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밤 9시49분, 지체장애(뇌병변) 1급 장애인인 김아무개(36)씨가 원효대교 남단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자유롭게 쓸 수 없던 김씨는 이날 밤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싣고, 서울 용산구 용문동 자신의 집을 나섰다. 유서는 남기지 않았다. 현장에는 전동 휠체어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한겨레> 취재진이 21일 찾은 김씨의 방은 2평(6.6㎡) 남짓이었다. 어른 3명이 누우면 꽉 찰 듯했다. 책상 위에는 먹다 남은 귤이 놓여 있었다. 주인 잃은 옷들은 빨래 건조대에 널려 있고, 이부자리는 곱게 정돈돼 있었다. 빈방은 김씨의 삶처럼 휑하고 쓸쓸했다. 어머니는 김씨가 태어난 지 10개월 만에 집을 나갔고, 2007년에는 아버지마저 여의었다. 그 뒤로는 오롯이 혼자였다. 스무살 가까이 차이 나는 사촌 누나가 한달에 한번씩 들러 밑반찬을 챙겨준 것이 전부였다.
김씨가 의지할 이는 이웃 할머니들뿐이었다. 김씨의 옆집에서 각각 혼자 사는 권아무개(73)씨와 길아무개(83)씨가 가끔씩 김씨의 손과 발이 돼 줬다. 혼자 옷조차 입을 수 없던 김씨는 수시로 할머니를 찾았다. “옷을 입을 때면 ‘할머니’ 하고 큰 소리로 불렀지. 그러면 우리가 달려가서 옷을 입혀줬어. 어느 날은 부르는 목소리가 유난히 커서 달려가 보니 쥐가 돌아다니고 있더라고.” 권씨가 쓸쓸히 말했다.
김씨가 살아온 집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0만원짜리다. 보증금과 생활비는 아버지의 유산으로 써온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10여년 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한 장애인은 “김씨의 가정사는 불행했다. 성인이 되고 아버지를 잃은 뒤 유산으로 받은 돈으로 몸 누일 방 한칸을 겨우 마련했다”고 말했다.
일을 하지 않았던 탓에 김씨가 경제적으로 힘들어한 정황도 눈에 띈다. 용문동 주민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노종언 사회복지사는 “김씨가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이력이 있다. 아버지께 물려받은 재산 때문에 대상자에서 제외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가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은 활동보조서비스가 전부였다.
그의 죽음을 설명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씨의 사촌 누이와 지인들을 조사한 경찰도 “자살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의 친구라고 밝힌 장애인은 “만나면 웃고 떠드는 사이지만, 그 친구가 그렇게 간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의 활동보조인으로 일해온 오아무개(70)씨도 “20일 저녁 김씨와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3시간 전만 해도 설 얘기 했는데, 그런 일을 벌일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외로움이 원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 많은 장애인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 정부가 장애인 복지 정책을 지금처럼 축소한다면 김씨와 같은 이들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립무원의 세상에서 김씨는 그렇게 외로이 떠났다. 주검은 22일 밤 영등포구 여의도 성모병원에 안치됐다. 사망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빈소는 차려지지 않았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