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


▶최근 여성가족부가 성차별적인 호칭 문제를 개선하겠다며 ‘‘3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보완해 발표했다. 추석을 앞두고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벌인 조사에서 명절에 성차별 언어나 관행을 겪었다는 이들은 전체 응답자 1170명 중 83.2%에 이르렀고 지난해 국립국어원 조사에서는 응답자 4000명 중 65.8%가 ‘도련님, 아가씨’ 호칭이 바뀌어야 한다고 답했다. ‘시댁-처가’, ‘친할머니-외할머니’, ‘도련님-처남’, ‘아가씨-처제’ 등 양가를 차별해 부르는 호칭에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가족 내 성차별과 호칭 문제에 대해 기혼 여성 6명과 방담을 나누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결혼해보니 어떻던가요, 가족 호칭이?”

단체 채팅방에 질문을 던지자마자 폭풍 전야 같은 정적이 흘렀다. 채팅방 위 상태 표시줄에 “3명 입력 중…”이란 신호가 떴다가 이내 “5명 입력 중…”으로 바뀌었다. 스마트폰 위로 분주히 움직이는 손가락들이 보이는 듯했다. ‘가족 내 성차별 호칭’에 대해 20~30대 기혼 여성 6명이 모여 단체 채팅을 한 지난 16일 밤. 며느리들의 ‘한’이란 것이 폭발하고 말았다.

한밤에 채팅방을 연 까닭은 참여자 모두 ‘엄마’여서 아이를 모두 재운 밤에야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모두 ‘정치하는엄마들’ 회원이기도 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 당사자들이 관련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자 만들어진, 탄생한 지 1년 조금 넘은 단체다. ‘성차별 호칭 바로잡기’는 이 모임의 주된 관심사이기도 하다. 대화는 역시 가장 많은 이가 문제로 꼽는 ‘도련님, 아가씨’ 호칭에서 시작됐다.

<단체 채팅 참여자 소개>

‘결혼전엔몰랐다’(이하 몰라): 29살, 결혼 5년차, 자녀 1명

‘나도명절엔서방이고싶다’(이하 서방): 34살, 결혼 9년차, 자녀 3명

‘내가종부라니’(이하 종부): 37살, 결혼 11년차, 자녀 1명

‘F급며느리’(이하 F급): 38살, 결혼 4년차, 자녀 1명

‘며느리도리도리’(이하 도리): 38살, 결혼 4년차, 자녀 1명

‘내이름은김삼순’(이하 삼순): 38살, 결혼 8년차, 자녀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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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직후부터 이상하다 느껴

사회 다들 결혼해보니 어떻던가요, 가족 호칭이?

종부 결혼한 해, 시동생이 열한살 꼬마였는데 ‘도련님’이라 불렀습니다. ㅠㅠ

몰라 전 결혼 전엔 이름 부르던 시동생을 결혼 뒤엔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남편은 여전히 제 동생(처제)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불편하더라고요. 그런데 도련님이라고 높여주니까 시동생이 좋아하고, 시부모님도 좋은 분들인데 호칭에 대해 제가 민감하게 나가기가 죄송하기도 하고, 그래서 여태 그냥 “도련님~” 하면서 존대하고 있어요.

도리 에휴. 전 도련님이라 부르는데 시동생이 ‘형수’라고 하면 참 밉데요. 형수라고 부르기에 웃으면서 “님 붙여주세요, 도련님” 이런 적 있어요.

몰라 남자 쪽은 존칭이고, 여자 쪽은 낮춰서 부르는 호칭들이죠. 그게 제일 불공정하게 느껴져요. 저는 어머님 앞에서 도련님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데, 왜 남자들은 어른들 앞에서 형수, 장인, 장모 이런 식으로 말할까요?

도리 도련님은 아예 ‘님’자 빼고 ‘도련’이라고 부를 수가 없는 구조잖아요. 혹시 도령? ㅎㅎ 거기다 왜 도련님이 결혼하면 또 ‘서방님’이 되냐고요. 내 서방은 하난데.

