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이충연씨가 구속된 정영신씨.
남편 이충연씨가 구속된 정영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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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울지 않았다. 정영신(37)씨는 “진실을 외면하는 검찰과 우리 얘길 외면하는 정부를 보면서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다짐했다”고 했다.

정씨의 시아버지 이상림(72)씨는 용산 참사가 벌어진 지난달 20일 농성 건물 옥상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남편 이충연(36·용산4구역 철거민 대책위원회 위원장)씨는 열흘 뒤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11일 오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그는 이날도 ‘귀 막은 정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했다. 정씨 등 유족들은 용산 참사에 대한 대정부 긴급현안 질의를 방청하러 이날 오전 국회로 달려갔다. 하지만 ‘상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본회의장 출입을 거절당했다. “유족 중에 상복을 입고 싶어 입은 이가 누가 있겠어요. 정부에서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보고 싶어 갔는데 방청조차 못하게 하는 걸 보면서 앞이 깜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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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로 시아버지 잃고, 남편 구속된 정영신씨 인터뷰

정씨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실망을 넘어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가 모인 검찰이 20일 동안이나 수사한 결과가 그것밖에 안 된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며 “내 아버지가,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다 같이 죽자고 화염병을 던질 이가 어디 있겠냐”고 반문했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사임 기자회견은 “마음만 상할 것 같아” 보지 않았다. “김석기씨 기자회견을 본 시어머니가 너무 분통해 하시길래 ‘이젠 기대하지도, 마음 아파하지도 마시라’고 했어요. 어제 나온 정부의 재개발·철거민 대책도 철거민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늘 나오던 것들이에요. 구체적인 대안 없는 대책, 저흰 믿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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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지난달 19일 아침 6시부터 시작된 ‘악몽의 40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참사 전날 오후 남편과 나눴던 통화 내용도 귓가에 생생하다. “제가 신랑에게 말했어요. 다치기 전에 그냥 내려오라고. 그랬더니 신랑이 ‘아니야, 그래도 한 번은 얘기할 거야. 한 번은 내 얘기를 들어주겠지’ 했어요. ‘우린 지금 상황에서 진짜 갈 데가 없다’ 그 말 하겠다고 올라갔는데 그 한마디를 못하고 ….”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온 남편이 아버지를 애타게 찾던 상황을 떠올리며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정씨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신랑이 ‘너무 깜깜해서 아무 것도 안 보였는데 아버지는 어디 계시느냐’고 물어 아무 말도 못했다”며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구속될 때도 ‘아버지 빈소에 문상 한 번만 하고 가게 해 달라’고 그렇게 애원했는데 매몰차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3년 전 호프집을 새로 연 뒤 새벽에 과일 안주가 떨어지면 시아버지께서 몸소 자전거를 타고 가서 사오셨어요. 조금만 더 열심히 살면 우리 식구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힘을 주셨는데 ….” 정씨는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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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주부였던 정씨는 “이제 투사가 다 됐다”고 했다. “오로지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 때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을 거 잘 압니다. 돌아가신 시아버지를 위해, 잡혀간 신랑을 위해, 내 가족을 위해 반드시 진실을 밝힐 겁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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