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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증오하다

등록 :2013-11-22 19:13수정 :2013-11-24 15:31

1992년 4월4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김보은, 김진관씨에게 징역형이 결정됐다. ‘김보은 김진관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위원들과 대학생들은 두 사람의 무죄를 주장하며 호송차량을 막고 연좌농성을 벌였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1992년 4월4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김보은, 김진관씨에게 징역형이 결정됐다. ‘김보은 김진관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위원들과 대학생들은 두 사람의 무죄를 주장하며 호송차량을 막고 연좌농성을 벌였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토요판] 김형민의 ‘응답하라 1990’
⑧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하)
학교 외곽 어두운 길을 걷던 여자 후배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행히 길 가던 학생에게 구출됐지만 심하게 맞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가족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경찰에 신고도 미루고 있는데 그 가해자의 가족들이 병원에 와서 ‘단순 폭행’에 대한 합의만을 강요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에 분기탱천한 친구들과 함께 병원으로 출동했지만 오히려 가해자 가족들은 배짱으로 나왔다. 우발적인 폭행일 뿐이라 계속 우기며 돈 봉투를 들고 와서 빨리 합의하자고 을렀다. 심지어 어머니라는 사람은 “여자가 먼저 꼬리를 친 거 아니냐”는 식의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피해자가 원한 것은 딱 하나였다. “범행의 인정과 (자신을 괴롭힌) 가족들의 사과.”

기세등등하게 병원에 들이닥쳤던 우리였건만 어느새 우리는 가해자와 그 가족에게 매달려 ‘설득’을 하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그때처럼 간절하게 누군가에게 ‘호소’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상황이 분명하지 않으냐, 가족 중에도 따님이 계실 텐데 이런 일을 겪었다면 어쩌시겠느냐, 더구나 지금 당신들이 와서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느냐. (가해자를 향해) 너도 남자라면 깨끗이 인정하고 끝내라.

조용히 해결하려던 사건이 학교에 퍼지고…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왜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바보들!’이라고 혀를 찰 것이다. 지금도 이런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은데, 그때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90년대 초반, 강제로 키스를 시도하는 성추행범의 혀를 깨문 주부가 ‘과잉방어’로 유죄 판결을 받던 시절이었다. 동네 아저씨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하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수십년 동안 그 한을 품고 살다가 살인으로 끝을 맺은 사건이 귓전을 때리던 무렵이었다. 그러니 “됐고! 경찰에 넘겨!”가 결코 현명한 해결책이 못 된다는 생각이 피해자나 그 주변에 서 있던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꼬리를 쳤다는 말을 할 수 있어요?”라고 하자 “나이 든 어머니가 속없이 한 말을 트집 잡는다”고 맞받았다. 오히려 “명문대 학생이 자기 학교 안에서 성폭행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어이없는 발뺌을 했다. 급기야 우리가 격앙된 반응을 보이자, “그럼 법정에서 보자!”고 가해자 가족이 박차고 일어섰다. 그때 우리는 지극히 무력했다. 침대에 기대어 퀭한 눈에 주먹만 꽉 쥐고 있던 후배 앞에서 우리는 정말 무력했다.

1992년 1월 존속살인이 벌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해온 딸 김보은과
남자친구 김진관이 범인이었다

“의붓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보은이를 살린 겁니다”
‘살인은 잘못이다’라는 주장에
‘정당방위’라고 맞선 학생들은
법원 앞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때 피해자 후배가 말을 전해 왔다.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한 학년 아래였다)와 얘기 좀 할게요. 걔만 들어오게 해 주세요.” 지금껏 실랑이를 벌이던 가해자 가족들과 우리는 밖에서 대기했고 고개만 숙이고 있던 가해자 남학생이 병실로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초조하게 기다리던 문이 열리고 들려온 소식은 너무도 반갑지만 반가울 수 없는 자백이었다. “제가 성폭행 시도한 게 맞습니다.” 그때까지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던 가해자가 마침내 자신의 행동을 인정한 것이다. 그제야 가족들의 태도가 바뀌었고 후배는 그들 모두에게서 ‘사과’를 받아낼 수 있었다. 안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를 물어볼 경황은 없었다. 그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새삼스레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우고 있었을 뿐.

“형들 고마워요.”

“고맙긴 뭐가 고맙냐. 우리가 한 게 없는데.” 겸양이 아니라 아무 소득 없이 그저 입씨름만 했을 뿐이었던 우리가 받을 인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배가 말을 이었다.

