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찾아온 폭염에 밤잠 못이루는 초열대야까지
8월 중순까지 무더위·낮 최고기온 경신 가능성도
지구온난화로 변동성 커 여름 날씨 공식 바뀐다
2016년 8월, 폭염이 언제 끝날 것인지 묻는 질문이 기상청에 쏟아졌다. 애초 기상청은 “폭염이 11~14일 절정에 이를 것”이라고 했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사나흘이면 물러날 줄 알았던 폭염은 8월 한달 동안에만 16.6일(전국 평균) 발생했다. 30년 평균(1991~2020년) 5.7일에 견주면 3배 가까이 많다. 기상청은 그해 8월 폭염 종료시점을 4~5차례나 수정했다. “오보청이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당시 고윤화 기상청장은 “150년 만에 한번 나타날 정도의 기상이변이었는데 사전 대비가 부족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당시만 해도 폭염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고 예보 정확도가 지금보다 낮았다. 국내 첫 폭염연구센터가 만들어진 것도 2016년 폭염을 겪고 나서다. 기상청이 지원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으로, 폭염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폭염을 예측하는 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2017년 설립됐다. 지난 2일 한겨레와 만난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 폭염연구센터장(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교수)은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액은 태풍이나 집중호우가 월등히 크지만 사망자 수는 폭염으로 인한 경우가 가장 많다”며 “앞으로 폭염은 변동성이 커질 것이어서 정교한 예보 체계 없이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올해 유독 폭염이 일찍 찾아왔다.
“올여름은 시작부터 뜨거웠다. 6월 폭염일수가 2.8일이나 된다. 한해 전만 해도 0.9일에 불과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선 예년보다 1주일 이상 빠른 6월10일 폭염 주의보가 발령됐다.”
―폭염의 기준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폭염은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33도는 통계적 분포에 따라 나온 수치다. 과거 30년간 가장 더웠던 날을 한줄로 세우면 상위 10%가 33도 부근에 있다. 기상청은 이를 기준으로 폭염 특보를 발령한다.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될 것 같으면 폭염 주의보, 35도 이상일 것으로 보이면 폭염 경보를 낸다. 2020년부터는 체감온도로 측정한다. 기온뿐 아니라 습도의 영향이 더해진 것으로, 실제 사람이 느끼는 더위에 더 부합하는 탓이다.”
―습도를 고려하는 이유는?
“날이 무더우면 땀이 흐르는데, 여기에 습도까지 높으면 땀이 증발하지 않는다. 마치 습식 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땀이 식지 않으면 우리 몸이 체온을 떨어뜨릴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된다. 높은 습도는 그만큼 인체에 해롭다. 습도가 10% 증가할 때마다 체감온도도 1도가량 오른다.”
―다른 나라도 같은 기준을 쓰나?
“나라별로 다양하다. 지역마다 기후 적응도가 다른 탓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35도 이상을 기준으로 삼는다. 폭염 특보는 사회적 비용과도 관련이 깊다. 독일이 특보를 적극적으로 내는 반면 프랑스는 여름에 특보가 한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소극적이다.”
―올여름, 왜 이렇게 더운가?
“앞으로 여름철 날씨는 매년 더 무더워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장마가 끝나고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무더위가 찾아온다. 올해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자리잡기 전인 5~6월부터 기온이 올라갔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 평균 기온이 일직선으로 올라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계단식으로 불규칙하게 올라간다. 그렇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엘니뇨 현상이다. 지난겨울 해수면 온도를 매우 강하게 올리는 슈퍼 엘니뇨가 나타났고 올여름까지 그 여파를 받고 있다. 장마가 끝난 뒤에는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대기 상하층에 중첩이 되면서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이른바 ‘열돔’이라고 하는데 압력밥솥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뜨거운 공기가 상승하면서 흩어져야 하는데 뚜껑을 닫아 놓고 누르는 것처럼 되니까 그 안에서 계속 맴돈다. 열기가 식을 겨를이 없는 것이다.”
―열대야로 밤에도 덥다.
