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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27일 오전 열린 조사개시 3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27일 오전 열린 조사개시 3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노근리 사건은 불법 희생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네. 불법이 아니라고요?”

“전쟁 중 부수적 피해라고 봅니다.”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비공개 전체위원회에서 노근리 사건에 관해 “부수적 피해”라고 발언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전쟁기 미군에 의한 대표적인 민간인 희생 사건으로 국내에서 특별법까지 제정돼 진상규명이 된 사안을 놓고 과거사 진실규명의 책임을 지닌 국가기관 수장이 희생의 불법성을 정면으로 부정한 셈이다. 이 자리에 있던 한 위원은 “위원장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발언”이라고까지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회장은 “당장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29일 한겨레 취재 결과, 김광동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전날 오후 비공개로 진행된 제79차 전체위원회에서 한국전쟁기 ‘함평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4)’(함평 사건)을 심의하다가 노근리 사건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함평 사건’ 희생자 ㄱ씨에 대해 ‘빨치산 근거지인 군유산에 들어갔고 경찰의 토벌작전 중에 사망했다면 희생자로 인정하기 곤란하지 않느냐’고 말했고, 이에 야당 추천 이상희 위원이 “ㄱ씨는 피난 갔다가 죽었다. 노근리 사건도 피난민들을 죽인 것이다. 전쟁 중 민간인을 학살해도 된다는 거냐”라고 따지자 “노근리 사건은 불법 희생이 아니다. 부수적 피해”라고 답했다.

2020년 10월20일 양해찬 노근리희생자유족회장이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발생한 노근리 사건 때 미군이 쏜 총포 흔적을 가리키고 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2020년 10월20일 양해찬 노근리희생자유족회장이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발생한 노근리 사건 때 미군이 쏜 총포 흔적을 가리키고 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노근리 사건이란 1950년 7월25일부터 29일까지 충북 영동군 영동읍 하가리 및 황간면 노근리 일대 철로 위 또는 쌍굴에 있던 피난민 250~300명이 미군 비행기의 폭격 및 기총소사, 기관단총 사격에 의해 희생된 일이다. 노근리 사건 때 철로 위에서 미군 폭격으로 할머니와 어머니, 형과 동생을 잃은 양해찬(84) 노근리희생자유족회 회장은 한겨레에 “어린이와 노약자, 부녀자들을 피난시켜주겠다고 데리고 나가 무려 4박5일간 죽였는데 어떻게 우발적이고 부수적인 일이 될 수 있는가. 그 기간 동안 고의성 없이 학살이 벌어질 수 있겠느냐. 김 위원장은 엉뚱한 소리하지 말고 유족한테 당장 사과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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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란 미국이 노근리 사건을 포함해 미군에 의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할 때 써온 표현이다. 한마디로 “전쟁 중 민간인 사망은 불가피했다”라는 뜻이다. 2001년 1월12일 한미 양국 국방부는 각각 노근리 사건을 조사하고 공동발표문을 냈는데, “미군은 1950년 7월 마지막 주 노근리 주변에서 수 미상의 피난민을 살상하거나 부상을 입혔다”고만 했을 뿐, 불법성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건의 전개 과정과 희생자 숫자 등을 밝힌 한국 국방부의 보고서와 달리 미국 쪽 보고서는 사살명령에 대한 사실관계는 물론 사망자 숫자도 밝히지 않았다. 보고서 자문단에 참여했던 9명의 민간 전문가 중 한국전쟁 참전군인 출신 피터 메클로스키 전 의원은 “진실이 가려져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2004년 노근리 관련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국무총리실 산하로 출범한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위원회’는 2005년과 2008년, 2022년 3차례에 걸쳐 228명을 희생자로 공식 인정한 바 있다. 2001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노근리에서 한국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은 데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는 성명을 내고 위령비 건립과 희생자 자녀 장학금에 쓸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으나 유족들이 거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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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여당 추천 이옥남 상임위원은 28일 전체위에서 노근리 피난민에 빗대어진 함평 사건의 ㄱ씨와 관련해 “토벌 작전 중인 경찰에 의해서 희생되었다는 문장만 보면 1기 때나 지금이나 진실규명 불능”이라고 김 위원장을 두둔했다. 이에 대해 이상희 위원은 “희생자가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이라면 전투 중이라고 하더라도 진실규명 결정을 해야 한다”면서 “지금 위원장은 무장하지 않은 피해자들이 희생당한 노근리 사건에 대해 불법이 아니라고 했고 부수적 피해라고 했다. 심각한 국제법 위반 발언이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야당 추천 허상수 위원도 “부수적 피해란 군사적 필요성을 전제해야 한다. 그런 관점이라면 위원장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한국전쟁기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해 진실규명보다는 피해자들이 부역자가 아닌지 심사하는데 몰두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진실화해위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에 관해선 어떻게든 군경 입장에서 부수적 피해처럼 취급하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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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9일 영락교회 강연에서는 “침략자에 맞서서 전쟁 상태를 평화 상태로 만들기 위해 군인과 경찰이 초래시킨 피해에 대해 (희생자) 1인당 1억3200만원의 보상을 해주고 있다. 이런 부정의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봤다”고 말했고, 10월10일 영천 유족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전시에는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최근에는 근거가 전혀 없는 경찰 사찰기록에 기대 13·14살밖에 안된 진도 민간인 희생자들을 ‘암살 대원’으로 간주하며 진실규명을 미뤄왔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전체위에서 함평사건 46명(37건)에 대해 진실규명(희생자 확인) 의결했다. 김 위원장이 문제 삼은 ㄱ씨도 논란 끝에 포함됐다. ㄱ씨를 포함한 46명은 1949년 4월부터 1951년 2월까지 함평군 손불면·신광면 등에 거주하다 부역 혐의가 있다는 이유, 좌익활동가의 가족이라는 이유 등으로 국군 제11사단 20연대 군인과 함평경찰서 및 관할 지서 소속 경찰에 불법적으로 희생됐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