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가 동성 동반자에 대해서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회보장 제도에서 배제된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최초로 인정하는 판결인 만큼, 사회적인 관심과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논쟁 역시 치열했습니다.
대법관 13명 중 9명(조희대·김선수·노정희·김상환·이흥구·오경미·서경환·엄상필·신숙희)은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동성 동반자 집단과 이성 동반자 집단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전제 아래 ‘다수의견’을 도출했습니다. 하지만 대법관 4명(이동원·노태악·오석준·권영준)은 사실혼 관계와 동성 동반자는 그 구성원이 다른 ‘신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고 보고 건보공단이 규정하는 ‘배우자’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밝힙니다. 이에 대해 다수의견에 선 9명 중 2명(김상환·오경미)의 대법관은 별도의 ‘보충의견’을 내어 건보공단의 조처가 동성 동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기능을 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며 별개의견을 반박합니다.
13명의 대법관이 써내려간 65쪽의 판결문은 동성 부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여러 인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대법관들의 논쟁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거리를 표시한 이정표와 같았습니다. 결과보다 더 뜨거웠던 그 과정을 살펴보려 합니다.
다수의견 : “사실혼과 차별할 이유 없다”
다수의견은 사회보장제도에서 동성 동반자 집단을 다르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따라서 이를 다르게 취급한 건보공단이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배한 것으로 본 겁니다. 다수의견은 건보공단이 사실혼인 경우에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점에 주목해 “피고(건보공단)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이유는 그가 직장가입자의 동반자로서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였기 때문이지 이성 동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건보공단은 혼인 증명서가 없는 사실혼의 경우 2명의 인우보증서(친구나 친척 등 가까운 사람에게 특정 사실을 증명하는 내용을 담은 보증서)를 통해 두 사람의 사실혼 여부를 확인하고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합니다. 동성 동반자 역시 피부양자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경제적 생활공동체라는 사실을 2명의 인우보증서를 통해 증명해야 하므로 사실혼과 차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다수의견의 입장입니다.
다수의견은 사정이 이런데도 동성 동반자를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며 “보험료 납부로 인한 경제적인 불이익을 차치하고서라도, 함께 생활하고 서로 부양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전통적인 가족 법제가 아닌 기본적인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의 피부양자제도에서조차도 인정받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이번 판결이 가지는 의미의 경계도 명확히 했습니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은 건강보험이라는 특수한 사회보장제도와 관련한 피부양자 인정에서의 형평성 유지에 관한 것으로 건강보험제도와 피부양자제도의 취지, 목적 등을 떠나 생각할 수 없고, 다른 사회보장제도의 경우 각 제도의 취지, 목적 등에 비추어 별도로 판단할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민법 내지 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를 해석·확정하는 문제는 충분히 다른 국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며 동성 동반자의 또 다른 권리 보장의 문제는 미래의 과제로 남겨두었습니다.
별개의견 : “사실혼과 동성 동반자 동일하게 볼 수 없어”
별개의견의 우려는 다수의견이 경계를 그은 곳에서 시작합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동성 동반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할 것이냐’지만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그 이상의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실제 별개의견은 “이 사건이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결론이 ‘동성 동반자’도 ‘배우자’로 인정하거나 그와 동일시하는 방향으로 우리 법질서가 나아 갈 것인가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한다고 밝히면서 논의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또 “(이번 판결이) 혼인관계나 배우자 등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별개의견은 사실혼과 동성 동반자를 달리 봐야 한다면서 “피고(건보공단)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이 이 사건 쟁점 규정의 ‘배우자’에 포함된다고 해석하여 왔더라도, 이러한 점 때문에 동성 동반자도 당연히 ‘배우자’에 포함된다고 해석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고, 그 논리적 공백을 메우는 것은 ‘동성 동반자도 배우자와 동등하게 취급하자’는 정책적 구호일 뿐이다”라고 밝혔습니다. 다수의견이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고 정면으로 맞붙은 것입니다.
