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사회일반

정치강연 ‘차벽 봉쇄’ …‘유신 학칙’으로 학생 옭아매는 대학

등록 :2013-04-11 20:38수정 :2013-04-12 09:38

5일 오후 서울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대의 정문 구실을 하는 행정동 건물 앞에서 버스들이 길을 막고 서 있다. 총학생회가 열려던 ‘진보 2013 강연회’를 덕성여대가 불허하고 외부인 출입을 막으려고 학교를 ‘원천봉쇄’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제공
5일 오후 서울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대의 정문 구실을 하는 행정동 건물 앞에서 버스들이 길을 막고 서 있다. 총학생회가 열려던 ‘진보 2013 강연회’를 덕성여대가 불허하고 외부인 출입을 막으려고 학교를 ‘원천봉쇄’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제공
[뉴스쏙]기본권 제한하는 시대착오적 학칙

5일 오후 서울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대는 ‘원천봉쇄’됐다. 교문 앞에 버스를 동원한 ‘차벽’이 등장했고, 출입문엔 쇠사슬이 감겼다. 교직원 100여명은 정문과 후문을 지키며 ‘외부인’ 출입을 막는 경비원이 됐다. 1980년대의 대학가를 떠올리게 하는 살풍경이었다. 화염병도 돌멩이도 사라진 대학 교정에 원천봉쇄가 부활한 건 왜일까?

덕성여대 “정치활동 안돼”
차벽 동원 총학 초청강연 막아
서강대 ‘김제동 콘서트’ 불허 때도
‘교육 위배 정치활동’ 근거로

대학 74%, 집회 사전승인제 둬
헌법상 ‘집회결사의 자유’ 제한
재학중 결혼금지·과도한 화장 징계 등
사생활 침해 조항도 수두룩

덕성여대에 난데없이 ‘차벽’이 등장한 건 총학생회가 열려던 ‘진보 2013 강연회’ 때문이었다. 학교 쪽은 정치적 행사라는 이유로 행사를 막고 나섰다. 강연자들은 대학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강연회는 이날 저녁 학교 근처 카페에서 열렸고, 교직원들은 밤새 돌아가며 학교를 지켰다.

학교 쪽의 조처는 학칙상으로는 정당한 행위다. 이 학교 학칙 62조는 ‘학생은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의 사회단체에 가입하거나 기타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신시대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는 몇몇 학생들의 외침은 차벽을 넘지 못했다.

정치적 성격을 띠었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교내 행사를 불허하는 학칙은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어긋난다. 학생들이 ‘유신시대’를 거론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런 학칙들이 뜻밖에 지금도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서강대의 학칙 86조에도 ‘교육 목적에 위배되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교육 목적에 위배되는’이라는 기준은 모호하다. 서강대 역시 지난해 9월 ‘희망세상만들기 청춘본부’가 교내에서 열려고 했던 행사를 불허했다. “교육 목적에 위배되는 정치활동”이라고 서강대가 규정한 이 행사는 ‘김제동 콘서트’였다.

국민대(학생준칙 13조)와 삼육대(학칙 50조)는 학칙으로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가입하거나 활동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가천대(학생상벌규정 15조)와 부산외대(학생상벌규정 10조4항) 학칙도 비슷하다. 경기대는 학생준칙(12조5항)에서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조직을 구성하거나 선동하는 학생”은 퇴학의 대상으로 적시하고 있다. 포항공대는 학생단체의 구성원과 조직도, 활동계획을 모두 학교에 신고하도록 규정(학생활동규정 5조)하고 있다. 이 규정을 어기면 학생처장은 학생단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학칙들은 박정희 유신정권 때인 1975년 ‘정권보위’를 위해 전국 대학에 도입한 학도호국단의 학칙과 표현·내용이 거의 똑같다. 학도호국단은 학칙으로 ‘학생은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의 사회단체에 가입하거나 또는 기타 정치활동을 할 수 없으며, 시위, 등교 거부, 마이크 사용 등으로 학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학도호국단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했다. ‘집회 개최 시 총장 등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정기간행물 발간 시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40여년 전의 ‘구문’은 아직까지 다수 대학에서 유지하고 있다. 영산대 학칙은 이보다 더 과거로 돌아갔다. ‘학생 소요를 위해 학생들을 선동하는 자는 현장에서 총장이 바로 징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진리의 전당인 대학이 오히려 진리 추구에 필수적인 표현·집회·결사의 자유(헌법 21조)를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정진후 진보정의당 의원실이 지난해 대학교육연구소와 함께 전국 4년제 180개 국·공·사립대학의 학칙 및 학생 관련 규정을 전수 조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집회 사전승인 제도’를 둔 대학이 74.4%, ‘게시물·광고 부착 사전승인 제도’를 둔 대학이 72.8%, ‘간행물 지도 및 사전승인 제도’를 둔 대학이 77.2%다.

개인의 사생활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성결대는 ‘본교 학생과의 결혼을 금지’(학생준칙 10조)하고 있고, 한국체대는 제적 대상으로 ‘체육특기자로서 재학 중 결혼한 자 또는 군입대한 자’(학칙 49조)를 들고 있다. 부산가톨릭대는 ‘허가받지 않은 유인물·영상물 등을 소지·배포·게시하면’(학생상벌규정 8조) 징계가 가능하다. 광주여대는 ‘복장이 단정하지 못하거나 과도한 화장을 해 학생으로서 품위를 지키지 못한 자’(학생상벌규정 12조)를 징계할 수 있도록 했다가 지난 3월1일 폐지했다. 가천대는 3월1일 학생상벌규정 12조를 개정해 ‘교내에서 음주를 하거나 지정된 장소 이외에서 흡연을 한 자’는 근신 징계를 받도록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7년 “대학생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학칙은 헌법과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이 정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며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에 지도 감독을 강화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대학들은 한 귀로 흘렸다.

