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오늘(3월6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황유미(당시 23살)씨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황상기씨는 2007년 6월 딸을 대신해 산업재해를 인정해달라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청했다. 2009년 5월, 공단은 역학조사를 거쳐 “업무 관련성이 낮다”며 산재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황씨는 법원으로 향했고, 1·2심에서 승소해 2014년 8월 딸의 산재를 끝내 인정받았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처절한 ‘7년 싸움’은 직업병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기폭제가 됐다.
1349명. 2022년 질병 산재 사망자는 최근 5년간 꾸준히 늘어나 사고 산재 사망자(874명)의 1.54배에 이른다. 질병 재해 신청자는 2018년 1만2975명에서 2022년 2만8796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고 질병 산재 승인율은 각각 59.6%, 62.7%였다. 노동 현장에서 다루는 화학물질의 종류가 많아지고 발암물질을 향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숨어 있던 아픈 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역학조사 인력 부족, 제도 미비 등으로 늘어난 수요에 대응하지 못한다. 고용노동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특정 업종과 질병에 역학조사를 생략하는 ‘추정의 원칙’을 도입했지만 대상 질병과 적용 건수가 적다.
733년. <한겨레>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과 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안전보건연구원)으로부터 역학조사가 180일 넘게 ‘진행 중’인 명단을 입수했다. 역학조사란 직업성 질환이 작업장 환경 및 작업적 유해요인으로 발생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며, ‘180일’은 안전보건연구원 내부 지침상 ‘역학조사 결과 심의·의결’ 기한이다. 1월31일 기준으로 574명이 총 26만7716일(733.4년) 동안 역학조사 결과를 받지 못했다.
6년8개월. 가장 오래 역학조사를 기다리는 노동자는 43살 남성이다. 뇌실질내출혈을 앓는 그는 재해 경위에서 “전기 자동화 설치작업 등으로 인해 과로, 스트레스, 전자파(에) 노출(됐다)”고 밝혔지만 역학조사 결과를 2419일째 손에 넣지 못했다. 그사이 통장을 깨고, 노후 자금을 털고, 친척에게 손을 벌렸을 것이다. 산재가 승인된다면 휴업급여(평균임금 70%)와 간병료를 받을 수 있지만, 산재 승인 전까지는 건강보험에 의지하는 방법밖에 없어서다. 기약 없는 항암 치료보다 비급여 진료(건강보험 미적용) 청구서를 두려워한다.
고 황유미씨 16주기를 맞아 <한겨레>는 ‘180일 초과 역학조사’ 명단에 담긴 574명의 노출 물질 빈도, 재해 경위, 인적 사항, 소요 기간 등을 전수 조사·분석했다. 포항, 울산, 영덕, 대구, 수원, 세종에서 제2, 제3의 ‘황유미·황상기들’을 만나 아프고 불안한 삶을 들여다봤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