“열대야란 말은 1960년대 일본 기상 수필가의 글(‘일본의 기후’)을 통해 건너왔다. 밤에도 최저기온이 25도 이하로 안 내려갈 때를 말한다. 원래 대기 중 수증기량이 많은 해안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최근 들어서는 도시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태양으로부터 전달된 에너지가 지표면을 달구고 나면 식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다. 해수면 온도 상승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지만 도시 밀집에 따른 영향도 있다. 건물이 밀집되면 열이 상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수평으로 오가면서 분출되지 못하고 계속 쌓이기 때문이다.”(올해 7월 열대야 발생 일수는 8.8일로, 30년 평균 2.7일과 큰 차이를 보였다.)
―열대야를 넘어 초열대야라고 하는데.
“밤에 30도 이하로도 안 내려가면 초열대야라고 하는데 공식 용어는 아니다. 그동안 빈번하게 나타났던 현상이 아니어서 아직 정립된 지표가 없다. 서울에선 2018년에 초열대야가 처음 나타났다. 열대야가 극심해지면 폭염보다 위협적일 수 있다. 밤에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 필요한데 수면의 질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열대야는 왜 특보 발령이 없나?
“아직 열대야 특보를 발령하는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안다. 다만 앞으로 열대야로 인한 피해가 커진다면 특보 발령을 검토해야 하지 않나 싶다.”
―앞으로 언제까지 더울까?
“무더위는 8월 중순까지 지속될 거다. 폭염은 지금이 정점인데, 전국적으로 최소한 열흘 이상은 갈 거다. 역대 폭염이 가장 많이 발생했던 해는 2018년(31일)이었다. 이때처럼 폭염일수가 크게 늘지는 않겠지만 독한 폭염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2018년 강원 홍천의 최고기온 41도 기록도 깨질까?
“가능성은 열려 있다. 절기상으로는 요즘 가장 덥기 때문에 바로 오늘이나 내일도 나올 수 있다.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높아지는 때는 6월21일이지만 우리나라 위도대에선 이번 주가 가장 덥다.”(인터뷰 직후인 지난 4일, 경기 여주의 최고기온이 40도로 관측됐다. 40도 돌파는 2019년 이후 5년 만이다.)
더 정교한 예보 필요한데 폭염·장마 정보 소극적
정답만 주고받으려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한계
다양한 산업부문 파급효과 ‘미래형 예보’로 가야
―전통적인 여름 날씨 공식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폭염이 더 빨리 찾아오기도 하고 장마가 굉장히 불규칙하게 나타나고 있다. 2018년의 경우, 장마가 7월 초순에 끝나고 곧바로 폭염이 찾아왔다. 반대로 2020년에는 8월 중순까지도 비가 많이 내렸다. 폭염일수로도 2018년에는 31일이었지만 2020년엔 7.7일에 불과했다. 전반적으로 변동성이 커졌다.”
―왜 그런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를 보면, 과학자들이 폭염과 열대야가 미래에 늘어날 것이라는 데는 ‘견고한 동의’가 있다. 그러나 비가 많이 내릴 것인지에 대해선 ‘중간적 동의’라는 표현을 쓴다. 발표된 논문마다 견해가 엇갈리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 가뭄이 더 심해지는 곳들도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구온난화가 일정한 속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 측면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구온난화를 강하게 부정하던 때가 있었다. 실제로 2000년부터 2010년까지는 지구온난화 휴지기가 있었다. 전 지구 평균 기온이 예상보다 빠르게 상승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가속화 속도가 좀 꺾이던 때다. 나중에 과학자들이 왜 그랬나 살펴봤더니 굉장히 많은 양의 열에너지가 바다에 축적되고 있었다. 2010년대 이후엔 다시 가속화되는 추세다.”
―역대 기상청장이 가장 많이 바뀐 시기가 여름철 직후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여름철 예보가 어렵다는 의미일까?
“그렇다. 원래 변동성이 큰 여름 예측이 어렵다. 폭염과 같이 발생 확률이 낮은 극단적 현상을 예측하려면 한번의 실험으로는 정확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이번에 폭염연구센터에서 여러 번 예측을 반복해서 나타나는 통계적 분포를 추출해, 폭염 발생 확률을 열흘 전에 알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앙상블 확률예측’ 기술이라고 하는데, 양궁으로 설명하면 활쏘기를 여러 번 해서 화살이 모여지는 곳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현재 관련 정보를 기상청 예보관들의 참고자료로 매주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폭염 예보는 왜 없었나?
