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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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많은 소년 사건 전담 검사는 가장 먼저 소년들의 나이를 체크하면서 사건 파악을 시작한다. 소년 사건에서는 나이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대략의 뼈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살, 15살…16살…37살. 응? 37살?’ 피의자 목록을 빠르게 훑던 검사의 손가락이 이 이질적인 존재 앞에 흠칫 멈춘다.

 밥도 사주고 잠도 재워주고

37살 남성인 그는 그 지역의 비행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명한 존재였다. 아이들은 그를 그 지역의 이름을 붙여 ‘○○○ 삼촌’이라고 불렀다. 지역이 특정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니 여기서는 그냥 ‘고등어 삼촌’이라고 하자.(하필 왜 고등어냐고 하면 별 이유는 없다. 어류 비하의 뜻은 전혀 없음을 밝힌다.) 고등어 삼촌의 직업란에는 회사 이름도 없이 ‘대표이사’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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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사업체의 대표이사인 고등어 삼촌은 상가 지하에 사무실 하나를 얻어 두고 있었다. 직원이 한명도 없는 그의 사무실에는 대신 그 지역의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있었다. 피시방과 길거리를 쏘다니기도 지친 아이들이 그의 사무실에 찾아들었다. 집을 나와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은 사무실 구석에서 잠을 잤다. 고등어 삼촌은 조건 없이 아이들을 받아주었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도 사주고 때로 담배도 사주었다. 부모나 선생님은 들어주지 않는, 또래끼리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다 들어주면서 함께 웃었다. 어른이면서 또 한편으로 친구 같기도 한 그를 아이들은 ‘삼촌’이라 부르며 따랐다.

고등어 삼촌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대단한 재력가라고 소개했다. 변호사를 여럿 고용해서 로펌을 운영하고 있다고도 했다. 과거에는 경찰에 근무하기도 했고 현재도 정보기관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지역의 범죄 수사나 재판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도 했다. 과거부터 그를 거쳐 간 청소년 중에는 지역 조폭계의 거목으로 성장한 인물도 있어 그의 요청이 있으면 어떤 일도 처리해준다고도 했다. 그가 줄줄이 읊는 경력들이 가능하기는 한 건지, 그런 정도의 재력과 영향력을 가진 37살 어른이 왜 하루 종일 여기서 자신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는지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어쨌든 삼촌은 대가 없이 밥을 사주고 잠자리를 제공해주었으니까. 추운 밤거리를 대책 없이 쏘다니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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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아이들 사이에서 고등어 삼촌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생기면 삼촌은 말했다.

“저번에 ○○동 애들 총 16명 한번에 (소년분류)심사원 타게 만든 사람이 나야. 말 몇마디로 걔들 심사원 태웠어. 너희들은 어떨 것 같아? 근데 심사원은 니들이 이미 갔다 왔으니까 거기는 뭐 적응 금방 할 거고, 재미없잖아? 새로운 세상 맛을 한번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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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느 정도의 비행으로 소년분류심사원 정도는 갔다 온 경험이 있는 아이들에게 말 몇마디로 소년원에 보내버릴 수도 있다는 그의 말은 실질적인 공포로 다가왔다. 고등어 삼촌은 아이들의 시시콜콜한 비행 정보를 아주 많이 알고 있었고 그의 말대로라면 없는 죄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방식으로 그는 그 지역 비행 청소년들의 왕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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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 말을 판검사가 믿을 것 같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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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고등어 삼촌은 2004년생 민준이(이하 가명)에게 동기들을 모아 2005년생들을 혼내주라는 지시를 내렸다. 삼촌이 예뻐하는 진희가 당구장에서 2005년생 수찬이에게 무례한 일을 당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민준이는 수찬이와 그의 친구들을 동네 공원으로 불러낸 뒤 2004년생 동기들과 함께 때렸다. 폭행이 끝날 때쯤 고등어 삼촌은 그 자리에 친히 왕림하여 혼이 잘 났는지 확인했다. 그 모습이 시시티브이(CCTV)에 찍혔고, 아이들의 집단폭행 현장에 나타나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어른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경찰의 수사에 의해 그 존재가 드러났다. 그런 경위로 그는 청소년의 집단폭행 사건의 교사범으로 검찰에 송치된 것이었다.

“여기 검사님은 사법시험 몇 기세요? 저도 사법시험을 쳤었거든요. 1차 합격하고 2차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았지만…. 어쩌면 검사님하고 저하고 동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요….”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검사실에 도착한 남자는 수사관에게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내가 돌아온 것을 확인한 수사관이 서둘러 그를 내 앞으로 안내했다. 나는 조사를 시작하며 무심한 듯 물었다.

“그런데 ○○○씨,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하셨어요? 몇 년도에 시험 보셨어요?”

그는 당황해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거는… 제가 아니고… 그러니까… 제 친구 얘기인데요.”

고등어 삼촌의 얼굴이 약간 등푸른생선 빛으로 굳었다.

그러나 조사가 본론으로 들어가자 그는 다시 자신 있는 태도를 회복하고 범행을 일절 부인했다. 자신은 우연히 공원을 지나다가 안면이 있는 아이들이 모여 있기에 안부를 묻고 지나간 것뿐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시켜서 한 일이라는 아이들의 진술이 있다고 하자 그는 길길이 날뛰었다. 그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 줄 아냐고, 그들이 저지르고 다니는 나쁜 짓들에 대해 자신이 숱하게 알고 있다고, 지금 그런 애들 말을 믿고 이러는 거냐고….

그가 이토록 자신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는 나름의 경험적 근거가 있었다. 그는 이전에도 여러번 입건된 적이 있었으나 번번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미 비행 청소년으로 분류된 아이들의 진술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하여 아이들을 회유하거나 협박했다. “너희 말을 판검사가 믿어줄 것 같냐”는 말과 “소년원에 보내버리겠다”는 으름장 사이에서 아이들은 결국 진술을 바꾸거나 사라져버렸다.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한끼 식사와 담배와 잠자리가 필요했고, 멀고 먼 판검사의 법보다는 고등어 삼촌이 지배하는 지하 사무실의 법칙이 가깝게 느껴졌던 것이다.

나 역시 그 점이 불안했다. 이 사건에서도 직접증거는 “삼촌이 시켜서 한 것”이라는 아이들의 진술뿐이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바람 같은 증거를 믿고 사건을 기소한다는 것이 검사로서는 몹시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보다도, 이 사건이 무죄가 되었을 때 그 파장을 생각하면 아찔했다. 무죄 선고는 그가 구축한 왕국의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법이, 판검사가 믿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더욱 고등어 삼촌의 지하 사무실로 모여들게 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그를 기소해야 했다. 어른들의 법 같은 건 도통 믿지 않는 눈빛을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둠의 질서가 아니라 법의 질서가 작동하는 현장을 한번은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정에 나와 진술해야 할 아이들의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나는 이 아이들이 끝까지 잘 버텨주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재판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채 몇년이 흐른 어느 날, 판결문 검색 시스템에 그의 이름을 입력하자 판결문이 떴다. 그들은 전부 유죄로 인정되었고 징역형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폭행교사만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형이었다. 판결문의 뒷부분, 유죄로 판단한 근거를 쓰는 부분에 낯익은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민준이와 수찬이와 다른 아이들의 이름 뒤로 “증인들의 진술이 일관되고 허위의 진술을 할 동기가 없으며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 적혀 있는 부분을 나는 조용히 소리 내어 읽었다.

대구지검 부장검사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8년차 검사 정명원이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며 만난 세상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