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 우린 쓸모없는 사람들이 아니오’
가수 이랑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의 한 구절이다. 이씨는 ‘마땅한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사회가 마녀·폭도·늑대·이단으로 매도할 때, 그래, 우리가 나타났다’는 의미를 전하려 가사를 썼다고 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밝고 희망찬 분위기’를 원한다며 지난 2022년 43주년 부마민주항쟁기념식(기념식) 공연곡으로 선정된 이 노래를 거부했다. 기념식을 불과 3주 앞둔 시점이었다. 정부가 국가 행사에서 공연 실무진이 짠 계획을 돌연 거부한 건 ‘검열’일까, ‘주최기관의 당연한 권리’일까. 그에 대한 판단이 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가수 이랑과 기념식 총연출을 맡았던 강상우 감독이 지난해 11월 말 행안부와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용역 대행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16일 한겨레 취재 결과 확인됐다. 첫 변론기일은 지난 12일 예정됐으나, 재단 쪽 준비서면이 제출되지 않아 한 차례 미뤄졌다.
이씨와 강 감독은 당시 ‘늑대가 나타났다’ 공연이 가로막힌 데 항의하다가 교체돼 무대에 서지도, 대가(용역비)를 받지도 못했다. 이씨와 강 감독은 소장에서 “기념식의 주제와 연출계획, 계약 내용과 상관없이 합리적인 이유 없는 행안부의 기념식 공연자, 공연 노래에 대한 교체 요청으로 자유로운 예술 활동에 피해를 입었다”고 적었다. 국가기관이 예술을 검열하지 않을 권리를 규정한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에 당초 받기로 약속했으나 지급하지 않은 용역비(강 감독 1천만원, 이씨 700만원)와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권리 침해 등 위자료(각 2천만원)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열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행안부는 ‘특정 곡을 검열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하지만 소송에 들어선 지난 3월에는 “주최기관의 관여는 당연하다”는 보다 명확한 입장을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정부가 특정곡을 거부한 게 ‘검열이냐 정당한 관여냐’를 다투는 것이 소송의 최대 쟁점이 될 거로 보인다.
지난 11일 한겨레와 만난 이씨는 “(곡이 거부된 때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얘기가 들리던 때였다. 행안부가 ‘무색무취’의 공연을 원했다고 들었다”며 “여러 차례 조정을 통해 만들어진 기획안이 갑자기 기념식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고 하니 부당한 지시와 간섭행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강 감독 또한 2022년 6월께 재단 쪽에서 ‘정부가 연출 방향에 대한 특별한 지시나 개입을 내리지 않겠다는 지침을 갖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연출에 참여했는데,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씨는 정부가 강 감독과 자신을 교체하며, 그간 들인 비용조차 지불하지 않으며 예술인의 권리 또한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강 감독은 수개월 동안 공연을 기획했고, 이씨 또한 숙소를 예약하고 함께 공연할 팀을 꾸리는 등 적잖은 비용을 들였지만, 무대에 서지 못해 이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행안부는 논란 당시 해명과 함께 ‘중도사퇴한 공연 관계자와의 정산 방식에 대해선 논의 중’이라고 밝혔는데 이번 답변서에선 ‘검열이 아니니 배상 책임도 없다’는 쪽으로 입장을 굳혔다.
이씨는 행안부의 거부로 이 모든 것이 어그러진 지난 1년 반의 시간을 하나하나 기록해두고 있었다. 기념식 직전까지 강 감독이 만들었던 추진계획안엔 “옳은 말을 하고, 불의에 함께 저항했던 사람들을 되새기는 시간을 만들고자 한다”는 말이,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에 대해선 “억압을 호소하기 위해 일어선 젊은이들의 명예와 자긍심을 표현한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때문에 이번 소송은 이씨에게 “꼭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첫 재판은 다음달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