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경희대 미래문명원 임채원 교수

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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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는 인류 역사에서 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또한 한국이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부분에서도 성장한 나라라는 걸 보여주고요. 한국의 사례가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다면 좋겠습니다.”

지난 3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1700만 촛불시민’을 유엔(UN)인권상 후보로 추천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임 교수는 촛불시민이 23차례에 걸친 집회를 통해 세계인권선언 제20조 1항 ‘평화로운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와 제21조 제1항 ‘직접 정부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적 참정권’을 실천했다며, 지난 4월 유엔에 수상 추천서를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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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인권상은 인권 신장에 커다란 성취를 이룬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는 상으로, 1968년부터 5년마다 세계인권선언 채택 기념일인 12월10일 시상식이 열린다. 엘리노어 루스벨트 유엔 인권위원장 등 6명이 첫 수상한 뒤 마틴 루터 킹 목사,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국제사면위원회, 국제적십자사 등에게 모두 59개의 상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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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임 교수는 촛불집회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모으고 알리는 작업에 신경을 쓰고 있다. 오는 9월 유엔인권상 수상자 선정을 앞두고 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촛불시민의 활동이 ‘상을 받아 마땅함’을 피력하기 위해서다. 이런 뜻에 공감하는 학자와 정치인들이 모여 대한공공정책학회를 꾸렸고, 최근엔 회원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 학회 누리집(www.koreappa.org)에 촛불집회 관련 기록을 영어로 번역하고 정리한 아카이브를 만들었다. 8월말엔 ’글로벌평화포럼’을 열어 촛불시민의 성과를 다시 한 번 국제 학계에 알릴 준비도 하고 있다. 국내 연구자들이 촛불집회의 의미를 학술적으로 되짚어보고, 이를 전 세계에 공유하는 작업에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지난해 10월 ‘2017 촛불민주주의 등장과 새로운 거버넌스 패러다임’이라는 국제학술회의를 연 것과 같은 맥락이다.

4월 ‘촛불시민’ 유엔인권상 추천
두달 뒤 선정 앞두고 열정 홍보
공공정책학회 결성에 내달 포럼도
촛불 자료 번역해 학회 누리집에
“촛불 자신감, 갑질 고발과 미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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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이후’ 고민하다 행정학자 길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뜨겁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그는 인문학으로서의 신화학을 공부하려고 종교학과에 갔지만, 사회운동을 하며 자연스레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됐다. 대통령 직선제와 제도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87년 체제’ 이후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행정학자가 되었다.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 87년 체제를 경계하던 그가 대안으로 주목한 것은 시민의 정치 참여를 강조하는 시민적 공화주의다. 2008년 저서 <공화주의적 국정운영>의 원고를 마무리할 때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대규모 촛불이 타올랐다. “시민들이 폭발하는 시기가 올 거라고 저는 예상했어요. 다만 그게 언제일지를 몰랐던 거죠. 2008년 촛불집회가 일어났을 때, 그 순간이 온 건가 싶어 굉장히 흥분했는데 아쉽게도 한국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더라고요. 학수고대하던 움직임이 비로소 2016년 시작되었을 때 제가 얼마나 기뻤을지 상상이 되나요?” 그는 2016년 촛불집회 초기부터 광장에 나가 본인이 보고 경험한 것을 기록했다. 그 결과물이 지난해 나온 책 <시민적 공화주의>다.

그가 보기에 촛불집회는 ‘성공한 혁명’이다. “‘보수세력에서 중도세력으로 대통령이 바뀌었을 뿐인데 그게 무슨 혁명이냐’고 반론을 펴는 사람도 있어요. 과거의 혁명은 지배계급을 바꾸는 ‘수직적 변화’였지만 21세기의 혁명은 직접 민주주의가 확산하는 ‘수평적 변화’이죠. 그런 관점이면 촛불집회도 충분히 혁명이라 부를 수 있죠.”

‘87년 체제’를 이끌었던 386 세대가 이후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를 선도했듯 2016~2017년에 촛불집회를 경험한 ‘촛불 세대’가 미래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촛불 세대의 사고방식은 과거 세대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차도와 인도라는 공간의 경계를 허물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을 교체해냈잖아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정치를 일부 정치인에만 맡겨 두는 게 아니라, 에스엔에스(SNS)나 다양한 공론장을 통해 ‘내가 나를 직접 대변하는 것’으로 여기는 마음가짐이 커졌다고 봐요. 촛불 이후에 갑질 고발과 미투 운동이 급물살을 탄 것도 그 이유에서라고 봅니다.”

촛불집회 뒤 1년여가 흐른 지금, 그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동아시아 냉전체제를 해체했다는 점은 높게 삽니다. 아직 경제나 노동 문제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어요. 노동문제는 한국 사회의 오래된 난제인 만큼 이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전문가 몇몇이 모여 합의안을 만들어 냈지만, 촛불 이후에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을 겁니다. 시민들이 ‘내 문제는 내가 직접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었으니까요.”

글·사진 송진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연구원 jy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