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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산음보건진료소장(가운데 꽃 든 이)이 지난 12일 경기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 마을회관에서 열린 퇴임 환송식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영 산음보건진료소장(가운데 꽃 든 이)이 지난 12일 경기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 마을회관에서 열린 퇴임 환송식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구불구불한 산길을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하시어 먼 곳에 사는 자식보다도 더 많은 가정을 방문하여 외롭고 힘드신 어르신들을 내 부모님처럼 보살펴주셨습니다.” (산음보건진료소 난타반 정은자씨 환송사)

지난 12일 경기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 마을회관에서 특별한 퇴임 환송식이 열렸다. 산음·석산리 주민들이 마을의 건강 지킴이였던 김영 산음보건진료소장의 정년을 맞아 손수 퇴임식을 준비했다.

오전엔 진료소에서, 오후엔 왕진

산음보건진료소 건강증진프로그램의 하나인 ‘난타반’의 어르신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솜씨를 뽐내며 환송식의 문을 열고, 2016년 이곳에서 시작한 ‘나만의 시짓기 교실’을 통해 시를 써 온 이춘선 어르신의 ‘그리운 딸’ 낭송이 이어졌다.

 김연호 산음보건진료소 운영협의회장은 “20년5개월을 산음리 주민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헌신 노력하셨다”며 김 소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환송사를 했다.

김영 산음보건진료소장(왼쪽)이 김연호 산음보건진료소 운영협의회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다. 박종식 기자
김영 산음보건진료소장(왼쪽)이 김연호 산음보건진료소 운영협의회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다. 박종식 기자

간호사 출신인 김영 소장은 2003년 1월3일 산음보건진료소에 부임했다. 부임 초기, 가족과 함께 사택에 살며 24시간 상주했다. 오전에는 보건진료소에서, 오후에는 가정을 방문해 진료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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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과 온갖 경험을 하며 가까워졌고, 몸 건강 지킴이뿐 아니라 아픈 마음마저 살피는 역할도 했다. 김 소장은 “가장 좋은 간호는 잘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며 “진료소를 찾은 주민들이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밝은 표정으로 진료소 문을 나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진료 공지 못 읽는 어르신 위해 한글 교실까지

김영 소장은 산음·석산리 주민들의 문학 선생님이기도 했다. 2012년 12월 마을의 한 어르신이 보건진료소 앞에서 추위에 몸을 떨며 앉아 있었다. 진료소 문에는 3시까지 가정방문이라는 공지가 붙어 있었지만, 글을 읽지 못하는 어르신은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김 소장은 이를 계기로 한글 교실을 열었다. 내친김에 시 쓰기 교실도 개설했다. 시 쓰기 교실을 통해 103명의 마을 주민이 자신의 시를 갖게 됐다. 주민들은 시를 쓰며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냈다. 이를 계기로 산음·석산리 산골 마을은 ‘시인이 사는 마을’이라는 특화마을이 되었다. 

산음·석산리 마을 주민들이 김영 소장에게 선물한 떡케이크. 박종식 기자
산음·석산리 마을 주민들이 김영 소장에게 선물한 떡케이크. 박종식 기자

산음·석산리 마을 주민들은 이날 김영 소장에게 감사의 글이 적힌 떡케이크를 건넸다.

“저희의 인생에 말을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한 시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