“여기 와서 서 있어 준 것만 해도 고맙죠. 그것만 해도 눈물 나게 고맙죠.”

창졸간에 닥친 친구의 불행 앞에 어찌할 바를 몰랐고 가족들에게 알릴 수도 경찰에 호소할 수도 없었던, 위압적으로 들이대는 가해자 가족들을 홀로 상대하며 발을 동동 굴렀던 후배의 목소리도 젖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일단락이 된 줄 알았는데 사태는 이상하게 번졌다. 조용히 해결하려던 사건의 전모가 학교 전체에 퍼져나간 것이다. 가해자의 인적 사항이야 말할 것이 없지만 피해자의 과와 학년, 이름까지도 스스럼없이 알려졌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 나는 가해자를 매도하는 와중에 엉뚱하게도 피해자의 과와 학번까지 입에 올리는 교수님을 제지해야 했거니와, 길 가면서는 “걔가 그렇게 이쁘냐?”고 키득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입을 벌려야 했다. 당시에는 그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 ‘2차 가해’였다. 이후 피해자를 제대로 만난 적이 없었기에 그것들이 그녀의 이후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른다. 누군가 그녀 곁에 서서 그녀의 언덕이 되고 쉼터로 있었기를 바랐을 뿐이다.

1990년대 초반은 이제껏 여성들에게 드리워져 있던 억압과 폭력의 가림막이 걷히고 그 흉물스러운 속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1992년 1월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물론 그 사건의 중심에는 한 여성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 옆에 한 남성이 있었다. 무용학도였던 한 여학생과 그녀와 사귀던 체육대학생이 살인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존속’ 살인이었다. 피해자는 여학생의 아버지, 정확히 말하면 여학생이 일곱 살 때 그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만난 의붓아버지였다.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편안했습니다”

두 젊은이는 의붓아버지를 죽인 뒤 강도 살인으로 위장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이 보기에 좀 수상쩍은 구석이 있었다. 피해자의 방에 이불이 하나였고, 그 방에서 딸과 아버지가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성인이 다 된 딸과 아버지가 한 이불 속에서 자고 있었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한 형사 하나가 딸에게 넌지시 아버지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넘겨짚어 보았다. 그러자 딸은 울부짖었다. ‘아니야! 아니야!’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확실히 감지한 경찰은 그녀를 집중 추궁했고 결국 범행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 딸 김보은과 남자친구 김진관, (이 시기는 실명 보호가 되던 시절이 아니었다. 이미 공식 문서에도 두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바, 지상에 밝히는 점 양지하시기 바란다.) 두 명의 ‘존속살해범’은 1992년 1월19일 구속된다.

내막은 이랬다. 여학생은 어렸을 때부터 계부에게 성폭행을 당해 왔다. 지방검찰청 직원이던 계부는 그 알량한 권력을 빌미로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면 죽는다고 세뇌하면서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하던 그 시간 내내 여학생을 유린했다. 그뿐 아니라 말로 표현조차 하기 힘든 행위를 자신의 아내와 의붓딸에게 강요했다. 대학생이 된 뒤에도 이 ‘아버지’는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했고 틈만 나면 집으로 내려오도록 강요했다. 김보은의 삶은 피폐 그 자체였다. 남자친구를 사귀어 봐도 오래가지 못했다. 남자가 두렵기도 했을 것이고 그 아픔을 이해해 줄 남자가 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후일 함께 아버지를 죽인 남학생 김진관과 사귀게 된 것이다. 자신의 사랑조차 두려웠던 여학생은 남학생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며 헤어지자고 한다. 그때 김진관 역시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솟구친 피가 제자리로 복귀한 뒤 그는 곰곰 생각했을 것이다. 과연 그녀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남학생은 용기를 낸다.

여자친구의 아버지 같지 않은 아버지를 찾아 설득하려 한 것이다. 돌아온 것은 수갑을 휘두르며 내지르는 협박이었다. 명색 딸에게 “이년이 바람이 났다. 가족 전부 죽여버리겠다”는 폭언을 서슴지 않는 ‘검찰청’ 직원의 서슬 앞에서 연인들은 한없이 무력했다. 여기서 남학생은 물러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널 위해 기도할게.” 그 정도로 자기 갈 길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학생은 또 한 번 그걸 극단적으로 거부했다. 후일 재판정에서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어머니 다음으로 사랑하는 보은이가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을 알고도 나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느낄 때마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나는 보은이의 의붓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보은이를 살린 겁니다.”

