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남자라니 웬 말이냐”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에이즈 걸리면 책임져라”
최근 일간지에 끊이지 않는 보수단체의 광고 문구이다.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바성연), 참교육어머니전국모임, 동성애허용반대국민연합 등은 “동성애자의 에이즈 감염확률이 일반인의 700배에 달하는데 ‘인생은 아름다워’가 동성애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보수단체 광고는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논란을 확산시키고 있다. 은근한 ‘호모포비즘’(동성애 혐오)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까지 신문광고 같은 공개적이고 적극적인 형태의 동성애 비난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우리 사회 호모포비즘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1. 기독교계 일부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반한다”
보수단체의 이런 적극적인 ‘동성애 반대’ 움직임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보수단체들이 ‘바성연’ 등과 함께 광고를 게재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기독교 단체들이 중심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몇몇 대형교회들은 상당한 금액의 기부금을 내어 광고비에 보태고 있다. 정성희 바성연 사무국장은 “교회에서 모금을 해서 보내오기도 하고 익명의 수 많은 기부자가 광고비를 모아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국내 기독교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동성애가 성경의 가르침에 반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한기총은 2003년 성명을 내어 “동성애로 성문화가 타락했던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진노로 유황불 심판을 했다”며 “청소년 보호법으로 동성애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기독교계의 바람과 달리 동성애에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가 확산 되고, 급기야 서울방송(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김수현 극본)에서 동성애 문제가 정면으로 다뤄지자 기독교계가 직접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동성애 반대’ 광고에 참여한 한 대형교회의 목사는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진리를 정확히 알리려는 차원에서 광고비를 모았다”고 말했다.
#2.“동성애 다룰 수 있지만 ‘인·아’는 선을 넘었다”
이들은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드라마가 동성애를 다룰 수는 있지만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바성연 실행위원 이요남 목사(서울갈보리채플교회)는 홍석천씨가 이전에 출연한 드라마와 ‘인생은 아름다워’를 비교했다. 이 목사는 지난 15일 <한겨레>와 가진 인터뷰에서 “드라마에서 동성애가 다뤄질 수는 있지만 적절한 선이 있어야 한다”며 “홍석천씨가 출연했던 동성애 드라마와는 달리 이번에는 동성애자가 가족 안에 편입되어 미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3. 논란의 불씨 ‘차별금지법’”…“교회에서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못해”
그러나 보수 기독교계가 단순히 특정 드라마를 저지하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섰다고 보기에는 이유가 석연치 않다. 정부가 추진 중인 ‘차별금지법’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4월부터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를 설치해 ‘성적 지향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뼈대로 ‘차별금지법’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차별 금지 영역에 ‘성적 지향’을 포함할지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법무부가 포함하는 쪽으로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계 일부에서는 이 법의 제정을 막기 위해 사활을 걸고 싸우겠다는 강경한 태도다. 실제 대형 교회들을 중심으로 법무부에 ‘차별금지법 입법 반대’ 청원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요남 목사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교회에서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설교하지 못하게 된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4. “교회 기득권 지키려는 몸부림으로 봐야”
그러나 법무부는 기독교계가 ‘과장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본다. 차별금지법 입법을 준비하고 있는 법무부 인권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교계에서) 당장 11월에 입법이 될 것처럼 광고를 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고 현재 여러 자문을 얻고 있는 단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동성애를 죄라고 하면 2년 이하의 징역, 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는 교계의 선전에 대해 “아직까지 정해진 내용이 없고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조국 교수(서울대 법학과)는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막자는 취지의 법률이지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한 법률이 아니다”며 “교계에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계 내부에서도 보수 기독교계의 차별금지법 입법 저지에 적극적인 것이 단순히 성경의 가르침을 지키려는 것보다 다른 이해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임보라 향린교회 목사(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 연대 공동대표)는 “교회가 청소년의 윤리적 훈육과 같은 기능을 잃게 되면 선교 영향력이 떨어지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며 “교회 기득권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5. 동성애 단체들, 차별금지법 또 무산되나?
동성애 인권단체들은 현재 보수단체가 내고 있는 일간지 광고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응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면충돌보다는 논리적 반박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이종걸 친구사이(남성 동성애자 인권모임) 인권팀장은 “‘에이즈=동성애’와 같은 주장은 사실 관계도 맞지 않을 뿐더러 지독한 동성애 혐오를 담고 있다”며 “워낙 주장이 황당해서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차별금지법’ 제정이 또 무산되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2007년에도 법무부가 성적 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입법을 준비하다 보수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바성연 등이 29일 국회에서 연 ‘차별금지법 입법반대 포럼’이 여론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6. 동성애자를 거부할 권리?
학계도 최근 보수단체 광고를 두고 ‘동성애자를 거부할 권리’라는 개념이 확산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보수단체가 ‘신념에 따라 동성애를 반대하는 광고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권리의 개념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현미 교수(연세대 문화인류학과)는 “타인의 권리를 빼앗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권리는 시민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동성애 반대’는 권리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동성애를 둘러싼 사회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은실 교수(이화여대 여성학과)는 “정부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정책이 부족하니까 이런 갈등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소수자가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성 평등 교육이 직장에서 의무화되는 것처럼 학교나 직장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을 키워주는 노력에 국가가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