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가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성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전자시스템을 도입해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고려대는 10일 학교 누리집 공지사항 게시판에 “2013학년도 1학기부터 학부모님께서 직접 인터넷으로 상시 자녀 학생의 성적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성적표는 우편으로 발송되지 않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학부모 성적 열람 시스템’ 신설을 공지했다. 학교 쪽은 “학부모 성적 열람 시스템 신설은 신속한 성적 확인 및 주소 변경 등으로 인한 성적표 분실에 따른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은 이 시스템에서 전체 학기 성적을 조회할 수 있다.

고려대생들은 ‘황당하고 몰상식한 행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학교 경영대에 재학중인 ㅇ(20)씨는 “대학생이면 이미 성인으로, 한 사회 구성원이다. 학부모에게 성적표를 보내는 것으로 모자라 직접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건 상식 밖”이라고 비판했다. ㅅ(22)씨는 “안 그래도 부모들이 교수에게 전화를 거는 등 대학가에도 치맛바람 문제가 심각한 걸로 아는데 대학이 이를 부추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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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노출 우려도 나온다. 해당 시스템에서는 학생의 이름, 학번, 주민번호 뒷자리만 입력하면 누구나 전체 성적을 조회할 수 있다. 문과대 재학생 ㅂ(21)씨는 “인증 절차도 따로 없이 아무나 성적을 열람할 수 있도록 돼 있어 깜짝 놀랐다. 학교 쪽에 개인정보 보안 관념이 없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논란이 일자 학교 쪽은 이날 예정된 시스템 개시를 15일로 미뤘다. 학교 쪽은 “보안 문제와 관련해 학부모 연락처 정보를 추가로 입력하도록 강화했다. 성적 열람은 교육기본법에서 학부모의 권리로 정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