“기상청은 48시간 내 발생할 폭염에 대비하라는 특보 발령만 하고 있다. 1주일 전에 폭염이 올 것인지는 어느 곳에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보의 정보 가치는 더 일찍 알 수 있어야 커진다. 몇해 전 미국 국립건축과학연구소(NIBS) 연구 결과를 보면, 재해 예방에 1달러 투자할 때마다 6달러의 사회적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허리케인이 왔을 때 예상되는 수위 상승도 분석에 따라 그보다 높은 곳에 집을 지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이런 의사결정이 원활하려면 예보 대응이 지금보다 발전해야 한다.”
―여름이 오기 전에 폭염 예보가 필요하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선행시간이 긴 예보가 유용하다. 예를 들어 전력수급정책을 수립할 때도 미리 정보가 주어지면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예보가 더 세분화될 필요도 있다. 우리는 아직 기온과 강수량 같은 물리적 변수 중심인데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는 수요자 중심의 영향 예보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나오는 여름철 예측은 평년보다 기온이 높을 확률을 보여주는 수준에 그쳐 큰 도움이 안 된다. 폭염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온열질환 예보나 열사병 예보 혹은 식중독 예보와 같은 것들을 고려해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양식장 운영 지수 같은 정보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 정보 사용자 입장에서는 오늘과 내일, 모레 날씨만 궁금한 것이 아니다. 올해 잡은 생선을 더 빨리 팔아야 할지, 재고를 좀더 적게 관리해야 할지 등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다양한 산업부문에서의 파급효과를 따질 수 있는 미래형 예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예보에 너무 신중하다 보면 적극적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
―적극적 대응이 아쉬운 경우라면?
“몇년 전까지만 해도 기상청이 장마의 시작과 종료 시점을 발표했었다. 그런데 예보가 자꾸 틀렸다. 장마가 끝났다고 했는데 다시 비가 오기도 했다. 원래 폭염 보다는 비 예보가 더 어려운데 기후변화로 장마가 굉장히 불규칙해졌다. 그래서 정확도가 높지 않다는 이유로 발표를 안 하기로 한 거다.(기상청은 2020년 9월부터 장마기간 대신 장마철, 장마전선이 아닌 정체전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자꾸 틀린다고 예보 내용을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틀리더라도 예보 내용이 풍부해져야 한다는 건가?
“갈수록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100% 틀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2020년에 기상청과 함께 여름철 예측을 하면서 폭염일수가 많아질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이후에 분석을 해보니 대서양의 해수면 온도라는 변수를 놓쳤더라. 틀리더라도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예측의 정확도에 대한 꼬리표를 달아주는 것도 방법이다. 관련 기법에 의한 예보의 과거 적중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주는 식이다. 이게 틀릴까, 맞을까라는 프레임에 너무 갇혀 버리면 예보를 할수가 없다.”
―적극적인 소통은 어떤 식으로 할 수 있나?
“폭염을 예로 들면, 국민들도 폭염 발생 원인과 예보가 나오는 과정 등에 대해 이해하는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단순히 정답을 주고받는 식의 커뮤니케이션은 불신만 키우고 기상 망명족만 늘린다. 그동안 태풍이나 장마 백서는 발간됐는데 폭염에 대한 연구 분석은 많지 않았다. 기상청이 ‘폭염 백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폭염이 사회 전반에 어떤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앞으로 전망은 어떤지 등의 내용이 충분히 담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폭염의 심각성은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8년 폭염으로 기차 운행 속도가 느려진 적이 있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기차 선로가 변형이 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잘 드러났던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온열질환자 수가 늘고 있고 농작물 피해로 인한 물가 급등과 같은 문제도 발생한다. 집중호우나 태풍처럼 직접적으로 시설 피해가 한눈에 보이지 않지만 폭염은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가 가장 많다. 지난해 온열질환으로 인한 추정 사망자 수가 32명인데 실제로는 더 많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폭염에 대한 경각심을 좀더 높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