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은(가명·8)이의 세상은 마치 ‘물속’ 같다. 물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호흡이 가쁘고, 보이는 세상은 부유물이 섞인 듯 희뿌옇다. 왼쪽 귀 청각 신경이 발달하지 못해 들리는 소리 또한 물속처럼 윙윙 울린다. 지상에서 물속과 같은 삶을 이어가는 건 어린 다은이에겐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일이다. 호흡에 집중하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픽픽 쓰러져 낮잠을 자야 한다. 숨쉬기와 삼키기를 한번에 하지 못해 이유식 한 술에도 거친 숨을 몰아쉰다. 지난달 30일 경북 경산에서 만난 다은이의 손끝과 발끝은 보랏빛(청색증)을 띠었다. 피를 온몸에 돌게 하는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다.
심장 한가운데 큰 구멍…“물속에 잠긴 듯”
심방중격 결손, 팔로 사 징후, 차지증후군,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적장애, 뇌병변장애. 다은이는 낯선 이름의 병을 여럿 앓는다. 이 가운데 다은이의 ‘숨’에 영향을 미치는 건 심장질환이다. 다은이가 배 속에서 자라던 7개월째 발견됐다. 의사는 ‘심장 소리가 이상하다’고 했다. 정밀진단 뒤 발견된 질환은 ‘팔로 사 징후’였다. 네가지 병변이 동반된 선천성 심장병으로 호흡 곤란과 청색증, 무산소 발작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전체 선천성 심장병의 10%를 차지하는 질환인데, 다은이의 경우 태어나보니 우심방과 좌심방 사이 벽에 구멍이 나 혈류가 새는 심장중격 결손증까지 동반하고 있었다.
다은이의 작은 몸 한가운데엔, 10㎝가 넘는 수술 자국이 선명하다. 숨을 되찾기 위한 분투였다. 다은이는 태어난 지 3일 만에 응급 수술을 받았다. 심장의 피가 폐로 갈 수 있도록 돕는 인조혈관을 만드는 수술이었다. 1차 수술 뒤 다은이의 산소포화도 수치는 60%(정상수치 95∼100%) 수준이었다. 당시 의사 표현대로면 “산 게 아니라 물속에 잠겨 있는” 채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상태였다. 모유도 넘기지 못해 코에 튜브를 꽂아 영양분을 섭취했다. 1년 뒤 두번째 수술을 받았다. 1차 수술이 응급처방 격이었다면, 2차 수술은 교정을 목표로 한 본격적인 심장 수술이었다. 수술 결과는 실패에 가까웠다. “아이의 몸이 더 크면 3차 수술을 해보자”는 게 병원 쪽 설명이었다. 현재는 산소포화도 수치가 80%까지 올랐지만, 다은이는 여전히 고산지대에 있는 것처럼 숨쉬기를 힘들어한다. 다은이는 이르면 올해 세번째 심장 수술을 받는다.
심장질환 이어 장애 “하늘이 무너진 듯”
제대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다은이에게 엄마는 세상을 향한 유일한 창이자, 떨어질 수 없는 전부다. 엄마에게도 그렇다. 다은이의 엄마(33)는 “마치 신생아를 키우는 것처럼” 종일 다은이의 작은 몸과 표정을 살핀다. 힘든 숨을 삼키고 내뱉는 다은이를 볼 때면 함께 겪은 고단한 순간들이 떠오른다.
태어난 지 100일 됐을 무렵, 다은이에게선 심장질환에 이어 차지증후군까지 발견됐다. 차지증후군은 태아 발달기에 발생한 기형이 여러 장기에서 나타나는 희귀 질환으로 안조직 결손과 뇌신경 이상, 심장 결함, 성장·발달 지연, 귀 이상과 난청 등을 동반하는 병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심장질환은 수술로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텼었는데, 다은이가 다른 장애까지 안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차지증후군은 다은이의 성장과 발달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은이는 아직 기저귀를 차고, 유아차를 탄다. 오랜 재활 끝에 1년 전 겨우 ‘걸음마’는 뗐지만, 여전히 엄마가 앞에서 양손을 잡아주거나 ‘워커’(보행 보조기구)를 지탱해줘야 5분쯤 걸을 수 있다. 씹는 근육과 혀를 잘 쓰지 못해 주로 이유식을 먹는다. 키와 몸무게는 106㎝에 16.5㎏으로 4∼5살 수준이다. 세번째 심장 수술을 위해선 15㎏ 이상이 돼야 하는데, 올해 들어서야 겨우 이 몸무게를 넘겼다.
다은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3살 때부터 다닌 영유아전담 어린이집이다. 비장애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집이라 일주일에 한두번(하루에 2시간)만 갈 수 있지만, 엄마에게도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면 행복에 겨워하는 다은이를 보면서도 엄마는 외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어쩌면 다은이가 비장애인과 어울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같아서요.”
