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불법합성물 성범죄에 대한 범정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이미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뒤 해산된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태스크포스’가 디지털성범죄 예방교육 권고안을 준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권고안은 태스크포스의 갑작스러운 해산으로 공개조차 되지 못했는데, 현재 문제가 되는 청소년의 가해행위 배경 등을 정확히 짚고 있어 정부가 2년 전 디지털 성범죄 대응 기회를 놓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한겨레가 3일 입수한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태스크포스의 ‘성폭력예방교육 및 디지털성범죄 예방교육 강화 권고안’을 보면 “남학생들 사이에서 여성혐오와 성적 물화(대상화) 콘텐츠를 시청·전파하는 행위가 일종의 또래문화로까지 자리 잡았다”며 이를 바로 잡을 각종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2020년 엔번방 사건 이후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성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7월 발족한 이 태스크포스는 수사와 재판 단계의 제도 개선 권고안만 발표한 뒤 정부의 태도 변화 속에 해산됐다. 이 때문에 예방교육 관련 권고안은 결국 공개되지 못했다.
당시 미공개된 성교육 권고안은 “(청소년 사이에서) 디지털성범죄가 희화화되고 또래 관계 내 역학에서 ‘우월함’을 증명할 도구가 되고 있다”며 디지털성범죄 예방교육을 강조했다.
이는 최근 수면 위로 드러난 불법합성물(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분석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특히 10대가 가해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경찰청은 이날 올해 1~7월 딥페이크를 비롯한 허위영상물과 관련해 178명을 붙잡 았는데 이 중 10대가 131명(73.6%)이라고 밝혔다.
권고안은 이같은 또래 문화를 완화할 방법으로 ‘1년에 1시간’인 성폭력예방교육 법적 최소 시수를 상향하는 것을 비롯해, 청소년 성인지 감수성 함양과 디지털 문해력(리터러시) 향상을 위한 성교육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된 ‘아카라이브’ 등 성착취물 유통 온라인 플랫폼이 형식적인 성인 인증 절차를 두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며 플랫폼의 책임도 강조했다. 역시 최근 제시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예방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범죄 전담 검사이자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이었던 서지현 전 검사를 팀장으로 구성된 이 태스크포스는 10개월 동안 60여개 법률개정안을 담은 권고안 11개를 내놓았다.
범정부 피해자 지원 신청 원스톱 창구 설치하고, 피해자 쪽 사정을 형법상 양형 요소에 추가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고 일부 제도화 됐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구심점이었던 서 전 검사에게 갑자기 검찰 복귀 인사가 내려졌고 태스크포스도 해산 수순을 밟아야 했다.
서 전 검사는 “디지털성범죄는 더이상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을 만큼 만연한 문제인데, 정부는 매번 일이 터질 때마다 보여주기식 처방만 하면서 사실상 일을 방치해왔다”며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려던 태스크포스는 갑자기 막을 내렸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심각성을 인지하고 디지털성범죄 예방을 위한 권고안 이행에 나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