더구나 대학들은 위헌적 학칙을 더욱 손쉽게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월 고등교육법 시행령 가운데 ‘학칙 중 법령에 위반되는 사항이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정부가)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21세기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더욱 발전적인 민주주의 사회의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으로서 각 대학이 수준 미달의 학칙을 스스로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팟캐스트·학보도 감시…도넘은 대학 언론통제

“학생기자 본분 어긋나”
방송 3회만에 금지령·기자 퇴출
학내신문 기사검열 심하고
학교비판 유인물 뿌린 이유로
총학생회장 자격 박탈도

국민대생 문수훈(23·국사학과 3)씨는 지난해 5월 팟캐스트 방송 <하루살이>를 시작했다. 대학 상대평가 제도의 문제점, 졸업준비위원회의 리베이트 의혹 등 민감한 내용을 내보냈다. 방송은 3회 만에 끝났고, 그는 국민대 방송국 객원기자 자리에서도 쫓겨났다. 국민대 쪽에선 “팟캐스트 방송은 학생기자 본분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국민대신문사(학보) 기자였던 박동우(21·경제학과 2)씨는 지난해 4월 기사를 검열당했다. ‘문대성 표절 논란…학위논문 심사, 이제는 바뀌어야’라는 제목의 기사를 출고하자, 주간 교수는 ‘표절 감시 힘든 학위논문 심사, 이제는 바뀌어야’로 제목을 바꿔버렸다. 기사 중 상당 부분도 삭제됐다. 성균관대 학보인 성대신문사 기자들은 지난해 3월부터 두달간 파업을 벌였다.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싸우고 있는 시간강사 류승완 박사의 인터뷰 기사가 주간 교수의 반대로 몰고당했기 때문이다.

학내 언론만이 아니라 동아리나 학생회 활동도 가위질의 대상이다. 서울여대 동아리 ‘시대여행’은 지난해 여름 ‘제주도 역사기행’ 홍보물을 학교 안에 붙이려다 실패했다. 이 동아리를 ‘운동권 성향’이라고 규정한 서울여대는 “검증되지 않은 기관의 홍보 게시물은 부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심지어 지난해 중앙대에선 총학생회장(안성캠퍼스)이 자격을 박탈당했다. 총학생회장 선거 때 ‘학교 쪽이 예산 470억원을 부풀리고 예산 일부가 법인에 흘러갔다’는 취지의 유인물을 뿌렸다는 이유에서였다. 학생들은 운동권 총학생회장을 막으려는 학교 쪽의 의도라고 의심했다.

이처럼 요즘 대학에서는 학생자치 활동이 위축되는 일이 빈번하다. 11일 오전 국회에서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 주최로 열린 ‘대학 자치권 침해 공청회’에선 대학사회의 보수화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위헌적 요소가 다분한 학칙들도 기존에는 사실상 사문화돼 가다 최근 들어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김관회 민주통합당 전국대학생위원회 대외협력국장은 “학생들이 대학자치 문제에 관심을 갖지 못하고 취업에만 신경쓰게 되면서 대학들이 이전에 하지 못하던 규제를 자신있게 밀어붙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금감원, 라응찬 전 신한금융회장 조사 재개
싸이 신곡 <젠틀맨> 전세계 동시 공개 “알랑가 몰라~”
문재인 “대선패배 내 책임” 언급에도 민주 주류-비주류 ‘평가서 갈등’ 계속
고개 까닥인다고 ‘파킨슨병 아내’ 살해한 남편
ATM부스 턱높아 돈 못뽑는 설움 아시나요

진실을 후원해주세요
용기를 가지고 끈질기게 기사를 쓰겠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이 우리 사회에 드리운 어둠을 거둡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북한 지령 받고 ‘스텔스기 도입 반대’ 혐의 활동가 4명 수사 1.

북한 지령 받고 ‘스텔스기 도입 반대’ 혐의 활동가 4명 수사

IMF 극비문서 속 ‘신자유주의 앞잡이 캉드쉬’ 첫 확인 2.

IMF 극비문서 속 ‘신자유주의 앞잡이 캉드쉬’ 첫 확인

[단독] 윤석열, 중수부 때 삼부토건 골프접대·향응·선물 받은 정황 3.

[단독] 윤석열, 중수부 때 삼부토건 골프접대·향응·선물 받은 정황

폭염이 꺾여도 열대야는 남는다…불볕더위에서 찜통더위로 4.

폭염이 꺾여도 열대야는 남는다…불볕더위에서 찜통더위로

민청학련 사건 변호한 강신옥 전 의원 별세 5.

민청학련 사건 변호한 강신옥 전 의원 별세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Weconomy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 뉴스그래픽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더나은사회 | 탐사보도 | 서울&
스페셜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사업

맨위로
벗의 마음을 모아주세요
자유와 평등을 꿈꾸는 마음.
다른 이의 아픔에 눈물 흘리는 마음.
지구의 신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
그 마음을 함께하는 한겨레와 걸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