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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대일청구권 자금 쓴 기업들,
징용피해 지원은 ‘나몰라라’

등록 :2012-05-30 21:04수정 :2012-05-31 08:35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024번째 수요집회가 열린 30일 오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오른쪽)가 집회를 주관한 일본의 ‘헌법 9조-세계로 미래로 연락회’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024번째 수요집회가 열린 30일 오후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오른쪽)가 집회를 주관한 일본의 ‘헌법 9조-세계로 미래로 연락회’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도공·한전·코레일·외환은 등
지원받은 기관 10여곳 달해
“빌린 돈 다 갚았다” 발뺌만
받은 돈의 24% 쓴 포스코도
100억 내놓기로 한 게 고작
“매출 1% 출연해야” 목소리
1968년 6월15일 새벽 경북 포항 영일만 바다에 해가 떠올랐다. 고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은 포항제철 건설 관계자들에게 외쳤다. ‘우리 선조들의 피의 대가인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짓는 제철소요.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 앞에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박 명예회장의 말대로 ㈜포스코(옛 포항종합제철㈜)는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설립됐다. 청구권 자금이란 1965년 한일협정 타결 이후 66년부터 10년 동안 무상공여(3억달러), 유상자금(2억달러), 민간차관(3억달러) 형태로 제공받은 돈을 가리킨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한일 청구권 협상 이후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이유로 임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포스코엔 66년부터 지원된 대일 청구권 자금 가운데 1억1948만달러가 투입됐다. 경제기획원이 펴낸 ‘청구권자금 백서’(1976년) 자료를 보면, 포항제철소에 투입된 자금은 무상자금 3080만달러와 유상자금 8868만달러였다. 한국 정부가 일본에서 받은 무상·유상 자금 5억달러의 23.9%에 이르는 돈이다.(<표> 참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단체 등은 “대일 청구권 자금의 최대 수혜기업 포스코는 역사적 책무를 다하라”고 주장한다. 곧 ‘매출액의 1%(지난해 기준 약 6800억원)를 일제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재단에 출연하라’는 요구다. 지난해 8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 특별법’이 개정돼, 민간재단을 설립할 법적 근거는 마련된 상태다.

포스코를 상대로 낸 위자료 소송을 맡은 재판부도 포스코에 사회·윤리적 책임을 촉구했다. 징용 피해자 99명은 2006년 5월 “청구권 자금을 포스코를 설립하는 데 사용해 일제 피해자들에게 귀속되는 것을 방해했다”며 포스코 쪽에 1인당 10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서울고법 민사5부는 2009년 7월 항소심에서 “포스코가 당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청구권 자금 중 일부를 투자받아 설립됐고, 이를 상환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포스코의 설립 경위와 기업의 사회 윤리적 책임 등에 비추어볼 때 강제징용, 임금 미지급 등의 피해를 본 사람이나 그 유족들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했다. 대일 청구권 자금을 받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법원이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포스코는 지난 3월 이사회에서 2014년까지 100억원을 내놓기로 결정한 뒤, 지난 24일 대법원이 ‘미불 임금에 대한 개인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판결한 이후에도 종전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30일 “정부 차원의 피해자 지원 활동에 동참한 것이지, 대일 청구권 위로금 소송과는 관련이 없다”며 “100억원 이외의 추가 출연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포스코 쪽은 일본에서 들여온 유상 차관은 1997년까지 다 갚았고, 무상 차관은 정부가 주식으로 가지고 있다가 ‘민영화’하면서 다 팔고 나갔다고 밝혔다. 포스코의 지난해 경영실적은 철강재 3700만t을 생산해 매출액 68조9000억원에 영업이익 5조4000억원을 달성했다. 포스코가 100억원만 내놓기로 했다는 소식에, 20살 때인 1943년 일본제철에 끌려갔다가 2년 동안 일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했던 여운택(89·서울)씨는 “포스코가 일본 정부에서 받은 청구권 자금을 가져다 쓰고도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청구권 자금 지원을 받았던 기관은, 포스코 말고도 지금의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 코레일, 케이티(KT), 외환은행, 케이티앤지(KT&G), 한국수자원공사 등 10여곳에 이른다. 외환은행은 원자재 도입 등을 위해 1억3200만달러(26.7%)가 투입돼 가장 많았다. 한국전력엔 무상(366만6000달러)과 유상(178만달러) 등 544만6000달러가 투입됐다. 한국전력 쪽은 “정부로부터 받은 544만6000달러를 다 갚아 ‘수혜가 아니다’라고 판단한다”며 “현재 (기금 출연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봉태 변호사는 “일제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대일 청구권 자금을 피해자들 대신 가져간 포스코 등 기업들은 사회적·윤리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도 청구권 자금 지원을 받은 공기업들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한 사회공헌 기금에 출연하면 법인세를 면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이완 이승준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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