몰라 사실 호칭이 전부 아닌가요. 호칭에서 사람에 대한 대우가 나오는 건데 말이죠. 남편 집은 ‘시댁’, 아내 집은 ‘처가’인 것도 이상하죠. 그냥 시가, 처가 하면 될 것을.

가족 호칭에 대해 이상함을 처음 느낀 순간으로 결혼 직후를 꼽는 이가 많았다. 연애 기간이 길어 결혼 전에는 자유롭게 서로 이름을 불렀던 경우에도 결혼이란 장막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이상한 호칭의 나라’로 인도됐다. 일심동체라면서 호칭은 갈린다. 여성의 부모는 사위를 ‘김서방’이라 부르며 ‘백년손님’으로 예우하고 남성의 부모는 며느리를 ‘새아가’나 ‘에미’ ‘너’라고 칭하며 부엌으로 부른다. 1992년 국립국어원이 낸 <표준화법>을 보면 며느리에 대한 호칭어는 ‘아가, 새아가, ○○어미(어멈), 얘야, 너’였다가 2011년 <표준언어예절>에서는 ‘어멈, 어미, 아가, 새아가’로 줄었다. 반면 사위에 대한 호칭어는 1992년 ‘○서방, 여보게, 자네’에 2011년 ‘아범, 아비’가 추가됐다.

삼순 결혼하자마자 시부모님과 다른 어르신들까지 모두 저를 ‘새아가’라고 불렀어요. 새아가였다가 애 낳고 나니 곧바로 ‘에미야’가 됐죠. 그게 그렇게 듣기 싫더라고요. 저도 이름이 있는 사람인데. 남편은 애가 있으나 없으나 이름으로 불리거나 김서방인데 저만 ‘에미야’예요. 도리 며느리가 되는 순간 사회적 위치가 ‘리셋’되는 거죠. ‘아가’가 되어버리니까요. 남편 큰집에서도 절 아가라고 불러요. 인사 갔을 때 어른들이 형님(남편 형의 부인)한테 “졸병 들어와서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삼순 애 낳자마자 하루아침에 ‘에미야’가 돼서 너무 황당했어요. 애 낳은 다음날 우리 집에 오셔서 “에미야”라고 하시는데 뒤돌아봤다니까요. 누구 부르나 하고. ‘에미야’가 애 낳은 사람 높여주는 말인가요?

종부 저희 집에선 남편에게 “김서방 ~했는가” 하는데 시가에선 저를 “○○야, ~해라” 하지요.

삼순 맞아요. 우리 엄마는 “○서방 ~할란가? ~하시게” 하는데, 시어머니는 저한테 “에미야, 이것 좀 해라”. 이번 명절도 남편은 손님으로 이 집 저 집에서 대접받고 ‘에미’는 일할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네요.

서방 제 스스로가 시어머니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며느리한테 처음부터 반말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자신을 상상해보니 기분이 엄청나게 나쁘더라고요.

F급 결혼 직후 ○○네(전 시댁을 남편 이름 붙여 이렇게 불러요) 갔을 때 시아버지께서 제 이름을 부르며 “이제 저 부엌살림 네가 할 건데”라고 말씀하셔서 분노했어요. 저흰 결혼식에서 ‘평등 부부 선언문’까지 읽었는데.

서방 남녀 호칭의 높낮이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어요. 사위에겐 ‘○서방, 자네’라 부르지만 며느리를 높여 부르는 호칭은 아예 존재하지 않잖아요. 친정에서 내 남편을 ‘자네’라고 불러준다면 저도 시댁에서 ‘자네’라고 불렸으면 좋겠어요. 이름을 부른다면 “○○야”보다는 “○○씨”가 맞는 것 아닐까요?

도리 사위만 ‘백년손님’이라고 부르는 것부터 사라져야 한다고 봐요. 평창동계올림픽 때 시가 부엌에서 상 차리고 있는데 함성이 들려서 보니까 우리가 금메달을 땄더라고요. 쫙 앉아 있는 남자들 보니까 확 열이…. 나도 금메달 따는 장면 보고 싶었는데, 생생하게. 그때 남편이랑 눈 마주쳤는데 해맑게 “금메달 땄다”고….

