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이 이달 초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회복을 요청했을 때, 박 장관이 ‘대통령실’과 ‘서울중앙지검’을 언급하며 이 총장에게 “총장은 관여하지 말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무부는 ‘박 장관이 수사와 관련해 대통령실과 서울중앙지검 등을 언급한 바 없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24일 한겨레 취재 결과, 이달 초 이 총장의 수사지휘권 회복 요청에 박 장관은 “(총장의) 지휘권 복원도 장관의 수사지휘다.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은 극도로 제한돼야 한다”며 이를 반려했다고 한다. 이 총장은 당시 박 장관이 ‘대통령실과 서울중앙지검이 조율을 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주변에 밝혔다고 한다.
이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김건희 여사 출장조사에 대해 ‘사후 보고’를 받고 크게 화를 낸 것은 법무부와 서울중앙지검이 자신을 노골적으로 배제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총장은 주변에 ‘이번 사건은 100% 이상 절차적 공정성이 지켜져야 하는데 서울중앙지검과 대통령실이 조율해 검찰청 소환조사 등 원칙을 어기면 의심을 받지 않겠냐’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무부 쪽은 “당시 박 장관과 이 총장의 대화에서 대통령실과 서울중앙지검이 수사를 조율하고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바 없다”라고 밝혔다.
한편, 김 여사 출장조사 사후 보고를 둘러싼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갈등은 양쪽이 한발씩 물러나며 확전을 피하는 모양새다. 이 총장의 사후 보고와 관련한 진상 파악 지시에 따라 대검 감찰부는 23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박승환·조상원 서울중앙지검 1·4차장에게 ‘면담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이 지검장은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김 여사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관련 절차를 미뤄달라는 의견을 냈다.
서울중앙지검 내부에선 전날 이 총장의 지시를 두고 “사실상 감찰 아니냐”며 강한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의 담당검사인 김경목 공정거래조사부 부부장은 항의성 사표를 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진상 파악이 목적이라면 이 사건 보고 라인인 대검 형사부에 일을 맡겼으면 된다. 감찰부를 동원했으므로 ‘감찰’로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갈등이 확산하자 대검은 24일 “수사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차분하게 진상 파악을 진행할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사표를 낸 김 부부장 검사 역시 이날 복귀 의사를 밝혔다.
검찰 안팎에서는 추미애 전 장관이 2020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휘·감독을 배제하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것을 4년 동안이나 방치한 것이 이번 내홍의 근본적인 배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는 여전히 논란이다. 수도권의 한 차장검사는 “법적 해석도 갈리는데다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것을 우려해 누구도 수사지휘권 회복에 손을 대지 못한 것”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이 총장이 임기 전 김 여사 사건을 마무리 짓기 위해 수사지휘권 회복을 요청하며 총대를 메고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반면 한 현직 검사는 “이 총장이 취임 초반에 수사지휘권 회복 요청을 안 하지 않았냐”며 “뒤늦게 이렇게 나서는 게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