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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시급 5000원’ 떠돌이만 9년…떳떳한 아빠이고 싶다 ”

등록 :2010-11-18 16:17수정 :2010-11-18 17:26

공장라인이 멈춰 선 17일 오후 울산 현대자동차 제1공장. 파업에 참가한 한 조합원이 작업이 멈춰진 차량 옆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노동과 세계 제공
공장라인이 멈춰 선 17일 오후 울산 현대자동차 제1공장. 파업에 참가한 한 조합원이 작업이 멈춰진 차량 옆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노동과 세계 제공
[현장]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공장 점거 잠입 취재기
종이박스 담요삼아 새우잠 …라면·빵으로 끼니 때워
“해고될까 맘 졸이며 사느니 당당하게 정규직 요구”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제1공장’은 요새와 같다. 공장으로 통하는 출입구는 1m 폭의 계단이 유일하다. 이 앞을 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된 사수대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지키고 있다. ‘제1공장’은 인화물질이 가득 쌓여 있는 도장공장과도 인접해 있다. 자칫 큰 사고가 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재 농성중인 노동자는 500여 명. 정규직 노동자 50여 명이 농성장 입구에서 사수대를 꾸려 함께 싸우고 있다.

 농성장 안은 이재민의 숙소와 다름 없었다. 밤이면 찬 기운이 공장 안을 휘감지만 노동자들은 노숙인처럼 종이박스를 담요 삼아 잠을 청한다. 먹을 것도 부족하다. 매일 라면과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어 몇몇 노동자들은 소화 불량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농성장 안에는 의료진이 없어 그냥 누워 있는 게 치료의 전부다.

 노동자들은 더이상 시급 5000원짜리 인생을 살지 않겠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아 보였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비정규지회와 현대차 쪽의 협상을 중재하고 있지만 사쪽의 입장은 완고하다. 현대자동차 홍보실은 “(노조가 주장하는) 대법원 판결은 확정 판결이 아니고 고등법원으로 파급 환송된 단계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회사가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임단협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해명했다.

 농성장에서 만난 김선진(가명)씨의 얼굴에서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김씨는 “이제 이 길밖에 없다”고 했다. 김씨는 10년 가까이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현대자동차 직원이 아니다.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일을 하지만 그의 신분은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직원이다.

 10년의 세월을 지나며 그가 겪은 하청 노동자의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작업 지원반 소속인 그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부품 조립 하라면 부품 조립하고 시트 조립하라면 시트 조립하고 도장하라면 도장 일가지 떠맡았다.” 정규직은 한 라인에서만 일하면 되지만 그는 부르면 어디든지 달려가야 했다. 정규직이 휴가나 개인 사정으로 자리를 비우면 그 자리를 메우는 일도 그의 차지였다.

 주위에서는 현대자동차에서 일한다고 부러워하지만 하청기업 직원인 그의 월급은 한달 내내 잔업과 야근을 반복해야 월 20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그가 받는 급여는 시급 5천원으로 정규직 사원의 60%에 불과하다. 정규직보다 험한 일을 하지만 돌아오는 대가는 형편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일했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가족들에게 “나도 현대자동차 직원”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었다.


 그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하긴 했지만 활동에는 소극적이었다. 그는 법을 믿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정부에서 만든 비정규직법에는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희망은 눈앞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지난 7월 대법원이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 하청 근로자가 낸 소송에서 ‘현대차의 사내 하청은 정상적인 도급계약이 아니라 불법 파견업체이고 2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는 현대차의 근로자임을 확인한다’고 판결했을 때 그는 뛸듯이 기뻤다.

17일 오후 울산 현대자동차 제1공장 작업장 안에서 사측 관리인들(사진 가운데 노란 통 앞쪽)과 현대자동차 정규직 비정규직 조합원(노란 박스 뒤편)들이 대치중에 있다.  노동과 세계 제공
17일 오후 울산 현대자동차 제1공장 작업장 안에서 사측 관리인들(사진 가운데 노란 통 앞쪽)과 현대자동차 정규직 비정규직 조합원(노란 박스 뒤편)들이 대치중에 있다. 노동과 세계 제공

 그러나 그 희망은 산산조각났다. 그는 동성기업 사태를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었다. 대법원 판결 뒤 현대차 사내하청 기업인 동성기업은 느닷없이 폐업신고를 냈다. 김씨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동성기업 직원들은 계약이 끝난 뒤 현대자동차에 고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게 아니었다. 사장은 얼굴 한번 내보이지 않은 채 잠적해버리고 지난 12일부터 느닷없이 ‘청문기업’이라는 이름의 회사 관계자가 나타나 새 고용계약을 맺으라고 했다. 게다가 청문기업은 노조 탈퇴를 요구했다. 거부하면 해고였다. 그는 절망했다. 법원 가운데 가장 높은 대법원의 판결이 휴짓조각이 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동성기업 노동자 29명은 지난 15일 새벽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14라인을 점거해 농성을 시작했다. 현대차 회사 쪽은 1시간도 안 돼 용역 경비업체 직원들을 동원해 닥치는 대로 노동자들을 끌어냈다. 소화분말이 뿌려져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공방이 벌어졌고 철제 볼트와 너트들이 농성장 위를 날아다녔다. 회사 관계자와 노조원들 모두가 큰 부상을 입은 채 아침 7시께 점거농성은 해제됐고 노조원 대부분은 경찰에 연행됐다.

 김씨는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더욱 절망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그는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 900여 명과 15일 오후부터 울산 1공장 점거에 들어갔다. 몇 번을 망설이다 공장 점거에 참여했다. 그는 시급 5000원 인생으로 영원히 사느니 차라리 해고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아들에게 언제까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직원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울산/ 글·영상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사진 노동과 세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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