여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구속된 후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지금까지 살아온 20년보다 훨씬 편안했습니다. 더 이상 밤새도록 짐승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울먹였다. “저 때문에 진관이가…… 제가 벌을 받을 테니 진관이를 선처해 주세요.”

이 사건 앞에서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고, 어떤 이들은 충주로 달려왔다. 그들은 대부분 젊은 여대생들이었다. “왜 진작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느냐” 따위의 사치스러운 질문의 무의미함을 아는 사람들, “그래도 살인은 잘못이다”라는 고담준론에 “이건 정당방위다!”라고 항변하고 싶었던 사람들이었다. 충주지법 앞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학생들로 득시글거렸다. 여학생들은 꽃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불운한 살인자가 된 둘에게 전해 주려던 꽃이었다.

1994년에야 제정된 ‘성폭력 범죄 처벌법’

재판 후 김보은, 김진관을 태운 버스는 출발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차를 둘러싸 버린 것이다. 학생들은 버스에 기대어 울면서 이름을 불렀다. 보은아 진관아. 닭장차 틈 사이로 꽃을 디밀어 봤지만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위협적인 시동 소리는 학생들의 귀를 때렸다.

미동도 않고 버틴 학생들과 당국 간에 협상이 이루어져 창살 너머로나마 둘의 얼굴을 보게 해 준 뒤 농성을 풀기로 했다. 그때 한 노래가 학생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그 노래는 일종의 노동가요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노래나 그 자리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는 아니었다. 군데군데 박힌 가사의 조각조각이 부르는 이와 듣는 이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어두웠던 땅 지나 새벽이 얼어붙은 땅 녹아 새싹이 케케묵은 낡은 틀 싹둑 잘라버리고 딸들아 일어나라 깨어라. 고귀한 모성보호 다 빼앗겨 버리고.” 그다음 대목에서 노래는 커다란 울부짖음으로 변했다. “참아왔던 그 시절 몇몇 해.” 버스가 떠나는 와중에도 여학생들은 버스를 따라가며 노래를 부르고 둘의 이름을 불렀다. 그로부터 한참 후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여학생 중 하나와 술자리에서 우연찮게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10년이 지난 뒤에도 상기된 어조로 말했다.

“그때는 내가 보은이가 된 것같이 미치겠더라고요. 진관이는 내 애인 같았고요.”

어려서부터 불행했던 한 여성과 그 여성의 곁에 서 있고자 했다가 나락에 빠진 한 남성의 이야기는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켰고 바꾸었고 행동에 나서게 했다. 22명의 변호사가 무료 변론에 나섰고 여성단체들도 집결해서 불행한 두 젊은이의 무죄를 부르짖었다. 그들에게 징역 7년, 4년 형이 내려진 1심이 끝난 직후였던 1992년 가을, 그때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꽤 끗발이 남아 있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주최한 한 집회에서 뜻밖의 인물이 무대에 오른다.

중년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김보은의 어머니와 김진관의 아버지였다. 옥중에 있는 아들과 딸을 대신하여 전대협이 제정한 1회 인권상을 받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대신한 수상 소감을 밝히는 동안 어머니는 딸 생각에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도록…….”

90년대 초반을 장식했던 일련의 여성잔혹사를 목도한 한국 사회는 그 아픔 속에 하나의 법을 만들게 된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1994년 1월 제정돼 그 후 몇 차례 개정되어 오늘에 이른 이 법은 가족 또는 개인 간의 일탈 문제로 치부돼 온 성범죄 문제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하고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고 그 피해자를 보호하며,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그 절차에 관한 특례를 규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는 짐승을 죽였다”며 어릴 적의 가해자에게 칼을 겨눴던 김부남 여인이 피해를 당한 지 24년 뒤, 김보은 학생이 아버지에게 능욕당하기 시작한 지 14년째 되는 해였다. 이 법이 진즉에 있었더라면 나 역시 후배의 병상 앞에서 그렇게 어찌할 바를 모르지도 않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문득 정수리를 때리는 질문. 그 법이 있다고 우리가 지금 달려갈 곳이 없는가? 누군가 그 곁에 있어 줘야 할 사람들이 줄어들었는가? 그들은 제대로 도움을 받고 나쁜 놈들은 법대로 처벌받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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