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뒤 부적격 인사임이 확인됐다며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보수 개신교 이념을 바탕으로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며 공직을 수행하려 한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헌법이 정한 정교분리 원칙마저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성소수자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기독교 감리교에서 파문당한 이동환 목사는 안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본 뒤 “누군가의 인권을 억압하는 종교의 자유는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목사는 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안 후보자는) 개신교 내에서도 굉장히 근본주의적이고 극우적이고 차별적인 생각을 가진 극소수 인사”라며 “혐오와 종교의 자유 경계도 헷갈리는 사람이 소수자 인권에 예민한 감각을 가져야 할 인권위원장에 임명된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또 이 목사는 “종교의 논리에서 하나님은 완벽한 분인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성소수자를 어떻게 잘못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성경을 시대적 흐름에 맞춰 해석해야지 (안 후보자처럼) 선택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목사는 안 후보자의 공직 도전을 계기로 ‘정교분리의 경계를 논의할 때’라고 강조했다. 공적인 자리에서 종교적 편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안 후보자의 행태야말로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 가치를 해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목사는 “종교적 신념이 ‘종교의 자유’라는 포장을 쓰고 공적인 자리로 나와 세속법의 인권 관념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 받아들여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안 후보자를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좋아하는 표현을 쓰자면 반국가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앞서 한 교수는 인권위원장 공모에 지원했다가 ‘인권위 존재 자체를 위해 싸우겠다’며 사퇴했다. 한 교수는 안 후보자가 진화론을 부정하고 성소수자 문제를 헌법·인권의 논리가 아니라 일부 종파의 의견으로 바라보며 “우리나라를 세속국가가 아니라 종교국가, 신정국가로 만들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 교수는 “(안 후보자는) 헌법에 충성해야 하고, 국민 전체의 이익에 봉사해야 하는 공무원으로서의 기본 자질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인권위 초대 사무총장(2002~2004)과 상임위원(2004~2007), 8대 위원장(2018~2021)을 역임한 최영애 전 위원장은 “(청문회) 발언 때 (안 후보자) 표정을 봤는데 거리낌 없고 당당하더라. 기가 막히고 절망스러웠다. 안 후보자는 자격 미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권위에선 위원장이 가지고 있는 철학과 규범과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 차별금지법과 성소수자에 대한 생각은 물론 여성의 옷차림을 성범죄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꼽는 등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사회가 그동안 극복하느라 애썼던 사회적 기준들을 모두 후퇴시킬 것 같다”고 우려했다.
전날 인권위 내부 게시판에는 “소수자를 비난하는 권리가 표현의 자유인지 의문” “진화론 창조론 둘 다 믿음의 문제라고 한다. 어디서 저런 사람을 데려왔는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우리나라 출생률 걱정하지 말고 진흙을 어떻게 잘 공급할지 문제만 해결하면 되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인사청문회에서까지 가감 없이 발언할 줄은 몰랐다”며 당혹스러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고 ‘안창호 인권위’ 체제를 걱정하는 모습이다. 특히 윤 대통령 관련 인권 침해 현안에는 안 후보자가 입을 닫은 모습에 직원 ㄱ씨는 “대통령이나 정권에 대한 눈치 보기까지 할 것 같아서 걱정이 많다”고 했다. ㄴ씨는 “성소수자 인권 보호 업무와 평등법(포괄적 차별금지법) 업무가 마비될 가능성이 크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한 인권적 대응이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며 “인권 보호 업무가 아니라 친정부 옹호 위원회로 전락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우려했다. ㄷ씨는 “직원들 사이에 허탈·체념·걱정·분노의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인권위가 존재감 약한 행정기구처럼 굴러갈 듯하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는 안 후보자 지명 철회와 사퇴를 촉구했다. 35개 인권·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 인사청문회는 그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적합한 인물인지에 대한 평가 이전에 어떻게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이 헌법재판관까지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만큼 충격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안 후보자는 성소수자와 노동자를 비롯해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권리를 외면하고 인권위에서 인권을 지우는 일에 앞장설 인사”라며 “안 후보자에 대한 지명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