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 한 주상복합건물 인근 주택 담장에 ‘피해보상’ 문구가 적혀 있다. 이 건물은 인천 전세사기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이른바 건축왕 ㄱ씨가 건축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건물은 지난해 4월 준공될 예정이었지만,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돼 입주 예정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 한 주상복합건물 인근 주택 담장에 ‘피해보상’ 문구가 적혀 있다. 이 건물은 인천 전세사기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이른바 건축왕 ㄱ씨가 건축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건물은 지난해 4월 준공될 예정이었지만,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돼 입주 예정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30대 부동산씨는 전세 대출을 받아 전세를 살고 있다. 대출 이자를 살뜰히 갚아나가며 2년 만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집주인이 유사수신(다단계) 혐의로 구속되고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것 같다는 집주인 아내의 청천벽력 같은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데….’

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고 이를 비관한 이들의 죽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감독이 직접 경험한 전세사기를 고발하며 이 시대 금융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제안하는 연극 한 편이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한다. 연극의 가제목은 <부동산>. 주인공 이름 역시 ‘부동산’이다.

<생활풍경>, <별들의 전쟁>, <공주들>, <파란나라> 등 사회성 짙은 문제작을 연출해온 중견감독인 극단 신세계 김수정(40) 대표는 지난 26일 <한겨레>와 만나 “지난해 가을 피해를 당한 직후 작품을 구상해 프리프로덕션 단계(시놉시스를 쓰고 희곡과 캐스팅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며 “5~6월에 대본초고를 완성하고 7월에는 팀원들과 본격 연습에 들어가, 10월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연극 <부동산>은 금융 지식이 전혀 없던 부동산이라는 인물이 부동산 사기에 처하게 되면서 황급히 지식을 쌓아 오히려 부동산 투자에 도전하는 좌충우돌 고군분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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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지난해 9월 뼈아픈 전세 사기를 당했다. 전세로 거주 중인 서울의 한 빌라 재계약 시점에 집주인한테 전화를 하자 부인이 받았다. 집주인이 유사수신 혐의로 구치소에 들어갔다며, 재계약 의사가 없다 해도 보증금을 내줄 상황이 안된다고 했다. 두려움을 느껴 집의 등기부등본을 떼자 5천만원의 근저당이 잡혀 있었다. 다행히 김 대표가 대항력 있는 ‘1순위 세입자’라 문제가 생겨도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아 이후 부동산중개소를 끼고 그 부인과 재계약을 했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집주인이 재판을 받던 도중 추징보전금 가압류와 국세 압류가 들어오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후 김 대표는 자신이 살던 집이 깡통전세 범위에 해당하고 계약 상황 자체가 전세사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능한 방법을 알아보니, 집이 경매에 넘어갈 때까지 기다려 일부 금액이라도 보장받는 길이 있었다. 아니면, 잘못된 계약을 체결한 집주인 부인에게 사기죄를 적용해 재계약을 파기하고 집을 경매를 넘긴 뒤 직접 낙찰을 받아 손해를 감수하면서 집을 팔고 나가는 방법뿐이었다. 평생 연극하며 모은 돈이었다. 김 대표는 “솔직히 힘든 시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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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사기를 당한 뒤 평생 예술만 하느라 경제관념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던 자신을 돌아보았다.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할수록 본인이 한심했다. 그동안 부동산 사기를 당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만큼 금융과 부동산 관련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다. 주변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더 심각했다. 더 많은 사람이 부동산 사기피해에 노출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부동산 공연을 기획했다.

김수정 극단 신세계 대표. 두산아트센터 제공
김수정 극단 신세계 대표. 두산아트센터 제공

김 대표는 최근의 전세 사기 사건들을 접하며 어떤 생각을 할까. “참담해요. 저 사람들이 몰라서 당한 게 아니라 그냥 저와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사기를 당할 사람이 아니라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자부해왔고, 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해왔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세 제도는 너무 많은 문제가 있고, 피해자들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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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부동산>은 허구 상황이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일종인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창작한다. 부동산과 관련한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한 뒤 구술생애사적 연구 분석을 통해 창작한 장면도 등장한다. 극단 신세계는 모든 스탭과 배우들의 공동창작 작업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 역시 그렇다.

주인공 이름은 왜 하필 부동산일까. “대부분 사람들이 부동산 공인중개사를 ‘부동산’으로 인지하잖아요. 그러나 ‘부동산’의 사전적 의미는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자산, 토지나 건물, 수목 따위를 말하죠. 저는 정말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자산이 ‘저’ 스스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부동산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물었다. “등기부등본을 읽을 줄 알아야 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등기부등본을 읽으려면 권리분석 원리를 이해해야 하더라고요. 전문적으로 말하면 말소기준권리 찾기, 인수되는 권리 찾기, 임차인 권리 분석 등등. 어렵죠? 적당히 알지 말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가장 먼저 제대로 된 기본 정보 지식을 관객분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지금 나의 현실과 상황에 대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길 바랍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