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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기고] 강남역에서 보내는 시그널

등록 :2016-05-26 19:34수정 :2016-05-27 09:28

-견고한 차별적 구조, 변화를 위한 외침
한 여자가 죽었다. 어쩌면 내가 갔었을, 앞으로도 가게 될 공간에서 한 남자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조현병이라는 알리바이로 각색된 그 남자의 살해 동기는 “평소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해서”였다고 한다. 무시당했다는 느낌, 연루되는 굴욕감, 언행을 통한 대응(reaction)은 적어도 권력관계가 동등하거나 대개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하는 행위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성차별 사회에서 여성을 일상 속에서 무시해온, 무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의 무의식적, 비인지적 행위다. “평소 여자들이 무시해서”라는 언설은 “평소 내가 무시해온” “여자들이 감히 나-남자를 무시”해서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한 표현은 우월적 지위의 상징이자 도구이며, 폭력적 대응을 동반하기에 문제적이다. 그렇기에 많은 여성들은 이 사건을 여성혐오에 기반한 살인(misogynist murder)이라고 이해한다. 그래야만 차별적 사회에서 무수히 ‘죽은 자, 죽을 자, 죽을 수 있는 자’와 비대칭적 위계관계에 있는 ‘죽인 자, 죽일 자, 죽일 수 있는 자’의 위치를 또렷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 가해자 남성은 우리 사회의 다층적 권력구조의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 젠더, 계층, 학벌, 지역 등으로 촘촘히 짜인 한국 사회 속에 억압구조의 하층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측면에서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특히 야만적인 신자유주의 시대에 새롭게 구성되는 공포와 불안은 개개인을 모두 무한경쟁의 장에 던지고, 소수의 살아남는 자만이 칭송을 받는다. 많은 이들은 실패자가 된다.

그들이 보내는 메시지는
개인에 대한 혐오·분노가 아니라
일상의 불편·불안 없는 자들이
누려온 특권들과 이를 지지하는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 등
견고한 차별적 구조에 대한 것이다

문제는 새롭게 등장하는 위험요소들이 기존의 성차별적 젠더 질서에서 구축되어온 전형적 남성성에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 지배와 통제, 배제와 대상화, 차별을 기반으로 한 남성성 구축 방식은 실은 남성이 지배하는 위계사회 구성의 핵심 기제였다. 그러나 기존의 남성성은 자본주의의 착취구조 속에서 더 이상 정당하거나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위협받은 자아-남성성은 스스로를 보존하기 위해 과잉 방어기제를 발동시키고, 이는 여성혐오, 인종혐오, 동성애혐오 등 기존의 이데올로기들과 결부되어 특정 하위 집단을 향한 극단적 폭력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질문을 봉쇄당한 개인들은 자신의 처지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고, 꾹꾹 눌렀던 분노를 상대적 약자(라고 여겨지는 자)에게 표출하는 것이다. 언론과 정부는 ‘환자’이거나 ‘악마’에 의한 예외적인 사건으로 축소시키고 단선적 진단과 대책들을 내놓기에 바쁘다. 피해자는 잊혀지며 사회적 불안은 다시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고 개인을 규율하고 관리하며 착취하는 공포정치는 더욱 힘을 얻는다.

놀랍게도 이렇게 제도화된 부정의로서의 차별적 행위들이 생산되고 연결되는 구조에 저항하며 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몸부림이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일어났다. 수많은 포스트잇에 또박또박 새겨진 언어들, 길거리에서 외치는 성폭력 경험들은 실은 여자인 내 몸 곳곳에 새겨진 고통스러운 기억을 상기하는 것이자 삶에 대한 해석의 과정이며, 어쩌면 미래에 닥칠 나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과정이기도 하다. 여자이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멸시당하고, 조롱당하고, 평가받고, 배제당하고, 차별받고, 성희롱의 대상이 되고, 강간당하고 죽어왔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나-그녀들의 경험이 소환되는 자리다.

언론과 정부가 병렬적이거나 배타적 관계가 성립할 수 없는 조현병과 여성혐오, 남성혐오와 여성혐오를 갈등적 구도로 프레이밍하는 과정에도 여성들은 제도화된 합리적 언어의 영역에서 알 수 없었던 부정의를 새롭게 명명하고, 대항적 하위공론장을 구성하며, 당연함·자연스러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에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그들이 보내는 메시지는 개인에 대한 혐오나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일상의 불편함 및 불안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자들이 공기처럼 누려왔던 특권들에 대한 것이며, 이를 지지하는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 등 견고한 차별적 구조에 대한 것이다. 소수의 특권을 받치는 위계적 구조를 조각내 해체하는 작업에 동참하며 강남역의 시그널을 이해할 때, 우리 사회는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키를 틀 것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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