서방 서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관계가 될 때까진 상대 집안에 손님인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며느리라는 존재는 손님이라기보다는 ‘일할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는 느낌인 것 같아요.

종부 이 남자가 좋아서 같이 살기로 한 건데 그게 아니고 ‘며느리’가 된 거라고 자꾸 말하네요, 세상이. 그걸 결혼 전에는 너무 몰랐네요.

도리 에휴. 좋다고 쫓아다녀서 결혼한 건데도 이러네요. 혼자 살려고 했는데, 아 진짜 왜 그때 맘이 약해져서…. ㅠㅠ

F급 시어머니가 “사부인과 통화하는데 ‘우리 애가 그 집 사람이 다 됐다’고 하시더라. 기분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 저 그 집 사람 아니에요. 저 시집 간 거 아니에요. 그냥 좋아서 남편이랑 결혼한 거예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결혼식에서 읽은 평등 부부 선언문에 ‘결혼은 한쪽 집안에 속하는 게 아니’란 문구가 있었는데, 그건 우리만의 생각이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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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호칭이 불평등한 관계로

불편한 호칭은 불편한 관계를 만든다. 여성은 ‘아가씨’라고 부르기 싫어 시누이를 피하기도 하고, 남성은 아내의 오빠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면 호칭(‘형님’)을 생략하고 되도록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국립국어원이 기혼 남성 1053명에게 아내의 오빠나 언니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경우 어떻게 부를지 곤란한 적이 있었는지 물었더니 31.4%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같이 가족 안에서 위계와 나이가 충돌해 발생하는 호칭 스트레스도 남성보다 여성이 컸다. 남성에겐 대안도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언어예절>을 보면 남편의 경우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아내의 오빠나 아내 언니의 남편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릴 때 ‘처남’과 ‘동서’로 낮춰 부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은 남편의 누나나 여동생, 남동생이 자신보다 어리더라도 예외 없이 ‘형님’과 ‘아가씨’, ‘도련님’과 ‘서방님’으로 높여 불러야 한다.

F급 호칭이 불편하니 피하게 돼요. 전 작년에 시누이들과 마주쳐 어색한 상황이 되고 나선 아예 피하기로 했어요. 명절에 시누이들 오기 전에 우리 집으로 가기로.

삼순 제 동생이 남편보다 나이가 많아서 남편이 ‘처제’라고 호칭만 하지 말은 높이거든요. 결혼 직후엔 제 동생과 남편이 서로 호칭을 생략하고 대화를 하더라고요. 결국 대화를 회피하게 돼 두 사람이 같이 있고 저는 따로 밖에 있었는데도 둘이 제게 문자를 보내 서로 할 말을 전달해달라고 요구했던 적도 있었어요.

도리 양가 어머니를 부르는 이름도 문제 있어요. 대부분 사람이 ‘장모’는 괜찮고 ‘시모’는 불편해하더라고요.

삼순 맞아요. 제가 친구들끼리 있을 때 시엄마, 시엄마 하거든요. 근데 이 표현도 듣기가 거북한가 봐요. 뭔가 시어머니를 낮춰 부르는 느낌인가? 우리 엄마는 엄마, 남편 엄마니까 시엄마라 한 건데.

몰라 아이가 생기고 나니, ‘친’할머니, ‘외’할머니 표현도 얼마나 열받고 슬픈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고생하면서 애 보는 엄마의 엄마는 ‘바깥’할머니라니.

삼순 저는 아이한테 외할머니, 친할머니라는 말을 안 가르쳐주고 ‘서울 할머니’ 식으로 지역 이름 붙여서 알려줬거든요. 그랬더니 유치원에서 돌아와서는 “엄마, 외할머니가 뭐야?” 하더라고요. 난감하죠.

서방 저도 첨부터 지역 이름을 앞에 붙여서 가르쳐줬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친가, 외가 개념을 아예 몰라요.

종부 저희 집에선 양가 어머니 이름에 들어가는 단어를 따서 시가는 별할머니, 친정은 달할머니예요.

