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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게티이미지뱅크
딥페이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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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생활을 이어가던 김하나(가명·19)씨에게 인스타그램 메시지가 도착했다. “누가 엑스(X·옛 트위터)에서 네 사진을 쓰고 있어. 캡처해서 보내줄까?”

곧 김씨가 과거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얼굴 사진을 이용한 불법합성물(딥페이크)이 전해졌다. “어때, 내 선물?” 돌변한 가해자는 한동안 욕설과 성희롱을 쏟아냈다. 피해는 한순간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두달 뒤, 더 많은 불법합성물과 함께 또다시 성희롱 메시지가 왔다. ‘친구들에게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까지 담겼다. “그날 내 모든 세상이 무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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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학교·나이를 가리지 않고 텔레그램 기반 불법합성물 성범죄가 만연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불법합성물 피해를 겪을 당시 청소년이었던 김씨는 28일 한겨레에 좌절감으로 온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집계를 보면, 올해 들어 정부 기관에 피해자 지원을 요청한 3명 중 1명 이상이 19살 미만 미성년자였다. ㄱ씨는 “최근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 학교 명단’에서 제가 졸업한 학교의 이름을 봤다”며 “더는 피해자가 주눅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피해 상황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불법합성물 제작·유포에서 시작된 가해 행위가 협박으로 이어지며 김씨의 삶은 휘청였다. 김씨는 “처음에는 가해자가 그저 더럽고 한심하다고 생각했다”면서도 “하지만 학교 친구들과 남자친구에게 불법합성물을 퍼뜨리겠다는 협박까지 당하자, 일상생활조차 무섭고 힘들어 밖으로 나가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됐고, 결국엔 ‘누가 나를 미워해서 그랬구나’, ‘내 잘못이구나’라고 자신을 탓하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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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방법을 몰라 아무런 신고도 하지 못했다. 그는 “그러다 최근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 학교 명단’에 내가 졸업한 학교가 있는 것을 보게 됐다”며 “1년 전 제대로 신고했으면 피해를 막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을 겪고도 딥페이크를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지 못한 정부의 대처가 이해 가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김씨에 가해진 범죄는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협박 등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특히 미성년자 불법합성물의 경우 단순 소지와 시청만 해도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런 경우 증거를 바로 수집해 시도경찰청이나 경찰서에 신고를 접수해야 하며, 신속하게 할수록 좋다. 경찰서에 신고가 접수될 경우 피해자 조사가 이루어진 후 시도경찰청으로 사건이 이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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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는 “가해자의 인스타그램 계정 인터넷주소(URL), 대화 내용, 대화 시간 등을 캡쳐해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의 도움을 받는 게 피해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디성센터는 불법합성물 성범죄 피해자에 대해 상담 및 삭제지원, 법률 지원 연계 등을 진행한다.

디성센터 관계자는 “접수된 피해 불법합성물로 실시간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으며 텔레그램의 경우 비협조적인 플랫폼으로 피해 지원에 어려움이 있긴 하나, 운영자에게 삭제 요청을 하고 있고 삭제 조치가 진행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 한겨레는 디지털 성범죄 방지를 위해 끈질기게 취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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