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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변. 중랑구 제공
중랑천변. 중랑구 제공

“한국 와서 행복하게 잘 살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지원 잘 받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지난달 31일 서울북부지방법원의 한 법정. 연두색 수의를 입고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정에 선 베트남 이주여성 현아무개(44)씨가 울먹이며 뱉은 서툰 한국어 가운데 “도와달라”는 외침이 또렷했다.

그는 지난 3월 서울 동대문구 중랑천 근처 구청 창고에 불을 지른 혐의(공용건조물 방화 미수·특수재물손괴)로 구속됐다. 불 지른 곳은 2년여 전부터 그가 노숙하고 있던 텐트 근처 창고였다. 불은 창고 자재를 태우고 20분 만에 꺼졌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장애남편 돌봄, 서툰 한국어…시어머니한테 폭행당해”

17년 전,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꿈을 안고 한국에 온 현씨가 하천 근처에서 노숙을 하다 방화 혐의로 법정에 서기까지 한국 살이는 지난했다.

12일 현씨의 공판 내용과 서울 동대문경찰서,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설명을 종합하면, 현씨는 2007년 입국해 지적장애를 가진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다. 2013년 아이를 낳고 귀화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 뒤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2016년 남편과 이혼해 집을 나왔다. 현씨는 ‘아이와 남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한국어가 서툰데도 공부하지 않는다’고 시어머니가 폭언과 폭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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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갈 곳이 없어진 현씨는 노숙인 쉼터와 고시원 등을 전전했다. 이곳들도 안식처가 못 됐다. 한국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다. 2년여 전부터는 중랑천변에 텐트를 치고 노숙 생활을 했다.

중랑천을 택한 이유는 아빠 쪽에 남은 어린 아들이 사는 곳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식처였다. 현씨는 이곳에서 행인들이 건넨 돈과 음식 등으로 생활을 이어 왔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는 받지 못했다.

노숙 텐트에 붙은 퇴거 딱지

그러던 지난 3월, 중랑천 시설 관리 직원들이 현씨의 노숙 텐트에 퇴거 요청서를 붙이고 퇴거를 요구했다. 다시 쉼터로 돌아가야 할까 봐, 아들이 사는 곳에서 멀어질까 봐 두려웠던 현씨는 홧김에 관리 직원들이 평소 머무르던 창고에 불을 질렀다.

현씨는 재판에서 “창고를 전부 태우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려면 취사시설이 있던 곳에서 불을 질렀을 것이다. 항의의 표시로 이 일을 저질렀으나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어로 진행되는 형사재판도 현씨에겐 쉽지 않았다. 법원은 현씨에게 공소장 등 안내 서류가 한국어로만 제공된 사실을 지난달 10일 첫 공판 당일에야 알고 재판을 연기했다. 현씨는 구속된 지 약 3주가 지나서야 베트남어로 번역된 공소장과 국민참여재판의사확인서 등을 받아볼 수 있었다. 두 번째 공판 기일이던 지난달 31일에는 통역인이 제 시간에 출석하지 않아 재판이 40분가량 미뤄지기도 했다.

현씨는 노숙 당시 주거와 한국어 공부 등을 지원하겠다고 한 구청 쪽의 제안을 지속해서 거절했지만, 재판에서 “앞으로 지원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진술했다. 현씨가 구속됐다는 기사를 보고 지난달 초 직접 면회를 신청한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의 설득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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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희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센터장은 “현씨는 현재 한국어 소통도, 베트남어 소통도 원활하지 않은 상태다. 오랫동안 고립된 생활을 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국어로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기도 하고, 이전에 있었던 쉼터에서 있었던 갈등 탓에 심적 저항이 생겨 구청의 제안을 거절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는 현씨에게 이주 여성 전용 쉼터 지원과 심리상담 지원을 제안했다. 애초 이를 거부했던 현씨는, “안정적인 주거지를 가지고 일자리도 마련한 상태에서 아이를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권을 알아보면 어떻겠느냐”는 센터 쪽 설득에 마음을 돌렸다.

“저는 착한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행복하고 싶었어요”

현씨의 판결 선고 재판은 오는 28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다. 검찰은 지난달 31일 서울북부지법 제11형사부(부장 이동식)의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우발적 범행이기는 하나 위험성이 큰 점 등을 고려해 징역 3년을 구형한다”고 밝혔다.

현씨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는 판사의 말에 허겁지겁 자신이 알고 있는 한국어 문장들을 뱉었는데, 쉽게 알아들을 수 없었다. 판사의 중재로 통역이 이루어졌다. “저는 베트남어도 이제 어색하고 한국어도 어렵습니다.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착한 사람입니다. 한국에 와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