‘시댁-처가’ ‘시어머니-장모’ ‘친할머니-외할머니’ ‘아가씨-처제’ ‘도련님-처남’ ‘김서방-새아가’ 등 부부를 기준으로 양가가 다른 호칭은 차별일까, 단순한 구분일까. 학자 사이에도 의견이 갈린다. 김하수 전 연세대 교수(국문학)는 가족 호칭 문제를 “남성의 혈통만을 중심으로 보는 시각,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 우리의 성씨 제도, 조상숭배 등이 칡넝쿨처럼 얽혀 나타나는 문제”라고 진단한다. 반면 홍윤표 전 연세대 교수(국문학)는 “호칭은 대체로 매우 가까운 사이, 특히 같은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동생을 부르는 말인 ‘도련님’은 있는데 처제와 처남은 (별도 호칭이 없이) 그냥 ‘처제, 처남’인 것을 마치 성차별이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설명한다.

종부 궁금한 게 있어요. 명절, 시가, 며느리 역할… 이런 것이 우리를 억누르는 가부장제 속에서 호칭이 더해져 갑갑한 걸까요, 아님 호칭이 이런 억압을 더 부채질하는 걸까요? 호칭이 불평등해도 집안 분위기가 평등해서 남자들이 다 함께 일하고 한다면 덜 힘들까요?

몰라 전 부채질한다고 봐요. 결혼 전엔 몰랐는데, 하고 나니까 알겠더라고요. 그렇게 불리니까, 제가 그렇게 움직여지더라고요. 당연히 호칭만 고친다고 될 문제는 아니지만 호칭도 중요해요.

삼순 맞아요. 진짜 ‘며느라기 마법’(며느리로서 시댁에 잘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현상. 웹툰 <며느라기>에 나온 표현)에 걸린 것처럼 자꾸 노력하게 되고… 애한테 젖 물리느라 밤새 잠도 못 잤는데 새벽에 시어머니가 주방에서 움직이는 소리에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나와야만 하는. ㅠㅠ

F급 정말 입에도 안 맞는 동그랑땡 뭘 그리 해대는지. 시누이들, 남편이 좋아한다고…. 동그랑땡 얘기만 나와도 싫어요. 자기 좋아하면 자기들이 해 먹으라고요.

삼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문제 같아요. 그 두가지가 시너지 효과로 현재의 불평등 문제로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져요.

몰라 호칭을 안 고치면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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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선 움직임

종부 호칭을 여성가족부나 국립국어원에서 개선했을 때 과연 실생활에서 얼마나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세요?

삼순 알아서 정리하기 애매한 건 원칙을 딱 정해줘야죠. 하루이틀 이렇게 살아온 게 아니라 그렇게 정해줘도 한동안은 시끄럽겠지만요.

몰라 맞아요. 원칙을 정해줘야 시가 어른들이 공격받는다고 느끼지 않을 테지요.

도리 그래도 정부에서 이번에 개선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니까 ‘이번 명절에 우리도 호칭 바꾸자고 말이라도 해볼까’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몰라 전 오히려 “정부에서 성차별 호칭 개선한다고 뭐가 바뀌겠어?” 식의 논리가 열불 터져요. 그것만으론 안 되겠죠. 모든 변화가 그런 거 아닌가요. 작지만 중요한 것들이 같이 맞물려 일어나야 하는.

삼순 공론화와 제도적 대응이 정말 중요해요!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호칭 개혁 시도해보는 에피소드가 나오면 공론화 불 댕기기가 좋을 것 같아요.

몰라 맞아요. 그런데 예능이나 드라마, 만화를 보면 고민 없이 만드는 흔적이 너무 역력해요. 사회적인 호칭 문제를 우리 개인의 노력으로 혁파할 수 있을까, 그렇게 싸워나가야 하는 건가 하는 부분이 사실 가장 논의해보고 싶은 부분이에요. 이렇게 개인적으로 부딪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일 얼굴 보는 가족과 부대끼는 거라 참 어려워요.

삼순 당사자 둘이 괜찮다고 해서 호칭을 바꿔도 주변에 계속 설명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도 많으니까요. 이런 호칭이 남아 있는 한 둘만 괜찮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죠.

