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제주 구좌읍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서 해녀 삼춘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지난 19일 제주 구좌읍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서 해녀 삼춘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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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처리장이 증설되면 우리 해녀들도 이렇게 될지 몰라.”

소라껍데기를 속이 빈 쪽이 보이게 뒤집으며 제주 구좌읍 월정리 해녀 김영자(70) ‘삼춘’(성별과 관계없이 어른을 부르는 제주식 호칭)이 한숨을 내쉬었다. “소라가 살아야 하는데 우리도 사는데, 소라가 알키(알맹이의 방언)가 없어, 알키가. 하수처리장 때문에 바당(바다의 방언)이 오염돼가지고. 우리도 이 소라같이 죽을지도 몰라. 갈 곳 잃은 해녀들이 6년동안 항의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아.” 13살에 시작해 60년 가까이 제주 바다에서 물질을 해온 김영자 삼춘이 소라껍데기를 허공에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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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제주 구좌읍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서 이 마을 해녀 김영자 삼춘이 속이 빈 소라껍데기를 들고 월정리 바다 오염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지난 19일 제주 구좌읍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서 이 마을 해녀 김영자 삼춘이 속이 빈 소라껍데기를 들고 월정리 바다 오염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해녀들의 피해 증언…“바당이 죽어버렸다”

바다에서 먹고 살았던 해녀들이 제주특별자치도를 상대로 6년째 농성을 하고 있다. 더이상 바다에서 먹고 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2017년 9월 제주도는 구좌읍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증설(1일 처리량 1만2천톤→2만4천톤) 공사를 시작했지만 바다 오염을 염려한 월정리 주민들의 반발로 3개월 만에 공사는 중단됐다. 2021년 10월 제주도가 공사 재개를 결정하자 월정리 주민들은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이곳에서 24시간 보초를 서며 공사를 막고 있다. 19개월째다.

전날 세차게 내리던 비가 갠 지난 19일, 동부하수처리장 진입 도로 입구에는 해녀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증설 공사 차량의 출입을 막기 위해 테왁(해녀가 물질을 할 때 몸을 뜨게 하고, 채취한 해산물을 담을 수 있는 그물이 달려 있는 공모양의 도구를 뜻하는 방언)을 줄로 이어 놓았다. 테왁 앞에는 ‘바당은 해녀들의 생명’, ‘해녀 생존권 사수’, ‘월정 바다에 불평등을 심지 마라’ 등의 손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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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제주 구좌읍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 해녀들이 24시간 보초를 서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컨테이너가 세워져 있다. 하수처리장으로 진입하는 도로는 줄로 이은 테왁으로 막아놨다. 뒤쪽 푸른 기와 건물이 동부하수처리장이다.
지난 19일 제주 구좌읍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 해녀들이 24시간 보초를 서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컨테이너가 세워져 있다. 하수처리장으로 진입하는 도로는 줄로 이은 테왁으로 막아놨다. 뒤쪽 푸른 기와 건물이 동부하수처리장이다.

이곳에서 만난 해녀들은 하수처리장의 처리수 방류로 바다가 오염돼 생계와 건강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전에는 물질 해서 하루 10만원은 벌었는데, 이제는 3만원도 못 벌어. 평생 물질로 먹고 살아온 해녀들이 생계가 막막해지니까 찬 아스팔트 바닥에서 죽을 각오로 싸우고 있는거야.” 김영숙(70) 월정리 해녀회 회장이 말했다. 월정리에서 태어나 40년 가까이 물질을 하며 1남2녀를 키운 윤영옥(65) 삼춘은 월정리 바다 속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소라·성게 등이 붙어 사는 바닷속 딱딱했던 돌들이 지금은 다 삭아서 푸석푸석해졌고 뒤집어져 있거나 심지어 썩은 소라들도 있어. 초록색·붉은색이었던 바다 밑이 석회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잿빛이 돼버렸어. 월정리 바다에서 많이 잡히던 소라, 전복, 오분자기, 우뭇가사리, 문어 등은 물론이고, (전복의 먹이인) 감태를 비롯한 해초 등도 없어졌다. 바로 이웃 마을인 김녕리, 행원리 바다에서는 소라, 성게, 해삼, 우뭇가사리 등이 많이 나오는데 월정리에서만 안 나오는 거는 월정리 바당이 하수처리장으로 오염됐기 때문이겠지.” 김영숙 회장도 “예전에 고장초와 닥고달풀(여우구슬의 방언)도 많이 나와 일본에 수출했는데 이제는 이런 해초들도 없다. 바당이 죽어버렸다”고 했다.

