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진행된 문어발식 ‘사법 농단’의 행태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재판 거래 의혹과 ‘반골 판사’ 뒷조사를 기본 축으로 민간법조인 사찰, 정권에 밉보인 판사 징계 의혹까지 뻗어가는 양상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는 12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2015년 법원행정처가 박정희 유신 시절 긴급조치 9호로 처벌받은 피해자 유족들에게 국가배상 판결을 내린 김아무개 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를 검토했다는 의혹 관련해, 당시 피해자들을 대리했던 이 의원에게 소송 경과를 물었다. 김 판사도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9월 김 판사는 1심 판결에서, 그해 3월 대법원이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을 정면 반박했다. 법관은 반드시 대법원 판결을 따라야 할 의무가 없지만, 행정처는 이를 ‘잘못된 재판’으로 규정했다. 또 김 판사를 징계하기 위해 사법정책연구원에 연구를 발주하는 방안까지 다각도로 검토했다. 당시는 양 대법원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오찬회동(8월6일) 직후라, 행정처가 박 전 대통령의 ‘심기 경호’를 위해 이 판결을 수습하려 한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행정처의 징계 검토 문건(2015년 9월22일)에는 ‘사건 신속 처리(패스트트랙) 개발’ 방안이 기재돼 있다. 1심에서 대법원 판례를 위반하는 판결이 나오면 2·3심을 ‘적시처리 필요 중요사건’으로 선정하는 등 최대한 빨리 진행해 논란 확산을 막는다는 것이다. 실제 문건 작성 20여일 뒤 대법원 예규가 6년 만에 개정됐다. 바뀐 예규에는 “사건배당 주관자(법원장 등)는 (재판장 등의) 요청이 없는 사건이라도 적시처리 필요 중요사건으로 선정할 수 있”다는 부분이 추가된다. 또 한번 적시처리 사건으로 선정된 경우 상급심에서도 적시처리사건으로 다시 선정해야 한다는 부분도 추가된다. ‘패스트트랙’ 예규 개정 뒤 1심에서 2년이 걸린 이 사건은, 불과 4개월만에 항소심에서 결론이 뒤집혔다. 예규 개정권을 가진 이는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었다.
앞서 검찰은 지난 6일 김동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도 비공개조사했다. 김 판사는 2014년 9월12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을 ‘지록위마 판결’이라고 법원 내부통신망을 통해 비판했다. 당시 그가 근무했던 수원지법은 9월26일 법관 품위 손상을 이유로 대법원에 징계를 청구했고, 김 부장판사는 그해 12월3일 2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법원 내부에선 이례적인 중징계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와 관련 검찰은 청와대와 법원행정처 사이에 ‘징계 거래’가 있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수원지법이 김 부장판사의 징계를 청구하기 나흘 전인 2014년 9월22일,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업무수첩에는 ‘비위 법관의 직무배제 방안 강구 필요(김동진 부장)’이라는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가 적혀 있다. 더구나 중징계 결정이 나오기 한 달여 전인 2014년 11월7일,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과 기획조정실은 ‘김동진 부장판사 징계 결정 후 대응 방안’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판결을 비판했다고 징계까지 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법원행정처는 중징계를 예상한 듯 대응 방안까지 미리 작성해둔 것이다. 이 문건에는 징계로 인한 ‘이상행동’을 막기 위해 “지원장, 동기 부장들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지나친 위로로 오히려 반감을 사지 않도록 주의”할 것까지 ‘깨알’ 지시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김 부장판사는 실제 징계 확정 뒤 동기 판사와 지원장 등의 ‘위로 방문’을 받았다고 한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