78명이 1인 단독근무를 하고 있었다. 1인 근무는 잦은 사고로 이어졌다. 실태조사 보고서는 방역사들의 업무상 재해율이 한국의 산업 현장 평균 재해율(0.48%)의 18배에 이르는 8.8%라고 밝혔다. “‘태안 김용균씨 사고’처럼 목숨 걸고 일하는 거죠. 한 명이 지켜봐 주기만 해도 안전장구의 백배 이상 효과가 있는데, 그게 안 되고 있어요.” 한 현직 방역사의 말이다.

전직 방역사 허정씨는 2016년 9월8일 소 브루셀라 검사를 위해 홀로 채혈을 하다 수컷 젖소에 게 들이받혀 갈비뼈가 부러지고 오른쪽 측두골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사진은 사고 뒤 수술한 자국. 허정 제공
전직 방역사 허정씨는 2016년 9월8일 소 브루셀라 검사를 위해 홀로 채혈을 하다 수컷 젖소에 게 들이받혀 갈비뼈가 부러지고 오른쪽 측두골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사진은 사고 뒤 수술한 자국. 허정 제공
방역사 안성호(가명·59)도 홀로 현장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2013년 2월 경북 영주시 인근의 한 농장. 안성호는 채혈 작업을 위해 소 목에 줄을 감고 있었다. 흥분한 소가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갔다. 팽팽해진 줄에 안성호의 손가락이 빨려 들어갔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 약지의 손톱 부위 3㎝가량이 뜯기고 겨드랑이와 이어진 힘줄 30㎝도 함께 뽑혀나갔다. 사고가 난 농장은 휴대전화도 안 터지는 오지였다. 안성호는 대충 응급처치를 한 뒤 스스로 차를 몰고 농장을 나와야 했다. “힘줄이 노랗게 튀어나왔어요. 손가락은 너덜너덜했고 뼈가 다 드러날 정도였죠.” 나중에 안성호를 병원에 데리고 간 동료의 설명이다. 사고 뒤 6년이 지났지만 안성호는 당시 트라우마를 이유로 직접 인터뷰를 거부했다. 동료를 통해 말을 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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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직인데 신분은 불안정…“무기계약직이라 무기력”

방역사들은 신분마저 불안정하다. 방역본부의 정원은 모두 1034명이다. 이 가운데 정규직은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49명뿐이다. 현장을 뛰는 방역직, 위생직, 검역직 등 나머지 985명은 무기계약직이다. “태생이 무기계약직이다 보니 무기력에 많이 빠지죠. 특히 방역직은 에이아이·구제역 방역의 최일선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한 업무를 담당하는데도 말이죠. 처우 수준도 다른 무기계약직보다 낮아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김필성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장의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직률이 높다. 방역사의 이직률은 6.9%. 공공기관 평균 이직률(1.4%)의 5배에 이른다. 같은 방역본부에서 일하는 위생직의 이직률(2.7%)보다 약 3배 높다. 30대 중반의 한 방역사는 새로 들어온 후배에게 “공부를 하든지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전문성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태안화력 발전소에서 김용균씨가 사고로 목숨을 잃자 갑자기 2인1조 근무 원칙을 꼭 지키라는 명령이 내려왔어요. 인원은 그대로인데 현장에선 혼란만 가중됐습니다.” 김 지부장이 말했다.

방역사가 돼지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축사 안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제공
방역사가 돼지 시료를 채취하기 위해 축사 안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지부 제공
정작 방역사들의 업무량은 크게 늘고 있다. 방역본부가 주관하는 에이아이 시료 채취 사업물량만 봐도 2009년 3만점에서 2015년 8만점, 2017년 11만점, 2018년 13만점으로 4배 이상 많아졌다. 이 수치로 따지면 2018년 한 해만 방역사 1명당 390건의 시료 채취를 한 셈이다. 직접 한우를 키워보기도 한 국회 유일의 농업인 출신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시 예찰 업무가 지속해서 증가하는데 방역사들은 여전히 방역본부 안에서 가장 열악한 급여를 받으며 위험한 근로 환경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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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인 문제는 한국의 가축 전염병 방역 정책이 살처분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사실이다. 살처분 보상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면서 예산 배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방역사들의 처우 개선은 뒷전으로 밀렸다. 실제로 최악의 구제역 사태가 발생했던 2010년 1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살처분에 쓰인 정부 재정은 모두 2조7천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살처분한 가축에 대한 보상금에만 1조8천억원이 쓰였다. 2014~2015년 에이아이 살처분의 경우 모두 3364억원이 쓰였는데 보상금이 1772억원, 소독 등에 쓰인 돈은 564억원이었다. “백신 등 예방 정책에 들어갈 예산이 살처분 보상비로 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예산 배분의 불균형부터 해소해야 한다”(함태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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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적 살처분 미명 아래 기계적 살처분…규모 줄여야”

