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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늦은밤 “이모”하며 드나들던 30년 ‘아현동포차’ 사라지나

등록 :2016-07-05 20:44수정 :2016-07-05 21:59

재개발로 들어선 아파트 주민들
“통학 불편·보기 안좋다” 민원에
마포구청, 자진퇴거 후 도로 확장

서울 마포구 아현동 인근의 포장마차 거리에서 25년째 ‘강타 이모집'을 운영하고 있는 전영순씨가 5일 낮, 저녁 손님을 맞기 위해 재료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인근의 포장마차 거리에서 25년째 ‘강타 이모집'을 운영하고 있는 전영순씨가 5일 낮, 저녁 손님을 맞기 위해 재료를 준비하고 있다.
“아현동, 동네 인심은 참 좋았지. 말만 서울이지 서로서로 이웃사촌이었어.”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 앞에서 2평 반짜리 포장마차 ‘강타 이모집’을 운영하는 전영순(67)씨가 창밖으로 긋는 비를 바라보며 추억에 잠긴 듯 입을 열었다. “여기서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몸져누운 남편의 치료비와 남은 빚을 갚으려면 장씨는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장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1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마포구청은 ‘6월30일까지 가게를 비워달라’는 자진퇴거 명령을 보내왔다. 3800가구 대단지 아파트 건설의 결과였다.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학생들의 통행 불편” “교육 환경 저해” “미관상 좋지 않다”는 내용의 민원을 제기하더니, 지난 1월에는 집회까지 열어 ‘포차촌’ 철거를 구청에 요구했다. 이미 지난 1일, 구청 직원 15명이 몰려와 영업 중이던 전씨 등의 포차 10곳의 문짝을 떼어가는 등 한 차례 강제철거(행정대집행) 시도도 있었다. 전씨는 30년 동안 장사해왔던 터전에서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는 신세다.

서울의 서민촌 중 하나였던 아현동 ‘굴레방 다리’ 인근에 포차가 들어서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중반부터다. 그때만 해도 지금의 아현초등학교 인근 거리는 쓰레기 적환장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현동에서 나고 자란 전씨는 1986년 굴레방로(현재 명칭) 거리에서 과일 장사를 시작했다. 떡볶이도 팔고 붕어빵도 팔다가 포차 장사가 잘되는 걸 보고 1991년 11월 업종을 바꿨다. “당시만 해도 구청에서 굴레방로 거리에서 장사를 하라고 권했어요. 그때는 포차가 두 줄로 들어섰는데, 길이 좁아지니까 구청에서 나서서 2평 반 크기로 정비를 했지.” 전씨가 당시를 회상했다. 전씨는 이곳에서 25년 동안 매일같이 오후 6시에 문을 열어 새벽 4시께까지 영업을 했다. 거리를 헤매던 사춘기 고등학생들을 위해 라면을 삶고 밥을 말아 먹였고, 아이엠에프(IMF) 경제 위기가 닥친 97년엔 사업에 실패한 이들을 손님으로 맞았다. 전씨는 “그 시절 단골들이 지금도 ‘엄마, 이모, 저 또 왔어요’라며 명절 때 과일상자를 들고 찾아온다”고 얘기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인근의 포장마차 거리에서 25년째 ‘강타 이모집'을 운영하고 있는 전영순씨가 5일 낮, ‘아현포차를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의 대자보에 “강타 이모 오래오래 보고 싶어요”라는 글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포스트잇에는 “사람이 있고 법이 있습니다”, “이웃을 지키지 못하는 도시는 우리를 지키지 못한다”,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추억팔이 상품에만 열광하지 말고 진짜 추억의 장소를 지킵시다”라는 내용의 메모가 적혀 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인근의 포장마차 거리에서 25년째 ‘강타 이모집'을 운영하고 있는 전영순씨가 5일 낮, ‘아현포차를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의 대자보에 “강타 이모 오래오래 보고 싶어요”라는 글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포스트잇에는 “사람이 있고 법이 있습니다”, “이웃을 지키지 못하는 도시는 우리를 지키지 못한다”,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추억팔이 상품에만 열광하지 말고 진짜 추억의 장소를 지킵시다”라는 내용의 메모가 적혀 있다.

2005년, 동네 전체를 들썩이게 했던 ‘아현동 3구역 재개발’ 바람은 전씨에겐 시련이 됐다. 3800가구 대단지 아파트가 완공되고 2014년 9월 입주가 시작됐다. ‘더 많은 손님이 들겠구나’ 은근히 기대도 했지만, 되돌아온 건 6월말까지 포차 문을 닫으라는 자진퇴거 명령 공문이었다. 전씨뿐만 아니라 굴레방로에 있던 17곳 포차와 채소·생선 등을 파는 노점상 30여곳의 처지도 다르지 않았다. 이미 동료 포차 7곳은 문을 닫고 나갔다.

아현초등학교에서 서울지하철 2호선 아현역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나란히 자리잡은 17곳의 포차는 도로 일부를 점용해 영업을 해온 ‘불법 시설물’이란 낙인이 찍혀 있다. 전씨는 “93년까지만 해도 도로사용료 명목으로 해마다 구청에 사용료를 냈다”며 “도로사용료가 이후 변상금으로 바뀐 것뿐”이라고 항변했다. “10년 전 재개발이 시작될 때만 해도 구청에서는 이렇다 할 말이 없었어요. 30년 넘게 용인해왔던 포차를 이제 와서 ‘불법’이라고 몰아붙이는 행정 원칙이 뭔지 이해가 안 돼요. 우리 상인들도 마포 지역 공동체 일원으로 30년 넘게 살아왔다고요.”

서울 마포구 아현동 인근의 포장마차 거리에서 25년째 ‘강타 이모집'을 운영하고 있는 전영순씨가 5일 낮, 저녁 손님을 맞기 위해 재료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인근의 포장마차 거리에서 25년째 ‘강타 이모집'을 운영하고 있는 전영순씨가 5일 낮, 저녁 손님을 맞기 위해 재료를 준비하고 있다.

전씨 등의 이런 호소에도 마포구청 쪽에선 “도로 확장 계획과 민원을 수렴해 포차촌 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인근 주민들의 지속적인 민원이 있었어요. 상인들에겐 상당 기간 공문 발송과 안내문을 통해 자진 폐업을 권고한 상태입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포차촌 일대에는 이날 손글씨로 쓴 대자보와 포스트잇 메모 수십개가 나붙었다. 그 가운데는 “강타 이모 오래오래 보고 싶어요”라고 적힌 전씨의 단골손님의 메시지도 있었다. 시름 가득했던 전씨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이 번졌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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