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사무실이 입주해있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앞에 6일 오전 취재진이 이 후보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사무실이 입주해있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앞에 6일 오전 취재진이 이 후보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기자들과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언론 길들이기’ 발언을 했다는 녹취가 공개됐습니다.

발언 내용은 참담합니다. “언론인들, 내가 대학 총장도 만들어주고…, 40년 된 인연으로 이렇게 삽니다. 언론인 대 공직자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인간적으로 친하게 되니까…, 내 친구도 대학 만든 놈들 있으니까 교수도 만들어주고 총장도 만들어주고”라며 자신과 친하게 지내면 ‘한자리’를 보장해준다는 듯한 발언을 노골적으로 했습니다.

“(기자) 여러분들도 한 번 보지도 못한 친척들 때문에 검경에 붙잡혀 가서, 당신들 말이야, ‘시골에 있는 친척이 (접대를 받아) 밥 먹었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합니까’(라고) 항변을 해봐. 당해봐. 내가 이번에 (김영란법을) 통과시켜버려야겠어. 이제 안 막아줘. 이것(언론)들 웃기는 놈들 아니야…, 지들 아마 검경에 불려다니면 막 소리지를 거야”라며 ‘김영란법’을 두고 기자들을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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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자는 1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그 이후(녹취록이 공개된 이후)로 수일째 수면을 못해 정신이 혼미하다”고 말했는데요. 녹취가 추가로 공개된 이후 정작 정신이 혼미해진 것은 기자들이었습니다. 기자로서 가장 큰 의문은 지난달 27일 이 후보자와 함께 김치찌개를 먹었다는 <경향신문>, <문화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기자들과 그들이 소속된 신문이 이 발언들을 보도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우선 사실 관계를 파악해봤습니다. 기자들은 이날 서울 통의동의 이완구 후보자 사무실 근처에서 ’뻗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뻗치기’는 별다른 약속없이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 사무실이나 집 근처에서 무한 대기하는 취재를 말합니다. 추운 날씨에 뻗치기를 하는 기자들을 본 이 후보자가 기자들에게 식사를 제안해서 김치찌개를 먹게 됐습니다. 기자 생활 1년차인 현장 막내급 기자부터 8년차 정도의 중견급 기자가 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정치부 국회 기자들은 막내급 기자들을 ’말진’, 중견급 기자들을 ’잡진’이라고 부릅니다. 4명 가운데 <경향신문>, <문화일보>, <중앙일보> 기자는 새누리당 출입 기자이고, <한국일보>는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 출입기자였습니다. <경향신문> 기자를 제외하곤 모두 이 발언들을 녹음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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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언론사도 보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야당을 출입하는 <한국일보> 기자가 이 문제적 발언이 담긴 녹음 파일을 새정치민주연합에 넘겼고, 정작 녹취를 보도한 언론사는 KBS였습니다. 그러자 <한국일보>는 10일치 1면에 뒤늦게 ‘알려드립니다’(▶ 바로 가기)를 써서 “기사화 여부를 심각하게 검토했지만, 당시 그가 차남 병역면제 의혹에 대해 매우 흥분된 상태였고 비공식석상에서 나온 즉흥적 발언이었다고 판단해 보도를 보류했다”고 밝혔습니다. <경향신문> 국회팀 여당 반장도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녹취를 하지 않은 상태라 맥락상 그런 식(언론통제)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걸 녹취록이 공개돼서야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가기 : 이완구와 밥먹은 기자들, 기사 안 쓴 이유 물어보니)

