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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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줄 선물을 사서 한국으로 택배를 보낼게. 택배비를 내면 택배를 받을 수 있는데 우선 나한테 택배비를 보내줄래?”

이는 한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라고 사칭한 ‘로맨스 스캠’ 가해자의 실제 사기 수법이다. 로맨스 스캠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친분을 쌓은 뒤 자신의 거짓 재력·외모 등을 뽐내 상대방의 신뢰를 얻고 교제나 결혼을 빌미로 금전을 요구해 챙기는 사기 범죄다. 이 가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에게 독일에 사는 한국인이라고 접근해 “딸이 뇌암으로 쓰러졌다. 수술을 하려면 한국으로 이송해야 하는데 돈을 빌려달라”며 돈을 요구했다.

이처럼 로맨스 스캠 가해자 상당수가 피해자에 따라 국적과 직업은 물론 성별까지 바꿔 접근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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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한국범죄학’에 발표한 ‘판결문을 통해 살펴본 로맨스 스캠 범죄의 양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로맨스 스캠 범죄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판결문 73건을 분석해 이같이 밝혔다.

분석 결과 가장 많이 동원된 로맨스 스캠 시나리오는 ‘돈과 선물을 보내려고 하니 소요되는 비용을 지불해달라’는 수법으로, 전체의 56.6%를 차지했다. 본인이나 가족의 처지가 어렵다고 호소하며 돈을 요구하는 경우는 18.9%, 짐을 보관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대신 내달라는 경우는 15.1%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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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가해자는 피해자에 따라 직업과 국적은 물론 성별까지 바꿔가며 사칭했다. 한 피고인은 ‘시리아에 파병된 한국계 미군 여성’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는 컨설턴트’ ‘한국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올 예정인 미국 의사’를 사칭하며 돈을 뜯어냈다. 또 다른 피고인은 ‘폴란드 석유회사에서 일하는 여성’ ‘영국 금융감독원 고위 여성 간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 소장’ 등이라고 사칭했다.

판결문에서 국적이 드러나지 않은 피고인 47명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26명) 모두 외국인이었다. 아프리카 출신이 13명, 동남아시아 출신이 13명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피해자에게 사칭한 국적은 미국이 42.9%로 가장 많았다. 이어 영국(15.2%), 유엔(10.7%), 한국·스웨덴(6.3%), 홍콩(3.6%) 등도 자주 사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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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칭한 직업은 군인이 32.1%로 가장 많았다. 박 교수는 “국외에 거주하기 때문에 만날 수 없다는 상황을 만들어내기 좋고 군사 기밀이라는 이유로 정보를 제한하기에 명분이 좋고 군인의 이미지를 활용해 신뢰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의사(15.1%), 승무원(1.9%), 회사원(1.9%) 등이 뒤를 이었다.

성별을 바꿔가며 사기를 친 경우도 24.7%에 이른다. 박 교수는 “가해자들은 실제 성별과 상관없이 만들어 낸 프로필의 성별을 피해자에 맞춰 던지는 방식으로 성별을 설정했다”며 “피해자가 특정한 성별에 한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로맨스 스캠은 100%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이뤄졌다. 카카오톡·인스타그램(각각 18.1%), 페이스북(13.8%), 왓츠앱(8.5%) 등 순이다.

피해 금액은 적게는 2만원에서 많게는 13억8천만원에 이르는데 ‘2억원 이상’과 ‘5천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이 각각 20.5%로 가장 많았다. ‘1천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16.4%), ‘1억원 이상 2억원 미만’(15.1%) 등이 뒤를 이었다. 평균 피해액은 1억원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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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로맨스 스캠 범죄는 피해자들이 수치심 때문에 신고를 꺼려 피해가 지속할 수 있다”며 “로맨스 스캠 범죄는 피해자들의 신고로 범죄의 실체를 밝힐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신고를 끌어낼 수 있는 사회적 장치와 보이스피싱 범죄와 같은 맥락의 사회적 예방 작용이 작동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