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선거법 위반·직권남용 첫 공판
“문재인·박근혜 관련글만 확인”
변호인 요청에 분석범위 한정
김씨, 파일삭제뒤 국정원 보고
“문재인·박근혜 관련글만 확인”
변호인 요청에 분석범위 한정
김씨, 파일삭제뒤 국정원 보고
김용판(55)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때 국정원 직원 김하영(29)씨의 요청에 따라 디지털 증거 분석 결과를 축소·왜곡했다고 검찰이 재판에서 밝혔다. 이는 경찰이 사실상 국정원 쪽의 요구에 수사결과를 짜맞춘 정황이어서 주목된다.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 심리로 열린 김 전 청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및 직권남용 등 혐의 첫 공판에서 검찰은 “지난해 12월13일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팀이 국정원 직원 김씨한테서 제출받은 데스크톱 컴퓨터와 노트북의 디지털 증거 분석을 서울경찰청에 의뢰하는 공문을 보내 ‘혐의사실과 관련된 삭제 파일 및 인터넷 히스토리 복구, 인터넷 접속 관련 자료, 인터넷 계정 및 닉네임 자료 일체를 요청한다’고 명시했다”고 밝혔다.
이후 서울경찰청 분석팀은 김씨의 노트북 하드디스크에서 문서파일을 발견해 30여개의 아이디와 닉네임을 찾았고, 이를 통해 김씨가 인터넷에 접속해 게시글·댓글 작성과 찬반 활동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김 전 청장은 12월15일 간부들과 회의를 거쳐, 김씨의 변호인이 컴퓨터를 제출할 때 의견란에 “지난 10월 이후 3개월간 문재인·박근혜 후보 비방·지지 글에 대해서만 확인”해 달라고 기재한 것을 구실로 분석 범위를 한정했다. 검찰은 “그 결과 문서파일의 아이디와 닉네임은 게시글이 아니라는 이유로, (‘오늘의 유머’ 누리집) 찬반 클릭도 게시글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선 후보 비방 글은 김씨가 쓴 글인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인터넷은 노트북에 저장된 게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했다. 김씨의 의견은 국가기밀과 사생활 관련 열람을 자제해 달라는 취지였는데, 김 전 청장이 이를 분석 범위를 제한하는 허구논리로 악용했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은 12월16일 밤 11시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게시글이나 댓글을 게재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중간 수사결과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청장의 변호인은 “김씨 컴퓨터를 임의제출하면서 내건 조건이었기 때문에 그 이상 분석하는 것은 위법한 증거수집이 된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밤 11시 경찰 발표 뒤 국정원이 11분 뒤에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고 야당을 정면공격하는 보도자료를 냈는데, 11분이면 국정원 내부 보고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여러 시사점이 크다”고 말했다. 경찰과 국정원이 보도자료 내용을 사전에 조율했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이날 재판 과정에서 김씨가 12월13일 노트북을 제출하기 전 이틀간 자신의 오피스텔에 머물면서 파일 187개를 복구가 불가능하게 삭제한 뒤 그 사실을 국정원 본부에 보고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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