오염된 바다는 해녀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질 6년차 막내 해녀인 김은아(47)씨는 “물질을 처음 시작할 즈음에 바다에서 악취도 나고 두통도 심해서 엄마한테 ‘물질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질을 한 뒤에 몸이 가려워지는 등 피부질환도 생겼다”고 했다. 윤영옥 삼춘도 “하수처리장이 가동된 이후 물질을 하고 나면 구역질이 나거나 어지러운 경우들이 생겼다. 예전에 없던 가려움증도 생겼고, 물집이 잡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김영자 삼춘은 “해녀들끼리 진통제 등 약을 나눠먹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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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제주 구좌읍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서 권영길·현애자 전 의원 등 정치·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월정리 해녀들과 연대한다는 결의를 담은 문화제를 연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19일 제주 구좌읍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서 권영길·현애자 전 의원 등 정치·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월정리 해녀들과 연대한다는 결의를 담은 문화제를 연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과정…해녀들과 함께 싸우던 마을회는 증설 찬성 입장으로

1997년 공사를 시작한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은 2007년부터 1일 처리량 6천톤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2014년 1일 처리량 1만2천톤으로 증설(1차 증설)됐다. 이후 지속되는 인구 유입과 관광객 증가로 인해 제주도는 2017년 1일 처리량 2만4천톤으로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1차 증설된 지 불과 3년만에 두 배 증설 계획이 또 발표되자 월정리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이후 주민들과 제주도 사이에 긴 갈등이 이어졌다.

2022년 1월에는 ‘동부하수처리장 반대 월정리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결성돼 증설 반대 활동에 나섰다. 증설 공사가 계속 지연되자 같은해 7월, 민간 공사업체는 마을 주민 14명을 상대로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은 공사 방해 시위를 할 때마다 100만원씩 배상하라는 결정을 했다. 법원의 이 결정으로 주민들은 많이 위축됐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12월 월정리 마을회는 제주도와 증설 공사 관련 협의체에 참여했다. 증설 반대 입장에서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다. 김창현 월정리 이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법원의 결정, 여론 상황 등을 종합해볼 때 이 작은 월정리의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문제로 공동체 해체 등을 겪은) 강정마을 주민들처럼 다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1월 월정리 마을회는 총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 해체 안건을 통과시켰다. 해녀들과 황정현 비대위원장 등은 일방적인 안건 상정과 투표 결과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앞서 오영훈 제주지사는 지난해 7월 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주민들이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 지혜를 모아 상생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2018년 당시 원희룡 제주지사(현 국토교통부 장관)도 “주민 동의 없는 증설공사는 없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주민의 일원이자 바다 오염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해녀들은 협의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 지난 4월 증설 공사가 재개됐는데 해녀들의 반대 활동이 이어지자 공사업체는 해녀 31명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고, 60~80대 해녀들은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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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동굴…증설 공사로 인한 훼손 여부 연구 용역 시작

해녀들과 시민사회단체는 하수처리장 증설에 따른 용천동굴 훼손도 우려한다. 문화재청은 2005년에 발견된 용천동굴 하류 부분이 동부하수처리장에서 동쪽으로 약 200m 떨어져 있다고 보고 있다. 길이 3.2㎞ 용천동굴은 종유석·동굴산호 등 탄산염생성물이 다양하게 발달하고 길이 800m의 대규모 동굴 호수가 있는 특이한 용암동굴로 학술적·경관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청년기후긴급행동 회원들이 지난 19일 제주 구좌읍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서 열린 월정리 해녀들에 대한 연대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청년기후긴급행동 회원들이 지난 19일 제주 구좌읍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서 열린 월정리 해녀들에 대한 연대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지난 19일엔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서 권영길·현애자 전 민주노동당 의원 등 정치·시민사회 인사와 해녀 20여명을 포함한 90여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도가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 과정에서 하수처리장에서 가까운 용천동굴 하류구간을 누락시켰고 △증설 면적이 소규모환경영향평가 대상에 해당하지만 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등의 근거를 들며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내용과 함께 해녀들과 연대한다는 결의를 담은 이 기자회견문에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정의당 의원 6명 전원을 포함한 정치·시민사회인사 총 200여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지난해부터 계속 이어지자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는 3억원을 들여 ‘거문오름용암동굴계 미래 변형예측 연구’ 용역을 하기로 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연구 용역 계약이 최근 체결됐다”고 말했다. 이로써 올해 12월까지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이 용천동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연구가 진행된다.

