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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코리아 에스지엠(SGM·성공매니아) 본부 김기춘 대표가 충남 천안시 본사에서 강연하는 모습. 인셀덤 성공매니아 유튜브 영상 갈무리
리만코리아 에스지엠(SGM·성공매니아) 본부 김기춘 대표가 충남 천안시 본사에서 강연하는 모습. 인셀덤 성공매니아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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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바뀌었습니다. 저희한텐 ‘성공역’을 가기 위한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7일 아침 리만코리아 에스지엠(SGM·성공매니아) 본부 경기 성남 분당 지점. 변화와 성공을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영상 속에서 차례로 스쳐 갔다. 같은 시간 충남 천안 본사에서 이뤄지고 있는 ‘성공 사례 강연’이 실시간으로 전국 각 지점에 송출되고 있었다. 눈물과 웃음이 뒤섞인 다양한 방문 판매자의 성공 경험이 전해질 때마다 화면 속 본사 현장에서도, 지점에서도 동경과 응원이 섞인 환호가 쏟아졌다. 화장품 ‘인셀덤’을 판매하는 리만코리아 에스지엠 본부에서 매일 아침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에스지엠은 리만코리아의 3개 본부 중 하나다. 리만코리아는 ‘후원방문판매’ 형태로 인셀덤 화장품을 판다. 대리점장-파워매니저-매니저-뷰티플래너 순으로 등급이 나뉘는데, 등급이 높을수록 제품 할인율과 판매 인센티브인 후원수당이 높다. 가령 대리점장이 되면 원가의 반값으로 화장품을 산 뒤 그 차액에 인센티브를 더해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자기 밑 판매원을 늘려 매출이 커질수록 수당도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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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코리아는 이런 방식으로 급속히 세를 불려 2021년 후원방문판매업체 중 매출 1위(7154억원)를 달성했다. 전체 판매원 수는 2022년 기준 58만7470명이다. 국내 전체 후원방문판매원의 64%에 이른다. 판매원 대부분은 40대 이상 여성이다.

주로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의 ‘성공 의지’를 자극하며 규모를 키운 리만코리아에 최근 피해를 호소하는 판매원들의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유튜브와 커뮤니티 등에는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했는데도 카드빚에 허덕였다”, “지금은 덤핑으로 팔아도 (원가의) 32%로도 안 팔린다더라” 등 피해 호소 글이 여럿 올랐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ㄱ(40)씨는 2021년 11월 지인 소개로 리만코리아 에스지엠 본부를 알게 됐다. 이후 2년 반 동안 서울 지역 대리점장으로 일했다. 그는 한겨레에 “회사에선 월 1천만원씩 벌 수 있다고 하는데, 월 100만원도 못 버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리만코리아 에스지엠(SGM·성공매니아) 본부 판매원들의 성공사례. 성공매니아 누리집 갈무리
리만코리아 에스지엠(SGM·성공매니아) 본부 판매원들의 성공사례. 성공매니아 누리집 갈무리

ㄱ씨는 대리점장이 되기 위해 1억여원어치 인셀덤 화장품을 선구매했다. 팔아야 할 화장품을 잔뜩 짊어지게 된 것이지만, 가게를 차려 사장님이 되는 것에 견줘 훨씬 저렴한 투자로 여겼다. 판매는 쉽지 않았는데 돈 나갈 구석은 많았다. ‘성공’ 탓이다. 에스지엠은 대리점장들에게 ‘홍보를 위해 제품을 우선 무료로 나눠주라’고 교육했다. 나아가 ‘시이오(CEO·대리점장에게 주는 호칭)’답게 ‘외모 경영’에도 힘쓰라고도 했다. “‘성공한 척’을 하느라 옷과 메이크업, 고급 외제차 등에 거금을 쓰고, 지인들 밥을 사는 동안 정작 화장품은 못 팔고 재고만 집에 쌓였어요.”

못 팔고 남은 화장품을 온라인 쇼핑몰이나 중고 거래 플랫폼 등에 파는 ‘덤핑’까지 벌어졌다. 온라인 쇼핑몰에 정가의 반값 이하로 팔리는 인셀덤 제품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리점주로서 가격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이런 인셀덤 판매 구조는 후원방문판매업이라기보다 다단계 판매에 가까워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한겨레에 “리만코리아는 사실상 다단계 소지가 있어 보인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올해 하반기 안으로 ‘다단계판매업으로 사업자 등록을 바꾸라’는 시정명령을 내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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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방문판매업은 자기 자신과 바로 밑 판매원 1명의 실적만을 기준으로 후원수당(판매실적에 따른 인센티브)을 지급하지만, 다단계는 그 밑의 여러 판매원 실적까지 모두 계산해 인센티브를 준다. 다단계는 판매원이 물건 판매보다 사람을 끌어모을수록 돈을 버는 구조라 단숨에 규모를 불릴 수 있다. 그만큼 문제가 생길 경우 ㄱ씨처럼 선구매 뒤 이를 팔지 못하고 피해를 보는 이들의 규모도 걷잡을 수 없이 넓어진다. 이에 대해 리만코리아는 “(인셀덤 판매는)다단계 판매와는 명확히 구분된다”고 선을 그으며, “특정인을 당사자 동의 없이 직하 판매원으로 등록하는 것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으며, 유인행위, 허위 또는 과장된 사실 유포 등을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판매 부진 등 위험에도 리만코리아 판매원이 많이 늘어난 배경으론 특유의 ‘성공 스토리 전파’가 꼽힌다. 아침마다 단체대화방에 대표가 직접 올리는 성공 메시지, 매일 열리는 성공 강의, 매달 수천만 원을 번다는 점장들의 성공 스토리가 이어진다. 7일 아침 강연에서도 무대에 선 한 여성은 “저는 그동안 열심히만 살았지 부자가 아닌 거예요. 앞으로 제가 성공해서 엄마 아빠 인생을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드릴 것”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렇듯 성공한 이들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는 게 ㄱ씨 얘기다.

ㄱ씨는 올해 4월 결국 대리점장 일을 그만뒀다. “2년 반 동안 남은 것은 수천만 원의 손해, ‘품위유지’를 위해 산 외제차, 유통기한 지난 건강보조제 열 몇 상자가 전부에요.” 꿈꿨던 성공의 크기만큼 좌절도 깊었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