현장의 아픔과 달리 정부는 ‘간편한’ 패러다임을 펼친다. 무분별한 살처분에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인력이 투입되는데다, 심지어 그 인력은 점점 외주화하고 있다. 이런 인력이 대량 학살을 단시간 안에 처리하려다 보니 트라우마에 쉽게 노출된다. 그것은 동시에 동물권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일이기도 하다.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시장·군수·구청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예방적 살처분’을 선택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 규정을 근거로 그동안 지방자치단체들은 발생 농장 반경 3㎞ 이내에서 예방적 살처분을 해왔다. 지난해 9월 농림축산식품부는 ‘에이아이·구제역 방역 보완 방안’을 발표하면서 아예 ‘3㎞ 예방적 살처분 원칙 확립’을 천명했다. 살처분 규모를 줄이자는 전문가들의 목소리와는 거꾸로 가는 정책이다. “신속한 방역이라는 측면에서 예방적 살처분을 10㎞로 하면 더 확실하겠죠. 또는 5㎞로 할 수도 있을 텐데 이런 간편한 정책 반대편에서 죽지 말아야 할 동물들이 죽고 있는 겁니다. 일반적인 살처분은 필요하겠지만, 예방적 살처분의 기준과 과정을 세분화해서 3㎞ 이내라도 건강한 개체는 제외할 수 있는 세부 규정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고민 없이 대량 살처분을 택합니다.” 함 교수의 말이다.

김현권 의원 역시 “살처분 전체 숫자에서 예방적 살처분 비율이 굉장히 높다”며 “획일적으로 컴퍼스 돌리듯이 해서 멀쩡한 가축을 수없이 묻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살처분 트라우마 방지법’(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던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도 “예방적 살처분은 비윤리적”이라며 “말 못하는 동물의 고통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의 후유증도 상당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쉽게 어쩔 수 없다는 자기 위안과 합리화로 더 나은 방법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살처분은 최소화하고, 차단 방역을 강화하되 의심군은 역학관계, 발생 시기, 지역적 특성 등을 고루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8년 4월15일 김제시 용지면 용수리 한 양계장에서 살처분을 기다리는 닭들이 닭장 밖으로 고개를 내 밀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4월15일 김제시 용지면 용수리 한 양계장에서 살처분을 기다리는 닭들이 닭장 밖으로 고개를 내 밀고 있다. 연합뉴스
동물단체들은 ‘예방적 살처분의 방역적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활동가 장병진씨는 2017년 1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에이아이 살처분 현황을 근거로 들었다. 그 기간 닭과 오리 등 가금류 654만마리를 살처분했는데, 발생 농장에서 133만마리, 예방적 살처분으로 521만마리를 살처분했다. 이 521만마리 가운데 에이아이 항원이 검출된 개체는 1마리도 없었다. 동물구조119 임영기 대표는 “백신 등 다른 방식에 견줘 차라리 몰살시켜버리는 게 단가가 싸기 때문에 정부 쪽에서는 이 방식이 더 깔끔하다고 보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국가금수의사회는 구제역 백신에 이어 고병원성 에이아이(HPAI) 백신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닭 한마리당 2회 접종 시 접종비를 포함해 200원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가금수의사회 추산으로, 전국의 모든 산란계와 종계(번식을 위한 닭)에 2회 이상 백신 접종을 해도 200억원 이하의 예산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정부가 고병원성 에이아이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백신을 도입하지 않고 있지만, 청정국 지위는 수출시장이 있는 나라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은 삼계탕 등을 수출하긴 하지만 연 500억원 규모에 그치는데다 삼계탕은 가공식품이라 청정국 지위와도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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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이 침해될수록 인권도 침해된다”

살처분 규모 축소가 보다 장기적인 과제라면 당장의 과제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고 신속하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도적 살처분을 시행하는 것이 동물복지에 부합할 뿐 아니라 살처분 참여자의 트라우마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동물보호법’과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을 보면, 가축 살처분을 할 때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이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가 정한 ‘방역 목적으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에서의 일반 원칙’도 동물을 질병 통제 목적으로 죽일 때는 즉살 또는 즉시 의식을 잃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시 의식을 잃게 하지 못할 경우에도 가능한 한 해가 적도록 하여 동물의 불안, 통증, 스트레스, 고통을 유발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이산화탄소 가스 대신 질소가스 거품을 사용해 동물을 기절시킨 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안락사시키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비용이 더 들고 살처분 시간이 길어진다며 주저하고 있다.