몰라 맞아요. 전 사촌 형님(남편의 사촌 누나)이 먼저 “언니라고 불러” 그래서 언니라고 부르면서도, 어른들이 안 좋게 볼까 봐 제가 계속 설명해야 하는 거예요. 형님이 먼저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결국 제가 예의 바르지 않아 보이니까 계속 설명해야 하고, 형님은 쿨한 사람이 되더라고요.

삼순 ‘에미야’라고 강경하게 부르시는 시어머니가 저보다 6살 어린 아가씨한테는 이름 부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에미야’ 포스에 눌려 차마 이름 못 부르고 여태 ‘아가씨’라고 하고 있어요.

도리 저도 남편 사촌 동생들에게 ‘아가씨’ 대신 이름 부르라는데 그게 그렇게 되나요. 괜찮다는 어른들만 쿨해 보이고 저는 계속 눈치 보는거죠.

가족 내 호칭을 개인이 깨부수긴 쉽지 않다. 집안에서 남성들이 나서서 성차별 호칭을 쓰지 않고 평등하게 부르고 싶다고 하는 경우에도 변화를 도모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대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경우 불편한 호칭을 바꾸자고 제안했다가 가족 안에서 관계가 깨질까 봐 걱정하는 이가 많다. 이 때문에 늘 불편함을 느끼는 호칭도 참고 쓰게 된다. 박철우 안양대 교수(국문학)는 “언어는 사고의 반영이어서 불편하면 안 쓰게 되는데 현재 가족 호칭 문제로 국민들이 불편을 느끼는 것은 2011년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언어예절>이 ‘표준’이란 제목을 달고 국가기관에서 발간한 것이다 보니 정답으로 인식돼 그걸 안 따르는 것이 마치 가족 내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채팅 참여자들은 최근 정부에서 “가족 내 성차별 호칭을 개선하겠다”(여성가족부, 8월31일)고 발표한 것을 핑계 삼아 며느리들이 말이라도 꺼내볼 수 있게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은 개인 차원의 노력으로 호칭 문제가 해결될 순 없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이번 추석, 변화의 첫 단추를 끼워보겠다”고 했다. 분위기가 바뀌고 있으니 우선 자신이 내려놓고 바꿀 수 있는 호칭부터 실천하겠다는 각오였다.

도리 저희 부부는 추석에 작은 실천을 하나 하기로 했어요. 명절에 남편 큰집으로 가는데 어른들 있는 자리에서 남편이 “형수님, 이제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냥 제 이름 부르세요. 말도 낮추셔도 됩니다”라고 말하기로 했어요. 예전에 형수님한테 누군가가 “이제 도련님 결혼했으니 서방님으로 불러라”라고 하는 얘기를 듣고 저희가 민망했거든요. 우리 딸 미래를 생각해보라고 했더니 남편이 결단했어요.

삼순 전 시어머니께 “이게 요즘 트렌드”라며 ‘에미야’ 말고 제 이름을 불러달라고 해보려고요. 물론 전에도 말했다가 거부당했지만. 이번에는 결혼 안 한 시누들을 공략해볼까 해요. “아가씨, 나중에 결혼해서 에미야로 불리면 기분 어떨 것 같으세요?” 이렇게 말이죠.

F급 그러고 보니… 여태 ‘아가씨’라 불려온 저는 새언니께 뭐라고 절 불러달라 하면 좋을까요?

삼순 이름 어때요?

F급 네. 그렇게 불러달라 해야겠어요. ‘아가씨’로 불리니 늘 뒤에는 존칭과 존댓말이 왔는데 저부터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네요.

삼순 저도 이번 추석 때 우리 아가씨가 ‘아가씨’ 말고 이름 불러달라고 하면 좋겠네요. 실은 용기 내서 지난 명절부터 말은 놨어요. “아가씨, 우리 이제 서로 안 지도 8년이니까 말 서로 편히 하자”고요.

도리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을 만큼의 변화를!

몰라 용기가 덜한, 덜 강심장인 여성들도 해방될 수 있도록, 호칭도 문화도 어서 바뀌길.

