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창간 35돌 기획으로 국제입양인 20명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난 5월11일은 입양의 날이었고 올해는 국제입양 70주년이다. 칠레·아일랜드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국가 차원의 인권침해 조사를 곧 시작하기도 한다.

산 역사의 주인공들을 섭외해준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은 덴마크를 비롯한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네덜란드, 미국 등 10개국에서 650여명이 가입한 세계 최대의 한인 입양인 커뮤니티다. 지난해 8월부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334건의 입양 사례를 제출하며 조사를 신청해 12월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 조사 개시를 이끌어낸 바 있다. 진실화해위는 오는 6월부터 코펜하겐·오슬로 등 현지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세계 20만명으로 추산되는 국제입양인들의 이목이 여기에 쏠려 있다.

<한겨레>는 영아 매매, 기록 위조 등 출생과 함께 부당하게 취급된 자신들의 역사를 뒤져 진실과 정의를 회복하려는 국제입양인들의 열망을 존중한다. 20명이 짧게 쏟아낸 과거사 속엔 조사 대상자로서 진실화해위에 거는 기대가 함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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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 고아라고 들었는데 46년 만에 친가족 찾아내
마리아 한센(입양 때 1살, 현재 46살, 덴마크)

46년 동안 저는 남광보육원에서 한국사회봉사회를 통해 입양된 고아라고 알았습니다. 거짓이었습니다. 한국사회봉사회는 저에게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저는 1976 104일에 태어났고, 출생 직후 서울 사당동 위치한 산호산부인과를 통해 한국사회봉사회에 의뢰되었습니다. 태어난 24시간 만에 저는 입양될 준비를 갖췄습니다.

또한 한국사회봉사회는 저에게 친어머니(이씨 성) 친아버지(염씨 성), 3남매와 더불어 이란성 쌍둥이 형제가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극심한 가난 때문에 친아버지는 쌍둥이 형제를 키우기로 결정하고 저를 입양 보내기로 했답니다. 새로운 정보는 충격으로 다가왔고 정체성이 뒤집혔습니다. 친부모에게 화를 생각은 없습니다만, 저에 대한 정보에 더 깊이 접근하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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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이름 겨우 알아냈지만 기관선 7주만에 찾기 포기
마리올레인 판헤이스베이크(입양 때 2~3개월, 현재 36살, 네덜란드)

1986년 입양되었습니다. “역대 가장 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 때마다 들어온 말입니. 네덜란드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명의 언니를 따뜻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들은 항상 친가족을 생각해주셨어요. 하지만 그들이 누군지 모릅니다. 1993 양아버지가 이들을 찾으려고 한국사회봉사회에서는 여러 이름(아버지: 김창선 03-03-1952 / 어머니: 김영선 08-08-1952)을 알려주었습니다. 비현실적이었죠. 이제 제가 나섰습니다. 입양인이기 입양기관에서 많은 정보를 주길 바랐습니다.

글이 저에게 희망을 줍니다. 모든 것이 물음표인데, 한국사회봉사회는 7 만에 저에 대한 정보 탐색을 중단했습니다. 올해 1월25일에 요청을 수락한 뒤 317일에 탐색을 중단했다는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생년월일이 1986 107일인가요? 제가 태어난 날은 오후 1시24분? 이것이 사실이라면 탐색의 유일한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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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간 부끄러운 입양 한국 현대사에서 끝내야
토비아스 휘비네테(입양 때 7개월, 현재 52살, 스웨덴)

한국 이름은 이삼돌입니다. 1971 9 생후 약 1개월쯤에 여수 인근의 달리는 기차 안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이후 광주 대한사회복지회 지부로 옮겨졌는데, 생후 7개월 무렵인 1972 3 스웨덴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업도시 모탈라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용접공이었고 어머니는 유치원 교사였습니다.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한국 입양 문제에 관한 최초의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90년대부터는 한국 입양인 커뮤니티에 참여하면서 한국 입양학 비판입양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20명에 이르는 한국인의 서구 입양 상당수가 비윤리적이고 심지어 불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은 한국 입양 활동가들과 연구자들 사이에서 알려진 사실입니다. 70 동안 한국에서 서방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국제 입양은 이제 마감해야 한국 현대사의 부끄럽고 어두운 장입니다.

출생지·생일 달라 충격 첫 방한뒤 10년간 방황
마이브리트 코에드(입양 당시 7개월, 현재 46살, 덴마크)

홀트아동복지회가 지어준 이름은 김수정입니다. 덴마크 이름은 마이브리트 코에드입니다. 1977 517 처음으로 덴마크 땅을 밟았습니. 생후 7개월 한국 생활은 기억에 없지만, 입국 1 넘게 울고 악몽을 꿨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사랑과 정이 넘치는 시골 작은 마을의 가정에 정착한 저는 제가 다르다는 사실과 관련된 끔찍한 일을 경험한 없습니다. 자라면서 과거 배경을 들여다보는 관심이 없었지만, 20대에 양부모를 잃고 아이를 낳으면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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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처음 한국에 왔습니다. 제가 지낸 고아원을 방문한 제가 서울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것은 그늘진 배경을 처음 접한 순간이었습니다. 잘못된 정보로 인해 황당하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챕터를 닫기로 결정했습니다. 2019 한국에 올 용기를 내기까지 10년이 걸렸습니다. 사이에 제가 마산(현 창원시)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가족과 함께 그곳 고아원에 가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문서를 보관하던 건물은 불에 탔다고 합니다. 사례의 핵심은 개의 생년월일로 등록되어 있고, 체중, 등이 주어진 날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덴마크 입양 회사 디아이에이(DIA)로부터 파일을 받기 위해 애도 써봤고 덴마크 국립기록보관소의 문도 두드렸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입양인이 직면하는 시스템입니다. 법적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면 영유아 인신매매일 수밖에 없기에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을 밝혀주길 바랍니다. 결론에 따라 덴마크에서도 조사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홀트에 찾아온 엄마에게 이미 국제입양됐다 거짓
톰슨(입양 당시 7개월, 현재 47살, 미국)

1975년 12 젊은 미혼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에 따르면, 갓난아기 병원 문 앞에 버려진 발견되었고, 정확한 생년월일과 이름, 엄마의 신원도 모두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2008년 12, 엄마를 만났습니다. 엄마는 홀트가 30 넘게 알려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홀트가 운영하던 미혼모 전용 시설에서 엄마와 함께 살았다는데, 홀트는 시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왔습니. 홀트는 항상 엄마를 찾을 수 있도록 사전 동의하에 엄마가 제공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홀트는
엄마가 저를 찾으려고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태어난 지 몇 뒤에 보러 홀트로 왔다고 합니다. 엄마가 저를 찾으러 홀트에 왔을 제가 이미 입양되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제가 생후 7개월 되어서야 미국으로 보내졌기 때문에 당시 한국의 위탁 가정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2008년 사건을 담당한 홀트 사회복지사는 이메일에서입양이 얼마나 행운인지 감사할 줄 모른다”며 “씁쓸하다” “배은망덕하다”는 말로 실망감을 드러낸 있습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그런 식으로 취급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획 공동진행 한분영(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그룹 공동설립자), 번역감수 김지은(April)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곽진산 기자 k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