특히 별개의견은 다수의견이 “‘부부공동생활’에 관한 부분은 ‘혼인’ 또는 ‘부부’가 꼭 이성 간의 관계일 필요가 없다는 암묵적 전제에 기초”한 것이라며 이런 입장은 “본격적으로 논증해야 할 대상”이자 “현재 법질서 아래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별개의견은 두 사람이 ‘경제 생활공동체’를 구성한다는 ‘사실’뿐 아니라 두 사람의 ‘신분’ 역시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성이라는 ‘신분’과 동성이라는 ‘신분’은 다르기 때문에 사실혼과 동성 동반자는 달리 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큰아버지가 조카를 부양하며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더라도 신분요건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국민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로 인정되지 않는” 사례를 들었습니다.
보충의견 : “‘배제된 신분’은 헌법 정신에 어긋나”
별개의견에 대해서는 다수의견 9명 중 2명(김상환·오경미) 의 대법관이 보충의견을 내 재반박을 합니다. 보충의견은 “피고(건보공단)는 직장가입자의 이성 간 사실상 혼인관계 있는 사람 집단과 동성 간 동반자 집단을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였다. 이러한 차별이 우리 헌법에 의하여 정당하다고 평가될 수 있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쟁점”이라고 못 박습니다. 다수의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 사건을 헌법의 정신에 비추어 판단하겠다는 선언을 한 셈입니다.
보충의견은 ‘신분’이 다르면 동일한 집단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별개의견을 반박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차별과 배제’로 작용하는 신분은 우리 헌법이 용인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 동성 동반자들은 단순히 ‘다른 신분’이 아닌 ‘배제된 신분’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밝힙니다. 이어 “ 배제에서 오는 소외감은 사회구성원으로 한 개인이 가지는 존재가치를 잠식한다. 지역가입자가 되어 많지 않은 보험료를 개별적으로 부담함으로써 보호받을 수 있는 또 다른 방책이 있지 않느냐는 답변은 그 제도 안에서 존재가치를 공인받은 ‘수혜자 신분’에서 할 수 있는 말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보충의견은 우리 사회에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할 전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입니다. 헌법은 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답합니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인간과 인간이 맺은 관계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보충의견은 “동반자 관계는 국가에 의한 혼인제도의 형성이나 규율 양식을 떠나 그에 앞서 이미 존재하는 실존적 양태이다. 이는 인간이 타인을 향하여 가질 수 있는 가장 깊고 고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혼인제도와의 관련성을 떠나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 마땅한 가치를 가진다”라고 답합니다. 이어 “이러한 가치는 인간의 실존과 존엄성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동반자 관계를 이루는 두 사람의 성별 구성이나 성 정체성, 성적 지향에 따라 다르지 않다”고 덧붙입니다.
보충의견은 별개의견에서 이번 판결이 더 중요한 법령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 것에 대해 “이러한 염려는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보충의견은 “건강보험제도를 비롯한 여러 사회보장영역에서 성적 소수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 온존하는지 살펴 이를 시정하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 인권 보호를 위해 부담하는 당연한 의무이므로, 그것이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할 수 없”다고 밝힙니다. 이번 판결이 다른 법령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법령 역시 다시 살펴 동성 부부를 비롯한 여러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있지 않은지 따져보는 것이야 말로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지난 18일 대법원에서 승소한 소성욱·김용민씨는 선고 이후 기자들에게 이날 결과가 성소수자들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폭을 가늠할 수 없는 너른 강의 수변으로 두 사람은 큰 바위를 옮겼습니다. 그 힘은 오로지 “행복한 할아버지 부부”로 살고 싶다는 소망에서 나왔습니다. 대법원이 그 바위로 강에 첫 징검다리를 놓았습니다. 그 바위 위에서 우리 사회는 또 오랜 시간 논쟁하고 다툴 것입니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강을 건너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