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때 ‘재판 개입’ 부인…대법원 “진퇴문제 본인이 알아서”
신영철 대법관이 17일 오전 8시45분께 취재진을 피해 대법원 청사로 출근했다. 전날 “촛불재판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는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가 나오자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그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거취와 관련해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안팎에서는 그의 사퇴 여부보다는 그 시점이 언제일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관의 진퇴 문제는 제3자가 말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신 대법관은 이날도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는 오후 6시께 역시 취재진 모르게 퇴근했다.
신 대법관의 진퇴 문제는 이날 오전 법원행정처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긴급현안보고에서도 쟁점이 됐다. 우윤근 민주당 의원은 “신 대법관은 지난해 10월13일 보석을 허가하지 말라는 취지로 판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자신은 판사들이 잘 해주기를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지 전화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는 명백한 위증으로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은 “애초 어떤 취지로 그런 발언을 했는지 모를 뿐 아니라 (사퇴 문제는) 법적 평가로 들어갔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그는 신 대법관 사퇴와 관련한 다른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서도 “개인의 진퇴 문제는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 “책임의 경중은 냉정하게 법률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법원 밖에서 대법관의 진퇴 문제가 제기되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그 자체를 또다른 ‘사법권 침해’로 보는 분위기마저 있다.
김 처장이 말한 ‘법적 평가’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말로 풀이된다. 조사단은 전날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조사 결과를 넘겨 징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법원 안에서는 신 대법관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의를 지켜보고 거취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오는 23일로 예정된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공직자 재산신고와 관련한 심의를 하기로 돼 있어, 이날 심의에서 재판 개입 사건을 논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시일이 꽤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거취 결정이 늦어질수록 법원은 안팎의 논쟁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 여당과 일부 언론은 사법부의 이번 조사 결과를 두고 ‘색깔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법원 안에서도 신 대법관의 거취를 두고 세대간 의견 차이 등이 표출되고 있다. 조사단이 향후 계획으로 거론한 사법행정 운영 방식이나 근무평정 및 인사제도 개선 등에 쏟아야 할 힘이 이런 논쟁 과정에서 소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방의 한 판사는 “신 대법관의 진퇴를 두고 의견을 달리하는 법원 내 어느 쪽도 사법부가 내홍에 빠지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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