이런 해명들을 봐도 의문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이 해명을 중심으로 남는 의문점들을 몇 가지로 추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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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선 <한국일보>가 밝힌 것처럼, 이 후보자가 ‘매우 흥분된 상태’였는지 여부는 기사 가치 판단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기자는 취재원의 감정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감정은 추후에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소리의 높낮이나 얼굴 표정 등으로 유추할 수 있지만, 그것을 토대로 감정의 실체를 파악하기는 난망한 일입니다. 그러니 기자는 취재원의 감정 상태가 아니라 말이라는 팩트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합니다. 감정 상태는 팩트를 보도한 뒤 그가 “흥분한 상태였다” 정도로 묘사해주면 됩니다. 독자들이 어떤 상태에서 그 발언이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말이죠. 4개의 신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2. ‘즉흥적 발언’이라는 사실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이 후보자의 말이 ‘즉흥적’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인으로서 사전에 철저한 정치적 계획에 따라 의도적으로 한 말이었는지 여부를 기자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저 여러 가지 정황을 감안해 유추할 수 있을 뿐입니다. 추정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니 기자라면 ‘즉흥적’이라는 관형어보다 ‘발언’에 더 집중을 했어야 합니다. 보도에서 이 발언이 어떤 상황에서 나온 것인지 보충 설명을 해주면 됩니다. 4개의 신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3. ‘비공식석상’이라는 말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취재원과 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공적인 관계입니다. 기자는 개인의 자격으로 취재원을 만나지 않습니다. 언론사를 대표해 만납니다. 특히 이 후보자는 이 발언을 ‘비보도를 전제’해서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취재원과 기자가 만나 밥을 먹는 자리가 취재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은 기자들의 상식입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사실 잠자는 시간 외엔 대부분의 시간이 일하는 시간입니다. 발언을 녹음하거나 녹음이 어려울 경우 발언을 테이블 아래나 화장실에서 수첩에 복기하기도 합니다. 정치인들 역시 기자들의 그런 상식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4. 이 후보자의 발언이 ‘언론 길들이기’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걸 녹취록이 공개되어서야 알았다”면, <경향신문> 기자는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의무는 보고입니다. 현장 상황에 따라 자신이 보도 가치를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의구심이 들면 보고를 해서 데스크와 함께 보도 가치를 판단해야 합니다. 심지어 저런 폭력적인 발언이 나왔음에도 보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이유를 짐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문화일보> 기자는 새누리당 출입 기자입니다. 평소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자주 대화를 나눴을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이 후보자는 평소에도 저런 과시가 섞인 과격한 말투로 기자들을 겁박하듯 말을 해온 것 아닐까요. 그러니 새누리당 출입 기자들에게 그 말투는 일상 아니었을까요. 물론 그렇다 해도 그 말투의 문제점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 심지어 국무총리 후보자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판단의 근거에 포함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기자들의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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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어떤 분은 ‘취재원(이 후보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녹음하는 행위’에 대한 취재 윤리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우선 법률을 살펴보면,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통신 및 대화 비밀의 보호’ 1항에서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타인간의 대화’이기 때문에 자신이 이 대화의 당사자인 경우 녹음 행위는 이 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사자의 녹음은 합법입니다.

취재를 할 때 취재원에게 ‘이 발언을 녹음할 예정’이라고 사전에 통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통보가 의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취재원의 발언을 녹음하는 행위는 △그 발언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그 발언의 정확성에 대해 이의가 제기될 경우 이를 증빙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녹음은 취재원의 발언이 존재한 뒤라야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문제적 발언이 없었다면 녹음도 문제가 될 일이 없다는 말이 되겠지요.

게다가 이완구 후보자는 3선 국회의원이고 자유민주연합 대변인을 역임했으며 충남 도지사까지 역임한 인물입니다. 이런 분이 자신의 발언을 기자들이 녹음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발언했다고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모두 스마트폰으로 대화를 녹음할 수 있는 시대에 말이지요. 부주의한 상태에서 발언이 나왔다 해도, 책임은 녹음한 기자가 아니라 발언한 이 후보자가 져야 합니다.

6. 이번 녹음은 ’독수독과’ 이론의 적용 범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장우 새누리당 의원은 10일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수사에 있어서도 독수독과 이론이 있고, 언론도 취재 윤리라는 게 있다”며 “비밀리에 녹취하고 비밀음원을 야당 의원실에 넘기고 공영방송이 9시 메인 뉴스 시간에 보도한 언론의 명백한 취재윤리 위반”이라고 말했습니다. 독수독과 이론이란, ‘독이 있는 나무의 열매도 독이 있다’는 뜻으로, 고문이나 불법 도청 등 위법한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법률 이론입니다.

하지만 이번 취재는 5번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당사자가 직접 대화에서 나온 발언을 녹음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 도·감청에 해당하지도 않고, 기자들이 이 후보자를 고문해서 발언을 유도했을리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의원의 말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발언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보도 누락 사태는 혹시 기자들의 관성이 빚어낸 일종의 결과적 ‘카르텔’이 가져온 결과 아닐까요? 만약 이 발언을 보도할 경우 앞으로 취재원과의 관계에서 어떤 불이익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지레 자기 검열을 한 것은 아닐까요? 이 ‘카르텔’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저는 8개월 전 지금은 종간된 월간 사람 매거진 <나·들>에 실렸던 안영춘 기자의 글 하나를 소개하려 합니다. 안 기자의 20년 기자 생활이 오롯이 묻어나 있는 글에서 기자들의 카르텔이 빚어낸 촌극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안영춘 기자의 기사 바로가기 ▶ ‘계란 라면’에 숨은 언론 보도의 카르텔

이 글에서 저는 한 문장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동대문시장의 패션몰에서 정·관계 실력자들과 결탁한 분양 사기와 탈세에 말려든 상인 피해자들에 대해 보도한 안영춘 기자가 다른 기자들에게 왜 이 사건에 무관심한 이유를 묻자 기자들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건 어차피 개인적인 불행들이잖아. 동대문시장이 잘되는 게 모두에게 이익 아니야?”

안영춘 기자는 이 답을 두고 ‘그때나 지금이나 천칭 저울에 함께 올려질 수 없는 것들이 계속해서 올려지고 있다’고 썼습니다.

2015년의 기자들도 함께 올려질 수 없는 것들을 계속해서 천칭 저울에 올려 보도 가치를 멋대로 재단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