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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산86-1번지 설화산에서 쪽진 머리카락에 꽂힌 채 발굴된 비녀들. 아래에 귀이개도 보인다. 사진 아산시·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제공
2018년 2월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산86-1번지 설화산에서 쪽진 머리카락에 꽂힌 채 발굴된 비녀들. 아래에 귀이개도 보인다. 사진 아산시·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제공

여성과 아이가 주로 희생된 한국전쟁기 민간인 집단학살 현장에서 87점의 비녀, 쪽진 머리카락과 함께 발굴되었던 아이의 엄마들로 추정되는 여성 유해의 신원이 밝혀졌다. 부역자 가족이라는 혐의를 씌워 민가에 사는 아이와 엄마들까지 집중적으로 살해한 한국전쟁 인간 사냥의 추악한 얼굴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이름들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7일 오전 조사개시 3주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유해의 유전자 감식결과, 지난 4월25일 발표한 2위에 이어 4위의 신원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4위 중 2위는 2018년 2월 설화산 8부 능선의 구덩이(아산시 배방읍 중리 산86-1번지)에서 발굴된 유해다. 해당 현장에서는 208명의 희생자(어른 150명, 미성년 58명)가 확인됐고, 이중 80%가 여성으로 드러난 바 있다. 신원이 확인된 나머지 2위는 2023년 3월 성재산 1~2부 능선의 교통호(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산110)에서 발굴된 유해다.

설화산 유해발굴은 2기 진실화해위(2020. 12~) 출범 이전에 민간 차원에서 조직했던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과 아산시가, 성재산 유해발굴은 2기 진실화해위가 직접 발굴 주체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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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산86-1번지 설화산에서 출토된 비녀들. 여성용 비녀가 모두 89점이 출토되었는데 이 중 완제 은비녀가 48점으로 가장 많고, 플라스틱과 옥비녀도 각각 3점, 1점이 출토되었다. 사진 아산시·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제공
2018년 2월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산86-1번지 설화산에서 출토된 비녀들. 여성용 비녀가 모두 89점이 출토되었는데 이 중 완제 은비녀가 48점으로 가장 많고, 플라스틱과 옥비녀도 각각 3점, 1점이 출토되었다. 사진 아산시·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제공
2018년 2월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산86-1번지 설화산에서 쪽 찐 머리에 꽂힌 채 발굴된 비녀들. 사진 아산시·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제공
2018년 2월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산86-1번지 설화산에서 쪽 찐 머리에 꽂힌 채 발굴된 비녀들. 사진 아산시·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제공

진실화해위의 발표를 바탕으로 한겨레가 취재한 결과 유해의 신원은 설화산 2명의 경우 유진흥(여, 1920년생, 신청인 아들 맹용호), 유O(여, 나이 미상, 신청인 손자 전해천)이다. 성재산의 2명은 이칠영(남, 1917년생, 신청인 아들 이성무), 이O영(남, 1921년생, 신청인 아들 이O협)이었다. 앞서 지난 4월 진실화해위의 첫 유전자 감식 결과로는 하수홍(1906년생, 아산시 성재산)·길O용(1927년생, 대전 골령골)씨의 신원이 드러난 바 있다. 이 중 진실화해위로부터 민간인 희생자로 진실규명(피해자 확인)을 받은 대상자는 설화산의 유O가 유일하다.

이번에 새로 신원이 확인된 4명은 모두 1950년 9월 말부터 1951년 1월 초까지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치안대(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및 향토방위대, 태극동맹)에 의해 집단살해된 아산시 희생자들이다. 이중 설화산에서는 주민들이 1951년 1·4 후퇴를 전후로 부역혐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과 향토방위대에 의해 끌려가 중리3구 정미소(금방앗간)에 감금되었다가 설화산 폐금광으로 끌려가 총살돼 묻혔다. 1기 진실화해위 조사 당시 참고인들의 진술에 근거해 희생자 수를 200~300명으로 추산했는데, 발굴 유해 감식결과 208명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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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산86-1번지 설화산에서 발굴된 백골. 사진 아산시·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제공
2018년 2월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산86-1번지 설화산에서 발굴된 백골. 사진 아산시·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제공

성재산 교통호에서 발굴된 나머지 2명은 1950년 9·28 수복을 전후로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혐의를 받아 경찰에 끌려가 희생된 주민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발굴된 62위의 유해는 모두 두 손이 군용 전화선(삐삐선)에 묶인 채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성재산에서 발굴된 유해가 모두 남성들이었던 반면, 설화산에서 발굴된 유해는 주로 여성이었다. 각각 남성과 여성의 신원이 2명씩 드러난 결과도 이를 증명한다. 2018년 발굴 당시 설화산에서는 여성들 용품인 비녀가 최소 89개, 반지 23개가 나왔는데, 비녀와 귀이개가 쪽 찐 머리에 꽂힌 채로 출토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비녀는 옛날 여성들의 혼인 여부를 드러내던 표식이자 모양과 장식을 통해 기호와 취향을 드러내던 장신구였다. 과거 여성들은 혼인하면 길게 땋았던 머리를 올려 얹었고, 머리를 고정하기 위해 비녀를 사용했다. 최후의 순간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었던 듯, 여성들의 유해는 아이들의 것과 함께 뒤섞여 발굴되었다. 현장에선 M1 탄피가 나왔고 머리뼈의 총상 자국도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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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산110 성재산 교통호에서 발굴된 유해들.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이 또 2위 확인되었다. 진실화해위 제공
2023년 3월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산110 성재산 교통호에서 발굴된 유해들.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이 또 2위 확인되었다. 진실화해위 제공

성재산에서 발굴된 2명의 경우 유해 감식보고서(각각 식별번호 A1, A6-4)를 확인한 결과 머리뼈가 전혀 나오지 않거나 조각만 나오는 등 부분 유해 상태로 발굴돼 초기 감식과정에서는 성별과 나이를 판단할 수 없었으나 이번에 신원이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그동안 한국전쟁기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관련 실지조사 차원에서 유해발굴을 진행하면서, 발굴 유해에 대한 시범사업으로 ‘2023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유가족 유전자 검사’를 진행해왔다. 발굴 뒤 세종 추모의 집에 안치된 신원 미확인 민간인 희생자 유해는 약 3700여위인데, 한정된 예산 탓에 이 중 501위만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다. 대조한 유가족은 119명이다. 최종 유전자 분석 결과, 발굴된 유해와 유가족은 99.99% 부자(父子) 또는 모자(母子) 관계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국군 전사자 유해 신원 확인율이 0.02%인 점에 견줘보면 진실화해위의 확인율은 0.96%로 대단히 높다고 한다. 진실화해위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임나혁 전문위원은 26일 한겨레에 “올해에도 유전자 분석은 계속된다. 다만 지난해 요청했던 예산이 반 이상 감해져서 성과가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2023년 3월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산110 성재산 교통호에서 경찰에 살해되던 모습 그대로 발굴된 유해.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이 또 2위 확인되었다. 진실화해위 제공
2023년 3월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산110 성재산 교통호에서 경찰에 살해되던 모습 그대로 발굴된 유해.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이 또 2위 확인되었다. 진실화해위 제공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