병원 앞 초긴장 “수술비용 걱정”
다은이 엄마는 이혼한 전남편의 사정으로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홀로 생계비와 아이 치료비를 도맡고 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2021년엔 미용 관련 일을 시작했다. 다은이 곁을 떠날 수 없어 예약제로 길어야 하루 3시간 가게를 운영했다. 그렇게 번 돈은 한달에 50만원 남짓이었다. 2년도 되지 않아 가게를 정리했다. 이후로도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벌이를 시도했지만 다은이를 돌보는 삶과 병행하긴 힘들었다. 현재는 정부에서 주는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아동수당, 한부모가정 수당(합쳐서 150만원) 등으로 생계와 다은이 치료를 감당한다.
빠듯하고 막막하다. 다은이가 걸을 수 있도록 돕는 운동 치료, 손가락 근육 등 소근육을 쓸 수 있도록 치료하는 작업 치료, 음식을 씹을 수 있게 입안에 자극을 주는 연하 치료 등 꼭 필요한 치료(수술 예후에도 영향)만 최소 일곱가지다. 장애인바우처 등을 이용해도 한달에 50여만원은 기본으로 든다.
1∼3개월에 한번씩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정기검진도 받아야 한다. 겪는 질환과 장애가 많은 만큼 다은이가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하는 과도 여럿이다. 최소 3개월에 한번 서울 대형병원에서 심장내과·심장외과·소화내분비과·이비인후과·안과·신경과·유전학과·재활의학과를 돌아가며 검진받는다. 검진비는 8만∼50만원 사이인데, 갈 때마다 달라진다. 엄마는 늘 병원 수납창구 앞에서 ‘초긴장 상태’다.
무엇보다 다은이의 숨을 되찾아줄지 모를 3차 수술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12월 검사를 받은 뒤 수술 여부가 결정될 세번째 심장 수술은 엄마에게 희망이자 근심거리다. 수술 비용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차 수술 당시 출산 비용과 수술이랑 치료 비용으로 9천만원, 2차 수술 때도 1천만원가량이 든 거로 알고 있어요. 적어도 돈 때문에 수술을 못 하는 일은 막아야 하는데….” 희망과 불안 사이, 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 걸음 내딛는…“이 모습 자체가 기특”
모진 현실 앞에 엄마는 다은이가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모습을 보며 힘을 얻는다고 했다. 걷기 위한 힘을 길러주는 ‘운동 치료’는 다은이에게 가장 힘겨운 치료다. 숨쉬기가 힘들어 몇 걸음만 걸어도 이마와 머리카락이 땀으로 젖고, 치료가 끝나면 기절한 것처럼 낮잠에 빠진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을 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다은이를 보면서 엄마는 마음을 다잡는다.
‘다은이가 언제 가장 기특해 보이느냐’는 질문에 엄마는 무릎에 앉아 있는 다은이를 한참 동안 가만히 쳐다봤다. 이윽고 “그냥 지금 이 모습 그 자체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다은이와 병동에 있으며 ‘하늘나라’에 가는 아이들을 수없이 봤다고 했다. 다은이도 수차례 고비를 넘겼다. 1살에 이르기까지 어른도 생에 한번 갈까 말까 한 중환자실을 세차례나 갔다. 2차 수술 뒤 어느 날엔 심장박동수가 200을 넘어서며 엄마 눈앞에서 숨이 거의 넘어갈 뻔했던 적도 있다. 다은이는 그 모든 위협 앞에 살아남아 8살이 돼 있다. 심지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저는 다은이가 살겠다는 의지가 강한 아이라고 생각해요. 돌이켜보면 엄청 아픈 시기에도 다은이는 잘 웃어줬거든요. 다은이가 제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까지 잘 견뎌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같이 잘 이겨내보자고.”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다은이네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하나은행 188-910030-69104, 예금주: 사회복지법인밀알복지재단)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밀알복지재단(1600-0966)으로 문의해주십시오. 후원에 참여한 뒤 밀알복지재단으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15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다은이네 가정의 통원 치료비와 긴급 생계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1500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다은이처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장애아동에게 지원될 예정입니다. 밀알복지재단은 다은이네 가정을 지속적으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대한적십자사가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소아성 뇌사 후유증을 앓고 있는 3살 하린이의 사연(한겨레 8월5일치 14면)이 소개된 뒤 488분께서 “하린아 힘내”, “또 한번의 기적을”이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2186만1211원(8월30일 기준)의 정성을 모아주셨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하린이가 필요한 치료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살피고 도울 예정이며, 하린이와 비슷한 다른 위기가정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전해왔습니다. 후원금은 추가적인 뇌손상을 막기 위한 입원 치료, 발달 치료 등이 필요한 하린이의 의료비와, 아빠의 사고 뒤 후유증으로 생계가 곤란한 하린이네 가족의 생계비로 전달됩니다. 하린이네 가정을 위해 따듯한 마음을 보내주신 모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