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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딸 성폭행 남편 선처 호소, 누가 이 엄마에 돌을…

등록 :2009-11-18 07:42수정 :2009-11-19 16:38

비참한 가난에 “저도 평생 죄인…가정은 지켜주세요” 탄원
재판부 “양형 기준 적용 이상으로 개별적 고통 고려” 감형




식당일을 함께 하던 ㄱ(39·여)씨와 ㄴ(32)씨는 2007년께 살림을 합쳤다. ㄱ씨에겐 이미 두 자녀가 있었지만, 함께 살게 되면서 네 명은 그렇게 한 가족이 됐다.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20만원인 옥탑방에서 살았다.

부부는 지난 7월 크게 다퉜다. ㄴ씨는 피시방에 가서 집에 오지 않았고, 걱정이 된 ㄱ씨는 도시락을 싸서 아이들에게 들려 보냈다. 6살짜리 아들은 이내 돌아왔지만, 10살짜리 딸은 의붓아버지한테 성폭행을 당했다. ㄴ씨가 잠든 사이 딸이 집으로 돌아왔고, ㄱ씨는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ㄴ씨는 지난 9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한 달 뒤 ㄱ씨는 ㄴ씨의 딸을 낳았다. 출산 뒤 ㄱ씨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월 40만원으로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달 28일 ㄱ씨는 갓난아기를 포대기에 들쳐업고 ㄴ씨의 항소심 법정을 찾아왔다. 뜻밖에도 ㄱ씨는 ‘남편’의 선처를 구했다. 호소는 차분했다.

“그 죄에 대한 대가에 네 사람의 인생이 달려 있음을 생각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 저희 가족은 비참하게도 먹고, 입고, 자는 문제로 고생을 합니다. 엄마로서 딸의 상처를 모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딸아이에게 큰 죄를 지어 평생 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업고 있는 아기도 제 자식입니다. 이 아기한테도 죄를 지으면 저는 엄마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딸아이는 엄마인 저보다 잘 극복했고, 제가 고통스러워할 때 오히려 저를 위로했습니다. 제발 가정을 지켜주십시오. 너무 힘들어 쓰러지려 합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새 출발하게 도와주세요.”

재판부는 깊은 고민을 판결문에 담았다.

“형벌제도가 갖는 응보와 예방의 목적에 비춰 보면 원심형은 무겁지 않다. 그러나 사람마다 살아가는 삶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서, 죄를 벌하기 위해서는 양형기준을 적용하는 것 이상으로 피고인과 피해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개별적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 피해자는 현재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고, 아빠의 처벌 의사에 대해 ‘엄마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삶에 대한 지혜가 부족한 이 법원으로서는 자신의 딸을 강간한 이를 선처해달라는 이의 심정이 어떤지 가슴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에게 희망을 걸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녀가 법률전문가, 성폭력사건전문가, 심리학자는 아니다. 그러나 세 아이의 엄마로서 본능적으로 무엇이 가장 최선의 해결 방안이 될 것인지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박형남)는 현행법에서 감경할 수 있는 최대치인 징역 3년6월을 ㄴ씨에게 선고했다고 17일 밝혔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재판부의 양형고민

‘집행유예 적합’ 판단했지만
‘아동 성폭행’ 최저 3년6월형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양형체계의 한계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재판부는 “남편 ㄴ씨가 정상적 상태로 복귀해 피해자 등과 치유를 도모하기 위해선 집행유예 처분이 적합하다”고 봤지만 결국 실형을 선고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13살 미만 미성년자 강간’의 경우 형의 하한선을 ‘징역 7년’으로 정하고 있어, 정상참작을 해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3년6월의 실형이 한계선이다. 형법은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는 경우에만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살인도 형법에서 형량의 하한을 ‘징역 5년’으로 정해, 구체적 양형요소를 참작하면 집행유예 처분을 할 수 있게 개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의 법감정이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에 대해 높은 처벌을 요구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모든 경우에 집행유예를 원천 봉쇄한 것이 타당한지 의문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이기, 질투, 독선, 투쟁욕, 권력욕, 복수심 등이 법감정의 옷을 입는 수가 있고, 그러한 법감정은 사회 이목을 끄는 특정 사건의 발생을 전후해 상당한 편차를 보일 수 있다”며 “특정 시점의 법감정에 치우쳐 특정 범죄에 대한 형벌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판부는 한때 이 조항의 위헌법률심판 제청까지 고려했지만 결국 현행법 테두리에서 감형 권한을 최대한 행사하는 방법을 택했다. 재판부의 한 판사는 “조두순 사건과 같은 범죄에 대해 형량 ‘상한’을 높여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지만, 특정 사건에 대한 법감정으로 ‘하한’까지 높아져 피해자의 상황과 문제 해결 방향에 맞지 않게 판결할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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