주저하는 농식품부 뒤에서 ‘빨리빨리’가 미덕인 살처분 현장은 ‘고통의 최소화’라는 목표를 쉽게 무시한다. <한겨레>와 인터뷰를 한 일용직 노동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들은 살아 있는 오리를 기계에 넣어 갈거나 이산화탄소 가스 주입 뒤에도 죽지 않은 닭과 오리의 목을 비틀거나 발로 밟아 직접 ‘처리’했다. 이로 인해 악몽에 시달리거나 살처분에 익숙해질수록 동물에게 폭력적으로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

한쪽에선 동물을 잔인한 방식으로 죽이는 노동자들을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13년 ‘공장식 축산업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에 참여했던 하승수 변호사의 생각은 다르다. “살처분이 졸속으로 이뤄지다 보니 정해진 규정조차 지켜지지 않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굉장히 나쁜 (노동) 환경을 만들어놓고 그 환경과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엄격하게 지키기를 바랄 수는 없지요. 바로 이런 이유로 정부는 살처분 노동자들의 트라우마를 개인의 부담으로 남겨둬선 안 되고 직접 치료를 책임져야 합니다.”

현재 인권위는 살처분 참여자들의 심리적 안정과 정신적 회복을 위해 이들에게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무적으로 안내하라고 농식품부 장관에 권고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도 살처분을 한 날부터 15일 안에 참여자들의 심리적 안정과 정신적 회복을 위한 치료 지원의 내용과 신청 방법 등을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했다. 아직 걸음마 수준이더라도 정부의 ‘적극적 역할’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함태성 교수는 더 나아가 “사후 심리치료에 공무원은 물론 살처분에 참여했던 일반인, 외국인 노동자까지 모두 포함해야 한다. 불법체류자도 인권 보호 차원에서 마땅히 치료를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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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집 사육이 전염병 키워…“공장식 축산 재고해야”

근본적으로는 밀집 사육을 하는 ‘공장식 축산’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규모 살처분이 반복되는 데에는 한국 축산이 가진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박종무 평화와생명동물병원 원장은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열린 ‘생명을, 묻다’ 토론회에서 “국토가 좁고 산지가 많아 축산에 활용할 만한 초지가 없는 우리나라는 가축에게 먹일 사료도 생산되지 않는다”며 “다양한 보조금을 받으며 생산비 이하의 싼값의 곡물을 공급받아 생산하는 국외 축산 농가와 수입 사료를 먹여 사육하는 국내의 축산 농가는 처음부터 가격 경쟁이 되지 않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이런 이유로 좁은 공간에 배터리 케이지(밀집형 닭장)를 아파트 2~3층 높이까지 쌓아두는 공장식 축산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공장식 축산을 지향하는 대규모 양계장에서는 육계용 병아리가 에이아이에 감염됐을 때 치사율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병을 앓는 동안 체중이 늘어나지 않아 출하가 지체되는 것을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농가에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빨리 농장을 초기화시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대량 살처분의 이유가 된다는 게 박 원장의 주장이다.

경기도 양주시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닭들이 알을 생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양주시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닭들이 알을 생산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장식 축산 자체가 에이아이 발생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에이아이 발생 중요 요인으로 ‘공장식 축산’을 지목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활동가 장병진씨는 “사람도 그렇지만 밀집된 공간에서 몸도 제대로 못 움직이고 햇볕도 제대로 못 쬐면 당연히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전염병이 전파될 확률도 높다”고 지적했다. 동물구조119 임영기 대표는 “9단짜리 배터리 케이지는 9층 침대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위에 있는 개체가 똥을 싸면 아래 있는 개체가 다 맞는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설 연휴 때 <사랑할까, 먹을까>(황윤 지음)를 읽고 “채식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공장형 사육을 농장형 사육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살처분을 아예 없애는 건 당장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살처분이 과연 동물과 인간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 계속 물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끝>

[살처분 트라우마 리포트] 이전회 바로 가기

①나는 살처분 노동자입니다 https://goo.gl/AgNDR1

②살처분은 어떻게 외주화했나 https://goo.gl/kaRWP7

③공무원 트라우마는 진행형 https://goo.gl/5H6zLk

특별취재팀 황춘화 이유진 오연서 이정규 이주빈 장예지 전광준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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