해녀들과 시민사회단체쪽에서는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증설 공사가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는 증설 공사를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재섭 제주도 상하수도본부장은 “현재 동부하수처리장의 처리용량이 98% 수준이라 여름철도 다가오는만큼 빨리 증설 공사를 해야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처리용량이 100%를 넘게 돼 하수가 정화 처리되지 않은 채 바다로 흘러나가게 되면 바다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제주시 제주특별자치도청 앞 도로에서 월정리 해녀들과 시민사회단체가 집회를 하고 있다.
지난 19일 제주시 제주특별자치도청 앞 도로에서 월정리 해녀들과 시민사회단체가 집회를 하고 있다.
일방적 희생 강요 말고, 물 소비 줄이는 근본적 고민 필요

제주도가 제주시 구좌읍과 조천읍 지역의 하수를 담당하는 동부하수처리장을 포함해 도내 총 8개 하수처리장을 증설하는 이유는 제주도 상주인구와 관광객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 동부하수처리장이 완공된 2007년에 견줘 제주도의 인구수는 2022년 21.3% 증가(55만9258명→67만8159명)해 같은 기간 전국 증가율(4.4%)보다 5배 이상 높았다.(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 제주도 관광객수도 2007년 543만명→2014년(동부하수처리장 1차 증설) 1525만명→2017년(2차 증설 계획 발표) 1639만명으로 크게 늘었다.(제주특별자치도 ‘통계 연보’)

제주도는 상주인구 증가 원인을 “제주도 해안과 중산간 전체에 걸쳐 전원주택, 펜션단지 등의 주택건설 증가”(2018년 ‘제주특별자치도 광역 하수도정비 기본계획 보고서’)에서 찾고 있다. 보고서는 또 “한류의 영향으로 관광객 유입 또한 급격히 증가되고 있어 하수도 정책 또한 급격한 하수량 증가에 대비한 기반시설 마련이 시급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런 상황에서 하수처리장 증설을 당연시하기보다는 하수 발생량을 늘리는 아파트나 관광사업장 건축 허가를 제한하는 등 물 소비를 줄이는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제주에서는 오등봉·중부·동부 공원 등에서 각각 1천세대 안팎 규모의 아파트 개발 사업이 예정돼 있고,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개발, 제2공항 신설 이슈 등이 있는데 모두 대규모 하수를 발생시키는 사업들이다.

김순애 제주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제주도가 지금 하수처리시설 증설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데 계속 하수처리를 증가시키는 건축허가와 관광객 증가 정책을 유지해나갈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제주도에 들어오는 관광객들에게 부과하는 입도세(환경보전분담금) 논의 등 ‘오버투어리즘’(관광 과잉)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필리핀 보라카이의 경우 넘치는 관광객들로 인한 쓰레기 대란과 수질오염 등 극심한 환경오염 문제 개선을 위해 2018년 6개월간 섬 개방을 중단하는 ‘극약 처방’을 시행하기도 했다.

월정리 해녀들의 하수처리장 증설 반대를 ‘님비’로 보는 시각에 대한 반박도 나온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는 “현재 월정리 하수처리장 증설을 통해 ‘고통 분담’을 해야한다는 분위기가 있지만, 이는 고통 분담이 아니라 ‘고통 전가’라고 본다”며 “제주도에서 먼저 중수도 시설 확충, 신규 건물에서의 자체적인 하수처리 시설 신설, 수도법에 따른 절수 의무에 대한 관리·감독 등 절수를 위한 노력들을 충분히 선행해야 하고, 그런 노력들을 통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지역 주민들도 하수처리시설을 고통 분담 차원에서 받아들일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순애 공동운영위원장도 “총인구 750명 가량의 월정리 마을에 6만명 규모의 하수처리 부담을 지우려 한다면 바다 오염에 대한 직접 이해당사자인 해녀들의 요구를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