사회 이렇게 온라인으로만 얘기하니 아쉽네요. 다음엔 함께 만나 막걸리에 전이라도….

일동 오옷, 또 전이라니. 나는 전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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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가족 호칭 바꾸기 가능할까?
정부가 ‘성차별적 가족 호칭 개선 작업’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변화의 여정은 첫걸음 정도 뗀 단계다. 지난달 31일 여성가족부는 2020년까지 진행할 범정부 가족정책인 ‘제3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 가족 호칭 개선 작업을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가부 안에서도 아직 이 작업을 어떤 부서가 맡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지 결정된 것이 거의 없다. 이날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에 지난해 국립국어원의 실태조사 결과(응답자 65%가 남편 동생은 ‘도련님, 아가씨’, 아내 동생은 ‘처남, 처제’로 부르는 관행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응답)를 인용했을 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국어원은 1992년 <표준화법>과 2011년 <표준언어예절>을 펴내 ‘호칭 정리’ 작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기관이다. 지난해 국립국어원은 <표준언어예절>에서 제시한 내용이 현실에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회적 소통을 위한 언어 실태 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성차별 호칭에 따른 불편이 크다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호칭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국립국어원은 이 실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표준언어예절> 손질 방안을 심층 연구 중이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호칭어, 지칭어의 간소화 방안 등을 연구하고는 있으나 현재까지는 대안어 개발 작업까진 아니다”라고 말했다.
성차별 언어의 대체어를 내놓는 데 가장 적극적인 곳은 서울시다. 2014년부터 국어 사용 조례를 통해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는 특히 올해부터 ‘차별어 순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지난 4월과 7월 두차례에 걸쳐 ‘유모차’를 ‘유아차·아기차’로, ‘내조·외조’를 ‘배우자의 도움’으로, ‘녹색 어머니회’를 ‘녹색 학부모회’로, ‘미망인’은 ‘고 ○○○씨 부인’으로 순화해 고시(‘행정용어 순화어 고시’)했다.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 위원 15명은 국어학자 등 전문가 그룹과 방송·광고 제작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시는 다음달 8일 차별어 관련 학술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서울시 산하 서울시여성가족재단도 올해부터 온라인으로 ‘성평등 생활사전’을 만들어 발표하고 있다. 실태 조사와 시민 제안을 바탕으로 바꿔야 할 불평등 언어를 선정해 ‘성평등 언어사전 자문위원회’에서 대체어를 만들어 발표한다. 지난 17일 재단은 시민 117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83.2%가 명절에 성차별적 언어를 들었다며 남성 쪽 집안만 높이는 ‘시댁’ 대신 ‘시가’로 바꿔 부르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할머니’로 통일하자는 제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제안은 서울시에 전달돼 추후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에서 논의된다.
정부와 전문 기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각기 이루어지는 성차별 호칭 개선 작업은 앞으로 조정과 통합이 필요하다. 안지현 서울시 시민소통담당관실 주무관은 “차별어를 두고 회의를 벌일 때마다 전문가 사이에도 격론이 오갈 정도로 차별어 개선은 현실적으로 쉬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미영 국립국어연구원 공공언어과 연구사는 “호칭에 성불평등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건 가족 문화를 바꿔야 하는 부분이라 대안을 내놓기 쉽지 않다”며 “관계 부처와 기관이 협력해 전통과 현실을 아우르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칭 개선 작업의 의미와 효과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김하수 전 연세대 교수(국문학)은 “호칭이라는 게 한번 바뀌면 정신없이 바뀌기도 하는데 지금 논란이 되는 성차별적 가족 호칭의 경우 그 자체가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려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며 “남성 중심 문화 전반을 보지 않고 단순히 호칭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박철우 안양대 교수(국문학)은 “특정 호칭이 차별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정책 당국은 그 부분의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결국 상용화되고 안 되고는 실제 언어를 사용하는 국민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국어학자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쓰는 호칭을 두고 사실과 다르게 성차별적이라고 하고 국가가 언어를 통제하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개선 작업을 추진하는 동안에도 이러한 논란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