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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커서 까치발도 들 수 있게 된 라니. 딸의 성장은 반갑지만, 자꾸 서랍 위의 물건을 떨어뜨리려 해서 곤란하다. 김규진 작가 제공
어느새 커서 까치발도 들 수 있게 된 라니. 딸의 성장은 반갑지만, 자꾸 서랍 위의 물건을 떨어뜨리려 해서 곤란하다. 김규진 작가 제공

김규진의 모모일기는?

동성 부부인 김규진·김세연씨는 벨기에에서 정자 기증을 받아 지난해 딸 라니를 출산했습니다. ‘부모’라는 말이 익숙한 사회에서 ‘모모’ 가정을 꾸렸지요. 사랑하는 이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마침내 새 식구를 맞아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은 무척 익숙한 삶의 여정입니다. 때론 아찔하지만 따사롭고 사랑 가득했던 규진 씨의 첫아기 육아일기 연재가 오늘로 마무리됩니다. 사랑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 인사 전합니다. 그동안의 육아일기는 ‘김규진의 모모일기’(https://www.hani.co.kr/arti/SERIES/3124)에서 모아보실 수 있습니다.

미안하다.

레즈비언 엄마가 딸에게 쓰는 편지를 이렇게 시작하면 보편적인 환경을 주지 못했다거나, 원치 않는 주목을 받게 하는 점에 대한 사과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런 이유로 미안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저 너무 멋진 척을 많이 해서 미안하다. 방송이나 인터뷰, 글과 같이 나의 단면만 잘라 보여주는 매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빛나는 부분들이 노출된다. 딸인 네가 보는 나는 학교 숙제를 안 했다고 혼내기도 하고 놀아달라 했을 때 피곤하다며 누워있기도 하는 그런 엄마일 텐데, 가증스럽다고 느껴도 할 말이 없다.

사고력이 충분히 발달한 시점에 이 글을 본다면, 딸을 향한 서간문의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은 불특정 다수를 향해 말하고 있다는 점 역시 비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6개월간 매주 꼬박꼬박 글을 쓰다 보면 형식의 힘을 빌려야 될 때도 있는 법이다. 혹시 일기 쓰기를 방학 숙제로 받아 봤니? 그렇다면 충분히 내 마음을 이해할 거다.

엄마는 초등학생 때 일기 숙제가 곤혹스러웠다. 방학이라고 매일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데, 선생님에게 보여줄 만한 기록을 써내라니 어렵게 느껴졌다. 그렇게 하루씩 쓰는 걸 미루다가 개학 하루 전날에 울며 한 달 치 일기를 지어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지? ‘김규진의 모모일기’를 쓰면서 체력이나 글솜씨가 모자라 곤란했던 적은 있어도 써낼 만한 새로운 일이 부족해 어려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너를 가진 후, 나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겪게 됐다. 나는 청소년 때 한국에서 레즈비언이 결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물며 어린이집 상담에 가거나, 다른 학부모들과 브런치 모임을 하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유아차를 끌고 나가면 온 동네 사람들이 아기가 춥겠다며 한 마디씩 얹는 것도 지금은 따뜻한 걱정으로 받아들이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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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다양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유아차를 끌 때 높은 턱이나 계단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며, 이동이 어려운 다른 교통 약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아기가 없었다면 야근을 마음대로 했을 텐데’라는 마음이 들었을 때, 한국의 현 업무 시스템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어쩌면 영원히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몸을 돌아보며 다른 출산한 여성들과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불과 반 년 전의 라니와 나. 이때는 라니가 아기띠 안에 쏙 들어갔는데… 김규진 작가 제공
불과 반 년 전의 라니와 나. 이때는 라니가 아기띠 안에 쏙 들어갔는데… 김규진 작가 제공

지난 금요일, 프랑스에서 회사를 같이 다닌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갔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야외에서 근사한 연주를 곁들인 멋진 행사였는데, 그런 것들보다도 신부 아버지의 축사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대중 앞에서 말을 많이 해보셨는지, 신부 아버지는 덕담과 농담을 섞어가며 노련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딸의 어릴 적 모습을 회상하는 부분에서 돌연 침묵이 찾아왔다.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어가는 그의 목소리 역시 떨리고 있었다. 몇 번이고 짧은 침묵이 반복된 후에야 축사가 끝났고, 나를 포함한 하객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내가 이미 수십번은 말했겠지만, 너희 할머니, 할아버지는 엄마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물론 혼주석 없이도 식은 성황리에 끝났지만, 섭섭한 마음은 오래 남아 있었다. 그래서 친구 결혼식에서 부모님들이 훈훈한 장면을 연출할 때마다 너희 할머니한테 “오늘 갔던 결혼식에서 신부가 부모님을 보고 울더라”, “레즈비언 결혼식이었는데도 어머님들이 화촉을 밝히더라”고 메시지를 보내며 복수하곤 했다.

친구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부모님이 아닌, 너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네가 커서 결혼하게 되면 어떤 마음이 들지 떠올리고 있었다. 왠지 그때가 되면 나도 까르륵 웃는 어린 네 모습이 떠오를 것만 같아서, 다 큰 딸을 보는 신부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아서 눈물이 흘렀다. 주책이지, 네가 나중에 결혼을 하고 싶을지 하고 싶지 않을지도 알지 못하는데 말이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문득 세연 엄마가 “라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갑자기 웬 감성을 부리지’ 의아하기도 했다. 세연 엄마도 나도 어떤 상황에서든 그때그때 잘 적응해 나가는 사람이라, 아이를 낳지 않았어도 행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너를 보고, 함께 새로운 일들을 겪으며 점점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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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주 어릴 때, 평일에는 어린이집 선생님과 베이비시터가 있었지만, 주말에는 엄마 둘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너를 돌봤다. 오전 6시부터 일어나서 놀아달라는 너에게 장난감을 쥐여주기도 하고, 유아차에 태워 밖에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하루는 그렇게 몇 시간씩 놀다 지쳐 거실 매트 위에 나란히 누워 있다가, 괜히 장난기가 들어 네 코에 나의 코를 맞대보았다. 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까르르 웃는 너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 역시 너를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고.

김규진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 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