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
0
234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텔레그램 ‘중고등학교 겹지인 채널’. 신상을 올린 후 공통 지인을 찾아 함께 딥페이크 불법합성물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텔레그램 갈무리
234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텔레그램 ‘중고등학교 겹지인 채널’. 신상을 올린 후 공통 지인을 찾아 함께 딥페이크 불법합성물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텔레그램 갈무리

“중고등학교부터 지금 다니는 대학까지 제가 거쳐온 모든 학교가 다 거론되는 걸 보니, 방관할 일이 아니더라고요.”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에서 수천명의 팔로어가 있는 방서윤(19)씨는 26일 불법합성(딥페이크) 성범죄물 텔레그램 대화방에 대한 제보를 받아 구체적인 피해 지역·학교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총대’를 멘 뒤 12시간 만에 제보 쪽지만 1천여개가 날아들었다. 전국의 여성 누리꾼들이 찾아낸 각종 지역·학교별 성범죄 대화방 갈무리 사진들이었다. 제보자는 중고등학생부터 졸업생, 현직 교사까지 다양했다.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불법합성물 대화방이 지역·학교·나이를 가리지 않고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여성들이 직접 성범죄 대화방을 찾아 나서고 행동 수칙을 공유하는 등 ‘자력구제’에 나서고 있다. 만연한 범죄에 견줘 더딘 정부 대응에 대한 불신이 배경이 된 만큼, 수사·교육·지원을 아우르는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뒤따른다.

광고

만연한 텔레그램 성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행동 수칙도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중심으로 빠르게 번졌다.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등의 소셜미디어 프로필 사진을 내리고, 얼굴과 몸이 드러나는 사진을 올리지 말라는 식이다. 포토 부스(인생네컷)에 붙여둔 여성 사진을 이용한 불법합성 성범죄물까지 등장하자, ‘사진을 붙이지 말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범죄 탓에 스스로 활동을 제약하는 수칙까지 등장한 셈이다.

국회 누리집에는 이날 텔레그램 성범죄 가해자를 강력히 처벌해달라는 국민동의청원도 등장했다. 텔레그램 앱 사용을 금지하고, 성범죄 가해자를 검거할 경우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등의 내용이다. 청원인은 “인스타그램 등 셀카를 올리면 누군가는 그 사진을 가져가 (불법합성을 해서) 피해자가 많이 생기고 있다”며 “이 사건을 이대로 방치하면 가해자는 더 악독한 수법으로 죄 없는 사람을 공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원은 정식 등록의 최소 요건인 100명 찬성을 하루 만에 채우고 26일 현재 ‘청원 공개 검토’ 단계에 계류된 상태다.

광고
광고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불법 촬영, 유포, 합성, 성적 모욕 등이 학교나 가족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벌어지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직접 내 주변 사람이 가해자인지 찾아 나서는 상황에 이른 것 같다”며 “성평등 교육이나 플랫폼 규제 등 여러 기관의 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경찰청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불법합성물과 관련해 10대 청소년 10명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시·도교육청과 협의해 (딥페이크 성범죄는)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이며 범죄 전력은 향후 사회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걸 각인시키는 등 예방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광고

중고등학생까지 피해 대상이나 가해자가 된 불법합성물 범죄에 교원단체들도 정부의 역할을 주문하고 나섰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이날 입장을 내어 “학생들은 가해자 처벌이나 제대로 된 대응을 기대할 수 없어 스스로 에스엔에스나 온라인 공간에 올린 사진을 내리거나 삭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학교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의 신고 접수 시스템과 수사 전담팀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는 디지털 성범죄 방지를 위해 끈질기게 취재합니다. 
[추적보도 https://campaign.hani.co.kr/deepf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